퍼니 게임 - Funny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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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하네케 영화로 97년작을 다시 영어로 리메이크했단다. 97년 판이 독일어로 촬영해서 알려지지 않아서 대중적으로 알리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일정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기도 하다. 

1. 나오미 왓츠. 메릴 스트립이 연기파 배우이긴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진 않는다. 나오미 왓츠는 메릴 스트립의 장점과 니콜 키드먼의 서양 인형같은 외적 장점을 다 지닌 배우같다. 21그램에서도 힘들어보이는 역할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강하고 섬세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완벽한 몸매와 아름답기까지. 

2. 미카엘 하네케의 각본과 연출은 연극적이고 함축적이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연출기법, 최소의 배우, 대체로 제한된 공간 사용, 롱테이크는 단촐하지만 극의 흐름은 스크린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팽팽하다. 이 영화에서는 예외지만 음악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저력때문에 하네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으면 기꺼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3. 하네케의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지나칠 정도로 냉혹하고 염세적이다.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잔혹성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동정이나 공감 따위로 감정을 동요하고 달래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서게 유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 있다. 두 사이코 패스에 인질로 잡혀있다 사이코 패스의 자발적 퇴장으로 앤(나오미 왓츠)이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한 밤중이고 인적없는 도로 위에서 앤은 절망적이다. 반대편 어둠 속에서 차 불빛이 서서히 앤을 향해 온다. 그 차는 사이코 패스들이 탄 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4. 물질문명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시선. 한 중산층 가정이 여름휴가를 간다. 숲과 물로 둘러싸여 도시에서 지친 삶을 쉴 목적으로 그만인 고급 별장이다. 요트를 띄울 수 있는 부두까지 갖춰 가족만의 낙원처럼 보이지만  풍요가 빚어낸 결과는 인질로 잡혀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지옥이기도 하다. 풍요의 친구는 무관심과 절대 고독이다. 총소리로도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없는 곳이 현대사회다.

5. 이 영화는 하네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사이코 패스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 놀이를 하는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사이코 패스로 나오는 마이클 피트의 목소리 넘 좋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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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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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난 후 리뷰쓰기를 눌렀다 몇 번 지웠다. 쓰고 싶은 말이 머리속에서만 맴돌고 손에사 나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책이 너무 좋을 때거나 책이 별 가치가 없을 때인데 이 책은 너무 좋아서 무슨 말을 쓸지 고민하게 한다.  

먼저 저자의 관점이 흥미롭다. 과학자, 특히 박사후과정postdoctor의 애환 속에서 생물에 대한 연구과정을 쉽게 풀어놓는다. 분자생물학자로서 갖는 질문,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가령 어떤 특정한 단백질이 결핍될 때 시간이 경과하면서 결핍 요소를 대체해서 평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지닌 개체가 바로 생명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데는 물론 저자의 노력을 쉽게 풀이해준 덕분이다. 여러 실험과정에서 생명을 이루는 세포에 열정적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생체의 신비에 대해 원시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는. 과거에 불치병들이 치료제 개발로 더 이상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우쭐함을 우리는 갖고 있다. 유전자를 둘러싼 비밀의 문에 한 발 내딛고 우리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생체 신비에 대해 아주 조그만 귀퉁이에 들어있는 정보를 획득했을 뿐이고 여전히 생체는 신비하며 신의 영역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맺는다. 생체는 미세한 부분들, 그 단독 쓰임을 알 수 없는 세포들 간에 만들어내는 유기적 관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라고 한다. 철학처럼 정신세계를 다루는 학문만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생물이라는 볼 수 있는 대상을 다루는 학문도 실체가 없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더불어 이런 재밌는 과학에세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더라면 내 삶도 조금쯤 달라졌을까? 앞으로 적극적으로 접한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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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신비 -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애머 액젤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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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에 대한 개념으로 수학사의 일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멱집합power sets, 선택공리, 연속체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낯선 개념이 등장한다. 이 개념을 몰라도 책장은 술술 넘어가지만 반만 이해한 거 같아 찝찝하다. 게다가 내 뇌 용량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열패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책을 읽고 나서도 유쾌하지 했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의도가 문과생적 사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픈 바람에서 였는데 책에 언급된 핵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독서의 목적이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리하여 리뷰검색을 해봤더니 이 개념들은 나만 이해 못한 게 아니라는 데 약간의 위로를 얻고 수학책을 읽고도 문과생적 기질로 끄적거릴테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식대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다음에 2, 3, 4....라는 사실에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칙연산만 가능하면 일상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고 의문은 오리혀 거추장스럽다. 일상에서 필요한 수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어서 언론에서 백억, 조 이런 단위가 나오면 무한은 아니지만 엄청 큰 수라는 단순한 논리로 반응한다. 우리는 수학을 이런 수 개념으로 한정시키는 무지를 범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수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1과 2 사이에는 수가 무한히 존재한다. 따라서 1 다음에 2라는 건 편의에 따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수를 모조리 무시한 결과이다. 즉 물건 값을 계산하는데 무수한 수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인데 수학은 연산을 위한 실용적 학문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값을 설정하는 철학적인 학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은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 

무한을 연구한 학자 칸토어와 괴델에 이르는 계보를 축으로 무한의 역사를 이야기처럼 서술한다. 두 사람 다 무한에 끌렸고 무한에 도달하려다 정신착란에 이르고, 결국 이들은 무한은 절대며 도달할 수 없다는 심증을 갖는다. 마치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바빌로니아 인들이 벌 받은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고립되어 미쳐갔다. 그러나 수학은 증명의 학문이다. 그들이 심증으로 끝낸 무한 연구는 미완성 분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괴델이 불확정성 이론을 내놓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불확정성이란 신의 영역이라는 저자의 관점 또한 흥미롭다. 수란 신이 만든 것으로 원래부터 존재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실용적 수학,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세계에서는 개소리지만 수학이 우주를 수로 보는 철학이라고 본다면, 말이 된다. 1과 2사이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세계, 또는 아직 증명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니...피타고라스 학파가 믿었던, 수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밀교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우주를 해석하는 수단으로 일반인이 익숙치 않은 '수'라는 도구를 차용하는 게 수학이니 밀교적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수'에 대해 대체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에 대한 개념을 증식시키는 건 다른 별에 사는 걸 감수해야 하니까 수를 소홀히 하는 걸로 우리는 신변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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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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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후 허진호 감독 영화를 다시 보지 말아야지 했는데...아, 정우성이 나온다니. 정우성, 이병헌, 장동건 등은 조인성이나 소지섭 등등의 나이 어린 배우들이 갖지 못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정우성이 웃을 때 생기는 눈가의 주름, 통통해진 볼이..아무리 조각같은 미남들이어도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구나..하는 연대감이 있다. ㅋ 

정우성이 나오는 영화를 은근 다 찾아보는 거 보면, 정우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그 전과 다르게 날렵하기 보다는 상당히 통통해 보인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지만. 고원원도 아름다운데 정우성의 미에 가려서 스크린 위 시선은 정우성에게 시종일관 쏠렸다.

정우성 얘기는 그만하고..기대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 되시겠다. 비 내기기 좋은 시절이 오려면 먼저 가뭄이 있어야한다. 박동하나 메이나 황량한 건기를 지났다. 그들에게 물기는 간절한 것이며 흠뻑 젖을 준비를 하는 남녀는 충분히 아름답다. 더불어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쓸데없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현실에서도 만날 사람은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면 현실은 반대 아닐까. 만날 사람은 사실은 만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 판타지 영화도 필요하고. 갑자기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몰고왔고 감독 역시 이런 판타지를 영화를 통해 재현한 게 아닐까. 뭐..

무엇보다도 엔딩이 허진호답고 좋다. 두 사람이 만날 거라는 걸 암시만 하고 박동하가 메이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크레딧이 올라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내 숭배를 배반치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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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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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답지 않게 볕이 따갑더니만 어제부터는 옷깃을 힘껏 여며야할 정도로 으실거린다. 여름에는 심장으로 닿는 피도 노곤한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피만으로는 심장이 따뜻해지질 않는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눈으로 읽고, 그런 사람이 또 있어하고, 머리에서 심장으로 신호를 보내야 심장이 견딜만하다. 

"나는 의견의 차이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 집에 출입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은 할지언정 그 사람들의 의견 발표에 압박을 가하는 짓은 특별히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타인의 존재를 그 정도로 인정하고, 말하자면 타인에게 그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편이 내키지 않아 하면 아무리 내가 모욕을 느끼는 일이 있어도 결코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그 부분이 개인주의의 쓸쓸함입니다. 개인주의는 타인을 목표로 향배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시비를 규명하고 거취를 확정하는 주의니까 어떤 경우에는 홀로 외톨이가 되어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구절이 전체 글의 요점은 아니지만 올 가을을 버티게 해 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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