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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신비 -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애머 액젤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2년 6월
평점 :
무한에 대한 개념으로 수학사의 일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멱집합power sets, 선택공리, 연속체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낯선 개념이 등장한다. 이 개념을 몰라도 책장은 술술 넘어가지만 반만 이해한 거 같아 찝찝하다. 게다가 내 뇌 용량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열패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책을 읽고 나서도 유쾌하지 했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의도가 문과생적 사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픈 바람에서 였는데 책에 언급된 핵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독서의 목적이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리하여 리뷰검색을 해봤더니 이 개념들은 나만 이해 못한 게 아니라는 데 약간의 위로를 얻고 수학책을 읽고도 문과생적 기질로 끄적거릴테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식대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다음에 2, 3, 4....라는 사실에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칙연산만 가능하면 일상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고 의문은 오리혀 거추장스럽다. 일상에서 필요한 수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어서 언론에서 백억, 조 이런 단위가 나오면 무한은 아니지만 엄청 큰 수라는 단순한 논리로 반응한다. 우리는 수학을 이런 수 개념으로 한정시키는 무지를 범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수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1과 2 사이에는 수가 무한히 존재한다. 따라서 1 다음에 2라는 건 편의에 따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수를 모조리 무시한 결과이다. 즉 물건 값을 계산하는데 무수한 수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인데 수학은 연산을 위한 실용적 학문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값을 설정하는 철학적인 학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은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
무한을 연구한 학자 칸토어와 괴델에 이르는 계보를 축으로 무한의 역사를 이야기처럼 서술한다. 두 사람 다 무한에 끌렸고 무한에 도달하려다 정신착란에 이르고, 결국 이들은 무한은 절대며 도달할 수 없다는 심증을 갖는다. 마치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바빌로니아 인들이 벌 받은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고립되어 미쳐갔다. 그러나 수학은 증명의 학문이다. 그들이 심증으로 끝낸 무한 연구는 미완성 분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괴델이 불확정성 이론을 내놓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불확정성이란 신의 영역이라는 저자의 관점 또한 흥미롭다. 수란 신이 만든 것으로 원래부터 존재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실용적 수학,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세계에서는 개소리지만 수학이 우주를 수로 보는 철학이라고 본다면, 말이 된다. 1과 2사이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세계, 또는 아직 증명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니...피타고라스 학파가 믿었던, 수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밀교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우주를 해석하는 수단으로 일반인이 익숙치 않은 '수'라는 도구를 차용하는 게 수학이니 밀교적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수'에 대해 대체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에 대한 개념을 증식시키는 건 다른 별에 사는 걸 감수해야 하니까 수를 소홀히 하는 걸로 우리는 신변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