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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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있는 아줄레주 뮤지엄에 페르디난두 페소아 시인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현대적 선을 이용해 타일에 그린 그림이 있다. 페소아 시인이란 걸 몰랐는데 네이버 블로그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포르투갈로 여행 가기 전에 포르투갈 문학을 좀 검색했지만 주제 사마라구가 쓴 번역본 밖에 찾지 못했다. 한국에 포르투갈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머나먼 나라다. 리스본이란 지리적 위치는 상당히 은유적이다. 아득한 곳에 위치한다. 접근성이 좋지 않고 젊은 혈기 혹은 일 때문이 아니라면 가기 몹시 힘든 도시에 속한다. 접근하기 힘들다는 건, 꿈을 꿀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날, 나이가 들면, 보르도에 실제로 도착하는 것보다 보르도를 꿈꾸는 것이 더 좋거니와, 더 진실하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116쪽)

 

리스본은 상징적 도시였는데 리스본에서 고작 며칠 빈둥거렸는데 리스본은 실제가 되면서 아련함이 모두 가신 도시가 돼버렸다. 적어도 내겐. 문학은 사라진 상징을 부활시키는 힘이 있다. 불과 몇 달 전 기억 속에 있는 리스본은 간이 안 된 재료로 한 요리를 먹은 느낌을 지니게 했는데 멀리 떨어져서 그곳의 속살을 잘 아는 이들의 글을 읽으면 내가 아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면서 또 다른 꿈과 몽상의 공간으로 슬금슬금 그 지위를 회복한다.

 

페소아 시인이 남긴 유일한 산문이라는 일기를 읽으며 리스본은 미지의 도시로 거듭 태어난다. 그럴수밖에 없는 게, 어떤 도시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그 도시를 진정으로 겪은 이의 몽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비논리적 비유에 읽어내기 힘들다가 중반이 넘어가면서 페소아는 시인이고 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게 된다. 낮에는 회계장부를 기입하느라 숫자들의 세계에 빠져있고, 혼자 있는 시간에 리스본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의식의 흐름을 좇아 기록하다. 혼잣말인 이 중얼거림을 인내심있게 따라가다 보면 강한 연대의식을 갖게 된다. 대체 말도 안 되는 연대의식의 정체는 뭐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 도시에서 생활 터전을 잡고 살 수 밖에 없는 안정감과 나란히 찾아 오는 권태로 찾게 되는 탈출 방법. 관찰과 몽상.

 

"감성의 지식은 인생 경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역사가 아무것도 가르치는 것이 없듯이, 인생의 경험도 아무것도 가르지지 않는다."(117)

 

포르투갈어가 주는 느낌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던 문두스처럼 포르투갈어에 다가가고 싶다. 나는 시를 읽지 않지만 아니 시를 읽지 못하지만 언젠가 시를 읽고 싶다. 포르투갈에 다가가고 싶은 것처럼. 아울러 불안한 영혼의 글을 읽는 건 정말이지 크나큰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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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4-0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이 기가막힌 봄의 밤..넙치님의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의 행복해지는 리뷰를 읽습니다..~~

넙치 2014-04-01 01:41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의 리뷰에 댓글 달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댓글이 안 달아져요.ㅠ.ㅠ 제 컴의 문제일 수도...이 책 지난 달에 샀는데 잊고 있었다 새벽숲길님 글 읽고 맞아, 나도 샀었지...하면서 부랴부랴 찾아 읽었어요.^^;;

2014-04-01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1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4-04-0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고~ 불안의 책도 구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리스본행 야간열차...너무 아름다운 책이예요~ 오랫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넙치 2014-04-01 23:14   좋아요 0 | URL
리스본행 야간열차 저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울림을 주는 소설이어서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