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등장인물부터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낮도깨비란 떼강도 멤버들 모두 소름끼치게 연기 잘한다.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도 무표정하고 잔인한 캐릭터다. 마지막 씬에서 화이를 눈빛으로 압도하는 장면이 있다. 긴장감은 고조되고 조명은 김윤석 얼굴쪽으로 환하게 비추는데 환한 빛속에서 빛나는 서늘한 눈동자. 눈동자도 제어할 수 있는 연기력이라니!

 

<이웃사람>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나왔던 김성균. 화이가 운전하는 트럭과 낮도깨비가 탄 밴이 추격씬을 벌이는 긴박한 상황에서 나는 김성균 얼굴만 봤다. 김성균은 이 세상 혼이 아니라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기 위해 지옥 어딘가에서 내려보내진 전령 같았다. 차가 어딘가에 부딪치려하는 공포의 순간마다 김성균은 섬뜩한 미소를 짓곤한다. 야비하면서도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미소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라스트 시퀀스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죽는 순간에도 피로 물든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짓는다. 이 사람은 이미 죽음 따위엔 관심없고 죽어가는 과정을 스페턱클로 즐기는 로마시대 귀족같다.

 

조진웅. 해품달에서 처음 유심히 봤는데 그 다음에 <범죄와의 전쟁>에서 기름에 사우나하고 나온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다. 어눌하고 말도 더듬고 멤버들 중 가장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물이다. 이 분도 연기 스페트럼이 장난아니시다.

 

그리고 화이 역을 한 여진구. 장준환 감독이 인터뷰하는 걸 잠깐 봤는데 심리치료 받고 잘 일상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정말 심리 치료가 필요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대사 별로 없고 표정과 눈빛으로 분노와 고통을 연기하는 씬이 많은 데 아주 훌륭하다!

 

2.

중반쯤 가면 줄거리가 대충 짐작이 가서 스릴러로서의 가치보다는 장준환 감독이 탐구하고 천착하는 세계관을 좀 더 들여다보자. 낮도깨비란 떼강도가 아이를 유괴해서 키운다. 화이는 그들 모두한테 아빠라고 부른다. 이 이야기는 아빠(들)이 아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 전반 구조의 알레고리를 접목시킨다. 유괴당한 아이가 유괴범들의 손에서 유괴범들의 특징을 학습하며 자란다. 판단하기, 문 따기, 총쏘기, 곡예 운전하기.  아버지들이 무리를 이룰 수 밖에 없다. 아버지들은 각각 하나의 특기만을 가졌다. 화이는 이 모든 특기를 주입받은 완전체처럼 길러진다. 단 정신적 트라우마도 함께 상속받는다. 보육원 시절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괴물로 괴로웠던 이(김윤석)은 자신이 괴물이 되고서 괴물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화이 역시 괴물을 보는데 김윤석은 화이를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려고 한다. 자신이 괴물을 이긴 방법을 아이한테 강요한다.

 

그럼 왜 그는 괴물을 이기는 괴물이 되었나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종의 열등감 탓이다. 부유하고 반듯한 화이의 친부는 절대 선처럼 행동한다. 김윤석은 무의식적으로 계급에 대한 증오로 절대 악으로 돌아서는 선택을 하게 된다. 즉 자신이 속할 사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화이는 상징적 인물이다. 절대 선의 영역에 있을 수 있는 아이를 절대 악으로 만들 수 있는 건 환경이라는. 아이 역시 심한 멘붕현상을 겪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에 적응해간다. 김윤석은 죽지만 화이란 완전체는 김윤석의 승리로 보인다. 화이는 이제 아버지들의 도움없이 혼자 사람을 죽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건설사 사장을 죽이는데, 건설사 사장은 보이지 않는 사회악이지만 자본주의에서는 필수요소이다. 화이는 사회의 필요악을 죽였다. 화이는 괴물인가 괴물이 아닌가. 건설회사 사장은 괴물인가 희생자인가.

 

3.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 어둡고 희망도 없다. <지구를 지켜라>보다도 더 어둡다. 김기덕 감독스러운 면도 보이는데 감독은 왜 더 어두워져 가는가. 나이들고 가정도 이루고 아이도 키우는데....

하나 놀라운 건, 내가 피를 눈 뜨고도 봤다는 것! 심지어 멧돼지 머리에 총탄이 날아가 박살나는 과정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봤다. 어찌된건지 어리둥절하다. 나, 이제 강심장이 된 건가. 물론 이 영화에서 피가 너무 선홍색이어서 가짜라는 인식이 영화 시작부터 지배했다. 나도 피 범벅이 되는 장면들을 이겼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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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10-1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범벅 장면 못 보는데, 이 영화는 봐지던걸요, 이제부터 볼 수 있게 되었나,가 아니라, 이 영화가 그런 영화였던 것 아닐까요? ㅎㅎ 제가 고개를 돌렸던 장면은 여진구가 풍뎅이 눌러 죽이는 장면 (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눌러 죽였죠? ) 그 장면이 섬뜩했어요.

이 영화 보면서, 아주 옛날옛적에 본 타란티노 '저수지의 개들'도 생각나고, 오우삼 감독 홍콩느와르들도 생각나고 그러더군요.

김윤석은 ... 여진구는 ...

넙치 2013-10-16 10: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건가요?! 이 영화보면서 제가 두 눈뜨고 보는 게 너무 기특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했는데..하이드님도 그러셨군요.@.@ 풍뎅이한테서도 노란 물이 찍 나왔어요.ㅋ 아마도 죽었겠죠.저는 오히려 칼이 등장해 배를 찌르는 장면들은 여전히 못 보겠더라구요.ㅜ 창고란 공간을 타란티노 감독이 참 잘 사용했죠?^^

여진구는 김윤석에 필적할 정도의 연기력이니 앞으로도 기대되요.

맥거핀 2013-10-15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 서재에서 정리해주신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참 흥미롭네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요. (이거 원작이 있는 건 아니죠?)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점점 보는 쪽으로 기울어져 갑니다.^^

넙치 2013-10-16 10:52   좋아요 0 | URL
크래딧에서 원작은 못 본 거 같아요. 복수는 나의 것도 좀 생각나는 영화에요. 맥거핀님 왜 안 보려 하셨을까...맥거핀님이 글쓰기 좋은 영화인데.ㅎㅎ 이 영화는 인물들의 행동을 주로 묘사하다보니 사실 서사는 좀 빈약하기도 한데 감독의 주제의식은 선명한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