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결혼 이후의 이 결핍감을 무엇이라 표현해야할 지 몰랐다. 그런데 어제 어떤 연극배우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 실체를 언어화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를 빼앗기게 되는 일상". 그녀는 결혼 전에는 주연 배우를 도맡아 하다 결혼 후 조역배우로 활동한다며 그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시집살이나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상 자체에 에너지를 빼앗기게 된다고... 정확하게 그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태풍으로 피해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았다. 언제나 불행은 가난한 곳으로부터 스민다. 홍수는 낮은 곳으로부터 차올라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부터 생채기를 낸다. 가난한 이들은 자연재해를 이겨낼만한 재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철옹성 같은 집에서 안심하고 지낼 때 부실하기만한 그들의 삶의 환경은 아주 조그만 부침에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불량한 주거 환경과 삶의 터전을 나라에서 미리 손봐주거나 지켜주지도 않는다. 나라의 힘은 부자들, 힘있는 사람들에게 가깝기 때문이다. 상수 침수 구역, 똑같은 자리에서 몇년간 똑같은 재해가 발생해도 번번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가진 자들이 집값 상승을 목적으로 도로 예정지를 바꾸고 유해시설을 쫓아낼 때 없는 이들은 자신이 살 집 한 칸조차 변변히 지킬 힘이 없다. 당하고 통곡하고 인내하면서, 그러면서 살아갈 뿐.

부부간 성추행이 처음으로 유죄로 인정됐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죄로 인정되지 않고 있었나 잠시 혼돈스러웠다. 이혼을 앞둔 상태 등이 아닌  '정상적인' 부부 관계 하에서는 아직 부부강간이 인정된 적도 없다니. 여성계나 젊은이들이야 당연히 찬성하고 언론도 그러한 분위기지만 나이든 분들, 남성들의 반대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들의 반대 이유에 대해 일일이 논박할 수도 있지만 답답함과 분노, 황당함에 그럴 기운도 없다. 

오늘 아침 주부 대상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효도법'을 제정하는데 찬성한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훨씬 높게 나오고 찬성 편 나이든 패널들은 득의양양이었다. 사사로운 부부 사이의 일을 어떻게 법이 관여하냐며, 은폐된 폭력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부모에 대한 개인의 효도는 법으로 제정해서 장려하자고?

이 어긋난 가치관들이 한가닥 방향을 잡아갈 날이 과연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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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8-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죠, 정말.

마냐 2004-08-2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염됩니다. 이런.

내가없는 이 안 2004-08-21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아라비스 2004-08-2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님/결혼과 동시에 무언가가 변하고 소멸되는 것 같아요. 삶에 대한 도전, 모험, 진취성, 욕망, 타인과 세계에로 향함, 창조성, 예술성, 낭만, 아픔, 고통, 예민함 뭐 그런 것들이요...다들 그러신가요? 저만 그런 건가요? 전 왜 그럴까요?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냐님, 이안님/세 꼭지를 쓰고 제목을 무얼 할까 하다가 문득 무기력이란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혹 그런 것에 동감하신다든가 감염되셨담 죄송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