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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 영화화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본 적 있어 대략적으로 내용은 알고 있었다.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삶이란 소재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읽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이야기의 의미와 깊이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부는 헤일셤으로 불리는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서로 간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아이들의 존재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시 선생님이 창조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않으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너한테 말씀하셨다는 거지." 내가 토미에게 말했다. "그 비슷한 말씀이었어. 선생님 말씀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다른 애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쓰지 말라고 하시더군. 두어 달 전 일이야. 어쩌면 그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재미있는 건 말이야, 선생님과 나눈 그 대화가 나한테 도움이 되었다는 거야. 큰 도움이 되었어. 요즘 내 상황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었지. 음 그건 그 대화 덕분이었어. 나중에 선생님 말씀을 생각 해 보고 나는 그 말씀이 맞다는 것, 내 잘못으로 내 잘못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맞아. 나는 그런 일에 유능하지 못했어.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잘못이 아냐. 그러면서 나는 내 옆을 걸어가고 있는 루시 선생님을 눈으로 쫒곤 했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가 나눈 대화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쳐다보는 내 눈길에 때때로 고개를 끄덕여 주시곤 했어. 그거면 충분했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타인들에게 장기 기증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흥미 있어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헤일셤이라는 학교가 ‘로스트 코너’라는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곳을 찾을 수 있는 고향 같은 곳이라는 의미로 전해지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주인공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리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다시피 이곳은 동쪽, 곧 바다 쪽에 이 산맥이 솟아 있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해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사람들은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 대목에서 선생님은 지휘봉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직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우회해 지나가 버린다. 이런 이유에서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평화로운, 그런대로 아름다운 구석인 셈이다. 동시에 '로스트 코너'같은 곳인 셈이지."
로스트 코너, 에밀리 선생님은 노퍼크를 그렇게 칭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노퍼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헤일셤 건물 4층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을 보관해 두는 '로스트 코너'가 있었다. 뭔가 잃어버렸거나 주웠다면 그곳으로 가면 되었다. 그 수업이 끝난 다음 누군가가 (누구였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에밀리 선생님이 노퍼크를 '로스트 코너'라고 한 것은 그곳이 영국의 '로스트 코너, 다시 말해서 전국의 분실물들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이 평범하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청난 상실감을 겪고, 평범한 삶에 대해 동경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학자금 융자 빛을 갚아가면서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젊은이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겹쳐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루스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컬러잡지, 그러니까 '스티브의 잡지'같은 것이 아니라 신문에 무료로 끼워지는 밝고 경박한 잡지였다. 광택 있는 종이에 양면 광고가 게재된 부분이 펼쳐져 있었는데, 종이가 물에 젖고 한쪽 귀퉁이에 진흙이 묻었지만 내용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칸막이를 최소한으로 줄인 아릅답고 현대적인 개방형 사무실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무실과 사람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스는 곁에 와 있는 내게 말했다. "'저런 곳'이야말로 일하기에 '적당한 장소'같아.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것이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예요.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죠? 아까 본 그런 여자요? 이런 그래 맞아. 토미. 그저 재미삼아 해본 것뿐이야. 소일 삼아 해 본거라고. 거기에 있던 또 다른 여자. 그 여자의 친구인 화랑의 노부인은 우리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부인이 우리 정체를 알았다면 그런 얘기를 들려 주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그 부인에게 '실례합니다. 혹시 당신 친구분이 클론의 근원지가 되신 적이 있어요?'라고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부인은 우리를 쫒아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누구든 자신의 근원자를 찾고 싶다면, 진짜 그 일을 해내고 싶다면 빈민가로, 쓰레기통으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고 말이예요. 그런 곳들이 우리가 시작된 곳이니까요“
현실의 젊은이들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좌절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문득 깨달을 수 있다. 약해진 인간을 위로해주는 것은 순간순간 접하는 행복한 감정이리라.
노인이 케이스에 맞는 테이프를 찾는 동안 나는 줄곧 상점 뒤쪽을 훑어보았다. 그거을 그토록 빨리 찾아낸 것이 여전히 아쉬웠다.내가 그 테이프 그리고 그 노래를 되찾은 것에 진정으로 기뻐한 것은 코티지로 돌아와 내 방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때도 주된 감덩은 일종의 향수였다. 요즘도 그 테이프를 꺼내 볼 때면 우리가 헤일셤에서 보낸 나날과 함께 그날 오후 노퍼크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아기가 종반으로 달려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희생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막연하지만 그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흐른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보인 첫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곳 학생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라고 반문하지 않았던가. 로저는 내 말이 당시 그 곳의 재학생들, 교사들에게 의존하는 어린 학생들을 가리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중 몇몇이 헤일셤에서 멀리 떨어진 전국의 다른 학교들로 이송될 것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말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학생들이란, 그러니까 나와 함께 성장해 이제는 간병사가나 기증자가 되어 전국으로 흩어졌지만 고향인 그곳과 여전히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를 뜻했다.
죽어 가는 기증자들이 무시무시한 싸움 중간에 이르곤 하는 그 작은 명징의 섬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할께. 루스. 최대한 빨리 토미의 간병사가 될께.' 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고함을 친다 해도 어쨌든 그녀로서는 듣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서로 얽힌 그 순간 내가 그녀의 시선을 읽은 것처럼 그녀도 나의 표정을 읽었기를 바랐다. 이윽고 그 순간이 지나가자 그녀는 다시 정신을 놓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내 뜻을 이해한 것 같다.
이제 이야기는 절정으로 흐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증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의 고향 같은 혜일섬이 폐교되는 온통 절망적인 상황에서, 토미와 캐시 사이에서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을 막았던 루스가 마지막으로 그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너희가 게임의 담보물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리라는 건 안다.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생각해 보렴. 너희는 그래도 행복한 담조물이야. 한때 어떤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렸어. 세상일이 때떄로 그런 식으로 돌아가나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의 생각이나 감정은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가버리지. 그 과정 중 한 지점이 너희의 성장기와 겹쳤던 거란다."
"마치 왔다가 가 버리는 유행과도 같군요. 우리에겐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말이에요."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신세계를 보았지. 과거의 질병에 대한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그래, 더 많은 치료법을 말이야. 맞아.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
하지만 그 희망은 가차 없이 무너진다. 결국 그들의 삶에는 구원같은 것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너무나도 먹먹해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도 내 인생도 그들의 삶과 큰 차이가 없이 끝난다는 걸 알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정말 오랜만에 문학의 힘과 큰 감동을 느꼈다. 헤일셤으로 모아지는 인간의 고향에 대한 기억과 의존. 초반부의 헤일셤에서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과 후반부 기증자가 되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한 인생에 대한 허무. 마담을 통한 기증 의무의 유예에 대한 기대가 실제로는 그런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을 통해 종교를 통한 구원에 대한 기대와 그의 부질없음. 기증자가 되는 것이 운명인 아이들이 자신들의 원형을 찾아보는 노력을 통한 자신의 근본에 대한 탐구 등. 사람이 한 평생 인생을 살면서 느끼고 탐구하고 좌절하는 모든 것이 이 소설 안에 다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