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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ㅣ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평점 :
시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외에는 거의 안 읽었지만, 브레히트의 명성이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어 도전하였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가 나찌 치하를 거쳐오면서 써낸 작품세계, 또는 그가 표현하고 주장한 정신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가의 인물이나 작품에 대한 학습 없이 우선적으로 시를 읽어서 제대로 이해했는 지 자신은 없지만 내가 읽은 감상은 다음과 같다.
우선, 1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가정 설교집에 실린 작품들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사건에 대한 저자의 시각도 냉소적이라 시를 감상한다기보다는 시에 의해 상처받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고 그 사건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겠지만 1부의 시를 모두 읽다보면 그러한 삶들은 모두 끝나고 지나가지만, 자연은 예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흐를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 우리는 우리가 한때 머물다 떠난다는 걸 알지.
우리가 죽은 뒤에도 이렇다 할 만한 건 없다는 것도 알고.
시대를 풍자한 시는 더욱 흥미롭다. 지난 해 탄핵과 정권교체를 하였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온갖 종류의 적폐 관련 뉴스는 이 나라가 얼마나 썪었지 다시 한번 알게 할 뿐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국민 감정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시 - 후손들에게 -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전략)
세상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잠시라도 두려움이 없이 지내고
폭력도 쓰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으며
여러 소망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잊어버리는 것.
그런 게 현명한 것이라고.
난 그런 것들을 하나도 할 수 없다.
난 정말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다!
...
하지만 우리는 안다.
천박함에 대한 증오 또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 또한
목소리를 쉬게 만든다는 것을.
아, 우리는, 우호의 토대를 마련하려 했던
우리는 정작 우호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너희는,
인간이 인간을 도울 수 있게 되는 때가 오면
부디 너그러이
우리를 생각해다오.
브레히트가 살았던 시대와 대한민국 현 시대에 벌어진 불의는 용서나 화합, 선으로 취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분노의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일 뿐이다. 다만 먼 훗날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시기가 오면 그들에게 이해를 부탁할 뿐이라는 내용에 너무 공감이 간다. 용서나 화합같은 개념은 사치일 뿐인 정말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정말 힘들고 외로울 수 있다.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 브레히트의 시가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추가적으로, 브레이트의 시가 표현하는 세상이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은 (주로 현실의 참혹한 묘사를 통해서) 영화와 함께 그로테스크하지만 장면장면이나 미장센은 무척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감독이 만드는 작품세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감돋 중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가장 가깝다고나 할까? (특히 복수는 나의 것) 시만 읽으면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는데, 영화와 비교하니 이해하기 한층 쉬워지는 느낌이 든다. 좀 더 많은 작품을 접하면서 그를 더 이해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