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정 무렵,
동생이 한잔 걸치고는 얼근한 얼굴로 쪽지 한장을 내민다.

무엇인고 하니 로또, 사실 난 그 걸 처음 보았다.

요행에 기대않고 살다보니 아직도 고스톱이나 포커도 할 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로또가 어떠니 저떠니 해도 복권 따위엔 애초에 관심 밖이었던 터.

그런 내게 로또를 맞춰 보라고 불쑥 내미니 순간 당혹스러울 밖에. 가까스로 로또 사이트에서 번호를 맞춰보니
아니나 다를까 꽝,이지.

'얘야 주정부리지 말고 어능 자라 응'
동생 왈 '어제 꿈이 심상치 않았는디'

솔직히 말하자면 요행보다는 행운을 더 바라며 살긴 한다.
가끔 설문에 응해주면 작지만 쏠쏠한 선물이 배달돼기도 해서 몰래 기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오늘 아침,  레종 담배갑에서 유독 튀는 1개비를 발견했다.
파란 고양이가 하트를 들고 있는 그림에, <19+1 사랑>, <사랑, 그 못된 버릇의 시작>이라는 문구까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벤트인가, 그렇다면 담배갑에 뭔가 광고가 있을텐데 아무 것도 없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고양이 담배'는 지난 1월19일부터 시작된 마케팅의 일환으로. 전체 '레종' 생산량의 19%에 해당하는 담배에 1갑당 1개비씩만 끼워 판매하고 있고, 개비수로 따지면 2,000개비 중 19개비로 1%가 안되는 분량. 출시 당시부터 튀는 이미지로 어필해 온 '레종'의 브랜드 특색을 이어가기 위해 시도인 셈이란다.
그럼 그렇지하면서도 기분은 썩 좋았다.

기쁨과 설레임을 선물하는 작은 배려, 만족할만하다.
오늘 왠지 유쾌한 하루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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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늘 하루 정말로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날씨 좋습니다!

김여흔 2004-02-2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열사 님도 행운으로 충만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水巖 2004-03-0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을 고스톱, 포커를 뭔지 모르고 살다 간 사람 , 아니지 아직 안 갔지. 여기에도 있답니다.
냉.열.사 님과 김여흔님을 알게 된 오늘 나도 유쾌해 질것 같습니다.

김여흔 2004-03-0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아니, 제가 수암님을 닮아 있군요.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려요.
 



꼭 대천이어야 하냐고 투덜대면서 기여코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 것도 발렌타인데이에...

온종일 햇볕 한번 들지 않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지칠대로 지쳐있던 때였다.
그 녀석은 나와 4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수시로 들락거리며 실실 쪼개는 낯으로 날 따랐다.
어느 날부터는 그 녀석의 연인과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맞먹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이뻤던 그 녀석,
작년 가을 어느 날 새벽, 죽어버렸다.
교통사고였다.
미친 놈, 나쁜 놈.
내가 춘천에 있다고 강촌으로 놀러와서는
출근하려는 날, 가지 말라고 징징대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그 녀석, 얄밉게도 춘천에 묻혔다.
그 것도 인연이라고
죽어서까지 날 따라다니냐고
며칠을 욕을 해대며 울고 울어댔다.

그 녀석의 연인과 함께 그 녀석이 잠든 곳에 다녀온 후,
대학원 시절에 내가 만들었던 온라인 카페를
그 녀석의 연인이 부활시켰다.

대천행은 그녀의 제안이었다.
대천이야 왠만한 사람이면 몇 번씩은 다녀왔을게다.
우리도 그러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곳에서 만나야만 하는
못된 녀석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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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천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흑백 사진이랑....후배 이야기랑.....흑~

김여흔 2004-03-01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MT 장소로 많이 가잖아요. 저는 예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 모르겠던데 다른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하네요. 대천항에도 들려볼까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프레이야 2004-03-0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여흔님, 다녀가셨더군요. 턱은 괜찮으신지...^^
전 흑백사진을 좋아합니다. 대천해수욕장은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흑백사진이 안겨주는 그 바다의 정서가 비슷하게는 와 닿는군요. 님의 욕나오게 슬픈 기억까지 묻혀있는 그곳의 파도는 지금 오고있는 걸까요? 가고있는 걸까요? 흠뻑 젖어보고 싶어요. 바다에...

김여흔 2004-03-04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경님. 아이들의 그 해답, 정말 혼자 미친 뭐처럼 웃었어요. 요즘 아이들 참 넉살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죠. 님의 말처럼 문제에 문제가 있는 듯도 하구요.
사진은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편집한 거라서 잘 안 나타나지만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고 햇빛에 반사된 파도가 마음 시릴만큼 반짝였죠.
님 서제에서 우리 조카들이 볼만한 책들 좀 찾아봐야겠어요.
찾아주신 걸음, 소중하다는 말씀 전해요.

다시피운꽃 2004-05-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 심오함이 묻어나는, 한편의 글이었어요, 느끼는 것도 많고, 좋은 글 읽고 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김여흔 2004-05-1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오했나요? 꽃님.
처음 뵈는 분이시네요. 님도 남은 하루 행복하시구요. ^^
 


 

실업 Arbeitslosigkeit 1909
 
Käthe-Kollwitz
Charcoal
28.0 x 43.2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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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디 흰 저 색감...그림의 드리워진 그늘과 어우러져 어찌도 이리 서러울까요....
여인네의 사그라듬, 그래서 어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저 눈부신 흰 빛..금방이라도 증발할 것 같아요.
남자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저 크고 투박한 손을 통해 다가오네요. 울컥합니다....

김여흔 2004-02-29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작가에요. 오래 전에 <캐테 콜비츠와 노신>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었죠. 그때만 해도 그림이란 것에 별 흥미가 없었는데 캐테 콜비츠를 만나고 나서 많이 달라졌어요. 그녀 작품의 주된 소재는 죽음, 전쟁, 노동자, 굶주림과 같은 어두운 것들이죠. 처음엔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왜그리도 가슴이 쿵쾅 거리던지 혼났드랬답니다. 다시 책을 읽고 이 곳에 그림도 올리려고 했는데 요즘 책이란 놈한테 몰입이 어렵네요.
 

 

홀씨님께서 2003-09-30일에 작성하신 " 마흔, 잔치는 시작됐습니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마을 편지 9> 마흔, 잔치는 시작됐습니다.

어제는 생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마흔한번째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살아오면서 생일을 의식해서, 어떤 의식으로 치러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이해당사자인 스스로가 생일을 다른 날과는 달라야 한다고 전혀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도, 일체의 기획되거나 의도된 의식, 또는 행사류에 극도의 거부감 또는 어색함을 드러내곤하는 나를 진작에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냥 일상과 다름없이 그대로 편하게 내버려 두거나, 모르는 척, 가벼운 긴장으로 대해줍니다.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는 게, 보기에 따라서, 또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남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보이려는 연출된 모습으로 오인, 남을 불편하게 만들기 딱 알맞습니다.

나도 그리 받아들일까봐 불편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없습니다.

어떤 의식이나 행사의 주제, 또는 주인공 역을 감당하기에는,
내 하찮은 진심일지언정, 가만히 참아내지 못하기 떄문입니다.
개선되기 쉽지 않은 괴질로, 아마도 무덤속까지 안타까이 보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마을에 와서 생일 의식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초코파이 케익, 고급 곡주, 모두의 메시지를 새긴 양초, 고급 안주 등으로 데코레이션된 저녁식사 자리의 헤드테이블.
그리고 이어지는 생일 축하 노래.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힘들고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술이, 의식의 거부감에서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술은 어느 순간 마을 지도자인 박선생이 꺼내온 백포도주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우물속에 소중하게 보관했두었던 대포알 소주로 이어지고, 끝내 인근 안성면 단란주점(註 :말그대로 단란한 주점입니다. 도시의 그 왜곡된 그 주점이 아닙니다.)까지 쳐들어가 꺼이꺼이 노래를 하고서야, 지난했던 생일잔치의 끝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동향면의 면민체육대회, 즉 마을 잔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천절에는 누구의 결혼식 잔치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잔치가, 마을 곳곳에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만난 마흔, 또는 마흔하나.
이제, 잔치는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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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한! 홀씨 님의 마흔 잔치가 시작되신 것 같네요.
그것도 아주 신명나게~ ^^ 축하드릴 일이예요.

김여흔 2004-02-2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씨는 지금 보성 어느 차밭을 관리하는 일꾼이 되기 위해 그 곳에 계시답니다. 작년 12월 초, 남도기행 중 보성차밭도 다녀왔는데 한 겨울에도 운치가 있더라구요.
 

홍화씨님께서 2003-09-21일에 작성하신 "2003. 9. 20. 토요일 - 농협중앙회 팜스테이 행사"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침. 사무실에 나온지 얼마 안돼 전화가 왔다. 불씨다. 아침에 혼자 앞산엘 올랐는데 등산로를 제대로 찾지 못해서 엉뚱한 곳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지리를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다시 걸어 올 엄두가 나지 않으니 차로 데리러 오란다. 또 한번 사무실이 뒤집어졌다. “우째 이런 일이~” 차를 몰고 가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것도 길을 물으러 들어 간 집이 하필 권혁천 씨 댁이다. 도착해서 보니 불씨는 권혁천 씨와 마주 앉아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바지며 신발이 엉망이다. 30분이면 돌 코스를 1시간 30분이나 헤매고 다녔단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지러 그곳까지 데려다 주고 학교로 돌아 왔다.

팜스테이 행사 때문에 방문하는 가족들을 위해 황토방을 청소하고 동향면에 나갔다. 어제 맡긴 인절미를 찾고 막걸리 한 말을 사기 위해서다. 오늘 마을에서는 길을 정비하는 부역을 하신다고 했다. 마을 어른들이 다 모이는 자리라 인사차 떡과 막걸리를 준비 한 것이다. 동향면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잘 알고 있어서 외지에서 온 사람은 금방 알아보는 모양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살려고 왔느냐고, 가는 곳마다 물어 본다.

12시가 되어서 약속된 소나무 밑으로 올라갔다. 다 모여있을줄 알았는데 한분만 계신다. 점심은 각자 집에서 먹기로 했단다. 허탈한 맘으로 내려오는 길에 몇분을 만났다. 취지를 말씀드리고 막걸리와 떡을 건네 드렸다. 오후에 참으로라도 드시라고 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일을 하는데 그냥 돌아서 오기가 미안했다. 얼굴을 익히고나서 다시 일이 생기면 같이 해야 할 일이다.

점심 무렵, 손님들이 왔다. 겨자씨와 불씨가 손님맞이를 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일을 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는 작은 방에 불을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학교로 내려가고 혼자만 남았다. 밤새가 울고 가을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종이도 젖고 나무도 젖어서 불붙이기가 쉽지 않다. 겨우 불을 지폈다. 아궁이 앞에 앉아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난다. 매운 연기를 피하느라 하늘을 보니 어둠 속에서 나를 굽어보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내 안의 상념에 잡혀있었어도 그런 나를 바라보는 우주의 허허롭고 넓은 마음이 느껴진다. 집 뒤에는 언덕에는 집보다 세배나 키가 큰 나무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대문 앞에서 집을 바라보노라면 그 커다란 나무들이 집을 포옥 안고 있는 듯 하다. 밤에 올려다보는 그 나무들은 더욱 장하게 느껴진다. 고양이 세 마리가 살금살금 불 밑으로 찾아왔다.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다. 불 밑으로 찾아드는 여치를 잡아먹기 위해서다. 고요한 밤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하다. 내일을 날이 좋을 모양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데 전화가 울렸다. 홀씨다. 손님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청주를 한잔씩 돌리는 모양이다. 좋은 자리에 빠진 식구를 챙기는 홀씨의 마음이 정겹다. 불길을 몰아놓고 손을 씻었다.

모닥불 가에는 벌써 술이 한 순배 돌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아래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닥불을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끼었다. 20년 만에 이런 자리를 가져본다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기왕에 추억을 만드는 김에 확실하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기타를 잡았다. 별을 노래하고 추억을 노래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목소리를 모아 부르는 노래가 별이 되는 듯 밤하늘의 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겨자씨의 액매기(액 막이)타령이 구성지게 밤공기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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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화씨'라는 분의 글을 읽으니, 마치 한 편의 짦은 영화를 본 듯합니다. 황토방 주변의 나무들과 새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그리고 매캐한 아궁이의 연기 내음이 코 끝에 와닿는 것 같네요.
님이 올린 글들을 읽으며, 님과 주변분들하시는 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쁩니다. ^^

김여흔 2004-02-29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화씨는 춘천에서 양주로 이사하셔서 글 쓰는 일과 출판쪽 일을 하고 계시죠. 그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방에 제가 잠시 기거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