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대천이어야 하냐고 투덜대면서 기여코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 것도 발렌타인데이에...

온종일 햇볕 한번 들지 않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지칠대로 지쳐있던 때였다.
그 녀석은 나와 4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수시로 들락거리며 실실 쪼개는 낯으로 날 따랐다.
어느 날부터는 그 녀석의 연인과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맞먹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이뻤던 그 녀석,
작년 가을 어느 날 새벽, 죽어버렸다.
교통사고였다.
미친 놈, 나쁜 놈.
내가 춘천에 있다고 강촌으로 놀러와서는
출근하려는 날, 가지 말라고 징징대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인데.

그 녀석, 얄밉게도 춘천에 묻혔다.
그 것도 인연이라고
죽어서까지 날 따라다니냐고
며칠을 욕을 해대며 울고 울어댔다.

그 녀석의 연인과 함께 그 녀석이 잠든 곳에 다녀온 후,
대학원 시절에 내가 만들었던 온라인 카페를
그 녀석의 연인이 부활시켰다.

대천행은 그녀의 제안이었다.
대천이야 왠만한 사람이면 몇 번씩은 다녀왔을게다.
우리도 그러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곳에서 만나야만 하는
못된 녀석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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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천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흑백 사진이랑....후배 이야기랑.....흑~

김여흔 2004-03-01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MT 장소로 많이 가잖아요. 저는 예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 모르겠던데 다른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하네요. 대천항에도 들려볼까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프레이야 2004-03-0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여흔님, 다녀가셨더군요. 턱은 괜찮으신지...^^
전 흑백사진을 좋아합니다. 대천해수욕장은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흑백사진이 안겨주는 그 바다의 정서가 비슷하게는 와 닿는군요. 님의 욕나오게 슬픈 기억까지 묻혀있는 그곳의 파도는 지금 오고있는 걸까요? 가고있는 걸까요? 흠뻑 젖어보고 싶어요. 바다에...

김여흔 2004-03-04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경님. 아이들의 그 해답, 정말 혼자 미친 뭐처럼 웃었어요. 요즘 아이들 참 넉살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죠. 님의 말처럼 문제에 문제가 있는 듯도 하구요.
사진은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편집한 거라서 잘 안 나타나지만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고 햇빛에 반사된 파도가 마음 시릴만큼 반짝였죠.
님 서제에서 우리 조카들이 볼만한 책들 좀 찾아봐야겠어요.
찾아주신 걸음, 소중하다는 말씀 전해요.

다시피운꽃 2004-05-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 심오함이 묻어나는, 한편의 글이었어요, 느끼는 것도 많고, 좋은 글 읽고 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김여흔 2004-05-1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오했나요? 꽃님.
처음 뵈는 분이시네요. 님도 남은 하루 행복하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