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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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이런 종류의 글 앞에서 할 말이 없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명쾌하게 찔러주는 표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가슴이 뜨끔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눈물을 찔끔거리게 가여운 인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당황스럽다.

그저 이런 거리가 지금도 내 주변 어딘가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며,비난을 퍼붓고 분개할망정 나를 비롯한 평범한 중생들은 그 궤도를 크게 벗어 나지도 못하고,어기적 대며 고만 고만한 모습으로 산다는 것.자신의 아내를 구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구타 없는 집구석이 오히려 눈길을 받는 거리.세습되는 폭력.사회적 부조리.불신. 희망을 품는 이조차 없는 거리는 내게 한숨만 남겼다.휴우~~

이 사회가 능률과 품위를 얼마나 배격하고 있었으며,얼마만큼이나 도덕적 퇴폐와 무기력에 휩싸여 있었던가를 아무 꺼리낌없이 설파하고 있다...그들이 빠져 있는 깊은 권태와 무위 그리고 도덕적 타락 상태...오랫동안 식민지에서 살아오느라 주민들은 노동과 일에서 보람을 찾기보다도 무위와 빈둥거림에 퇴폐적으로 탐닉하는 습성이 들어버렸다.....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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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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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의 주인공들이 저마다 다른 물음표 앞에서 도전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안간힘쓰고 체념도 하는 모습이 관찰되어 있다.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인 백인 남자,사회주의를 꿈꾸는 급진주의자,말이 안통하는 가족 사이에서 음악을 꿈꾸며 자기만의 세계를 키워가는 소녀,흑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흑인 의사,이들이 자주 들르는 뉴욕카페의 주인 p옮긴이의 말 중

이 글을 통해서 타인의 말을 들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대안도 해결책도 간단한 조언도,모두 없어도 그만이다. 그저 자신의 속을 비워 낸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정화시킬 수 있었다. 대화가 아닌 독백만으로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었고,이해의 말없는 눈빛만으로 굽힌 무릎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달려가 나를 쏟아 낼 존재가 있음이 바로 힘이었다.

싱어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다.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창가의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끄떡이거나 미소를 지어서 이해한다는 것을 표시했다 p99 

나는 과연 내 아이의 말에 잘 귀기울이는 엄마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는 의논상대를 떠올릴 때 과연 엄마를 꼽아 줄까? 내가 항상 가르치려고만 드는 건 아닌지,아이의 마음을 받아주는 단계는 정확히 밟고 있는지, 아이의 감정상태는 외면한 채 현명한 재판관만 되려고 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이의 세계에선 공정한 엄마보다는 절대적인 지지자로서의 엄마,단단한 자기편으로서의 엄마를 그리고 있을텐데..

나는 나를 비워낼 대상이 있는지도...윽! 아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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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살어? 말어?
오한숙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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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차가웠던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던 내게,벼개를 등에 괴어주던 그 마음 하나에 기대어 그와 결혼했다. 그야말로 사랑 하나만 있으면 어떤 문제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만 같았던 시절, 낙관적인 물이 뚝뚝 듣던 시절에.But뜨 결혼은 생활인걸...결혼을 기점으로 둘 사이를 비집고 스믈 스믈 정체를 드러내며 올라온 유리벽들.

다른 부부들의 사는 모양을 보며 나도 웬만한것 같으니 위로도 좀 받고,현명하고 다양한 대처방법을 전수 받았으니 지금처럼 꾹꾹 누르며 사는 건 그만해야겠다는 결심도 좀 하고. 참으로 알뜰 살뜰한 글이었다.

결혼 할 시기가 되어 결혼했다. 그 흐름에 그냥 저냥 떠밀려,나 혼자 거스르면 뭔가 모자란 취급 받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쓸데 없는 열등감으로 남들처럼 제도로 들어 갔다. 준비 없이,겁도 없이,낭만적인 생각만으로 이제 우린 저녁에 헤어지는 아쉬움은 없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서 시~작.

둘의 시간은 결혼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함께 카트 밀며 쇼핑을 한 기억도,외식을 한 기억도 없다. 가뭄에 콩나듯 돌아오는 휴일엔 여기 저기 눈도장 찍어야 되는 의무만 남은 결혼 생활.

4년여만에 아이를 낳고 4년후 또 아이를 낳고,눈코 뜰 사이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우울감.내가 빠진 내 인생.억울하여라.

" 30대 아내=자식들에게서 벗어나야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떠난다는것 자체가 고역이다.그건 휴가라기 보다 가정주부 일의 야외판,다시 말해 야외 파출부인 셈이다...'

" 40대 아내=부엌이 없어야 ;...40대 아내들은 콘도를 기피한다.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싱크대가 보기 싫어서이다...더위와 모기에 시달릴지언정 방만 있는 민박이 낫다."

내 남자는 "사랑해"라고 사랑을 말로 한다.그러면서도 번번히 다 쓴 두루말이 휴지곽이나 칫솔 케이스,면도날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가 쓰레기통에 버린 재활용품을 꺼내는 건 물론 내 손이다. 내가 느끼는 사랑은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분리 수거날 새벽 재활용품을 들고 나가는 그의 등짝이다. 베란다로 내다 보면 요즘은 재활용 분리수거 하는 남편들이 부쩍 늘었다. 흐믓하다.

 정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노력하지 않은 부부는 서로 "내가 참고 산다"고 믿으며,서로에 대한 관심 없이 습관적으로 살 뿐이다. 부부관계의 견고함이 아이들의 정서나 지적능력에도 직결됨을 의식해서라도 노력할 일이다. 부디 내 아이만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를 바꿀 일이다. 내가 내 아이에게 제공하는 육아 환경이,내가 자랐던 육아 환경과 같다면 내 아이가 나를 닮지 않기 바란다는 건 붕어빵틀에서 붕어빵이 안나오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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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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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정열 앞에서 뒷걸음질 친다. 예를 다한 거부. 거부는 거부일뿐. 그저 상처일뿐. '섬세한 자신의 취향을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 썼어. 무슨 말을 하든 말꼬리에는 완충장치가 달려있는 듯이 들렸으며 언제나 부드럽고 정중하게 뭔가를 사과하는 것만 같았지"p20 싸우지는 않았는데 화해가 절실히 필요해 보이는 사이.그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은 끝내져야만 했다. 바닥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단단히 다문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간교한 미소. 그 마력에 빠져 기습적으로 한 선택.순리인줄로만 알고 거슬렀던 선택.선택 후엔 선택 전에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이 후회의 손을 잡고 반드시 따라 오는 법. 무엇이 사실이었고 무엇이 자기 최면이었던가. 차라리 깨어나지 말든지. 우린 그 후유증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혼란을 인내해야만 하는 대가를 치루며 사나보다.

세 명의 화자가 그들의 결혼 얘기를 한다. 결혼으로 한때 얽혀 있던 세 사람이다. 속도감있게 편안하게 읽힌다. 그런데 그 속마음이 잘 안잡힌다. 내가 이해 못했다기 보다,글이 다 내보이지 않은것 같다. 그래서 서운한 글이었다.

사랑 받는 것이 힘들어 사랑 받는 것을 참아내야 하기도 한다. 사랑을 견뎌내야 한다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사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의 고통만 드러나는데 말이다. 견뎌내는 사랑이 있음을 모른체 했나보다. 바로 그 옆에 당연히 있었는데도. 거부당하는 아픔만 아픔으로 인정해주는 세상이다.

본다는 것,안다는 것, 느낀다는 것 모두 잔인할만큼 주관적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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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2007-02-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우지는 않았는데 화해가 절실히 필요해 보이는 사이' 무척 공감합니다. ^^
 
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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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게 뭔가. 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가. 단순한 물음 같은데, 내겐 간단하게 내밀 답이 없었던 것 같다. 최근까지 엉뚱한 답을 끌어 안고 떠밀리듯 살았나 보다. 진짜 나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발견되고 있다. 그만큼 난 날 기만한 것인가, 시간이 날 혹사한 것인가.

벨자의 주인공 에스더도 스물 갓 넘은 나이에 자기 정체성 앞에 많이 흔들린듯 하다. 그래서 소소할 수도 있는 자극으로부터 와락 무너져 버렸나 보다. 그 추락에 생략이 많이 끼어 들어 읽는이로서는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에스더.  하기 싫은 과목도 무지막지한 의지력으로 홀로 A를 받아 내고야 말았던 그녀. 무서운 의지력을 가진 그녀도 목표 없는 혼란스런 미래 앞에선 극단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수차례의 자살 시도를 하며고,전기 충격 치료를 받는 동안,나도 실제로 두통을 느껴 몇 시간 책을 놓아야 했다. 

벨자는 요절한 젊은 천재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녀의 삶이 불운하다고 여겨서인지 그녀의 글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다소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고통을 고스란히 내게 전달했다. 죽음 앞의 두려움. 강박적인 열등감. 인간으로 부터 받는 치떨리는 배신감. 위선.처녀성의 신성성. 다소 우울감에 빠져 있는 내게 날 비춰주는 글이었다. 이런 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어린 아이들도.

나의 아이가 날 찾아 오기 전부터 품었던 한가지 바램이 있다. 나의 아이에게 바라는 한가지. 하고 싶은게 뭔지 확실히 아는 아이

아이의 욕구를 너무 차단하지도 않고,너무 쉽게 응해 주지도 않고, 수용과 거부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타협점을 찾도록 유도해 줘야 한다. 거부 쪽에 치우쳤던 키를 서서히 조정해 가고 있다. 나의 아이가 필요 이상의 좌절감으로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자존감있는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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