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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가정이 썩었다. 편안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정은 흔적 없다. 세상이 할퀸 상처를 안고,가족에게 돌아가 봤자 멸시뿐이다. 아픔을 가족에게 드러내 보여봤자, 가족으로부터의 비난이 더욱 가혹하다. 세대가 합쳐지면 그 골은 더욱 깊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종속물인양 쥐락 펴락하며, 자식들은 수동적으로 끌려간며 자란다. 자유를 갈망하던 자식들이 독립할 정도가 되면,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자식들의 다리에 엉켜 붙는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갈 곳이 없다.
부모가 줘야할 사랑과 자식이 줘야할 기쁨은 실종되고, 의식주와 관련된 건조한 고리들로만 가늘게 기워진 가정은,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가정은 흉칙한 돌연변이들을 양산한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들을 키워서 독립시키면, 그 순간 부모로서 할 일은 다한 거야. 이미 우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보답은 다 받았어. 고물고물한 생명체로 태어나, 자라나며 우릴 기쁘게, 행복하게, 웃게 해준거로 서로 다 주고 받은 거야. 그저 지들끼리 행복하게 살길 바라면 되는 거야." 수 년이 지났어도 선명하게 박혀 있다. 서로 얽어 매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기 힘든걸까.
일본 부동산 유통의 문제,법원 경매 제도의 문제, 법률의 사각지대에서 활약하는 버티기꾼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내게 보였던 건 가족의 부패상 뿐이었다. 아버지와 자식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들끼리의 재산 갈등. 무관심. 방치.폭력.익명성. 모두 악귀 같이 섬찟하며,나 또한 그 가족의 덫에 걸려 있음이 공포스럽다.
사건의 서술은 갖가지 정보를 그러모아 수사일지 형식을 취했다. 주로 탐문 수사나 주민들의 증언,제보,차례로 등장하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기록하는 형태이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들은 단순한 정황 증거로 밖에 활용 되지 못했다. 최근의 추리 소설에선 증거가 바로 사건 해결로 직결됨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 방법은 꽤나 원시적인 편.
문학적인 면에서의 아쉬움은 있으나,사건을 놓치지 않고 쫓고 싶은 욕구를 내내 자극한다. 흡입력 있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