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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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그의 묘사를 따라가는 설렘이 사건의 추이보다 더 흥미롭다. 1939년 발표된 작품이니 만큼 사건해결에 과학적인 의존도가  낮다.  가능한 건 가설뿐. 그래서 서너 발짝씩 뛰어 넘는 말로의 추리를 따라가려니 숨이 턱까지 찬다. 삼십대 초반의 남자가 어찌 그리 예리한 눈썰미를 지녔을까. 상대의 맘을 꼭 찍어내니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로 앞에서 눈을 깜빡이는 횟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듯 싶다.

숨결, 호흡의 무게도 고스란히 그려낼 듯한 묘사에 초반부터 내 눈엔 힘이 들어가고 뒷통수 쯤에 찌리릿 가느다란 번개가 지나갔다. 르귄이나 젤라즈니에게서 순간 순간 느낀 반짝임을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오래간만에 포착했다. 챈들러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며 동시에 위트가 걸려 있는 감상적인 부분이 글 전반에 깔려 있다.

그녀의 미소는 의례적인 것이었지만 멋지다고 우길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p38  

이런 밤에 택시를 기다리다가는 턱 밑에 수염이 새까맣게 자랄 것이다. p 63  

잠도 푹 자고 별로 빚진 돈도 없는 남자와 같은 목소리였다. p69   

나는 어찌나 천천히 숨을 내쉬었는지 숨이 입술에 걸릴 지경이었다. p70

어지간한 소설은, 특히 스토리 위주의 글은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정 읽을 거리가 없을 경우가 아니라면. 허나 이번엔 책장을 덮자마자 다시 읽어 보고 싶었다. 이번엔 말로의 속내를 좀 더 들춰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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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F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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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녀. 그 눈치를 보는 부모.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로 부모 편의대로 지시하면 순종해야하는 부모의 종속물 정도라고 느끼며 자랐다. 그러니 자식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준다거나,존중한다거나, 자식의 뻔한 거짓말 앞에서도 자식의 자존심을 위해 이를 물고 입을 다물어주는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건,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서서히 알게 된 일이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무턱대고 막연하게 준비없이 덤빈 탓에 나의 아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아이의 의견을 수용하지는 못하더라도,아이의 맘을 읽어 주기라고 함으로써 아이의 불만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굳이 목도리를 하지 않을 날씨인데도 목도리를 감고 가려는 아이에게 더우니까 벗고 가라는 명령조의 차가운 말을 뱉어낸다. 우리 **가 직접 만든 목도리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구나... 정작 **의 마음을 외면한 채.

작은 행동 교정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후에야 겨우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제발 좀 말좀 들으라고 얼마나 말을 해야 들을거나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나 자신조차도 습관화된 행동의 변화가 어려운 처지이며, 나또한 이미 그런 어린 시절을 겪었다는 걸 잊고, 아이에게 힘든 변화를 강요하며 아이를 좌절 시키고 부모인 나도 절망하기를 거듭한다. 밤에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서 소변을 참고 있는 아이에게 제발 화장실 가고 싶으면 온집안 식구 다 깨우지 말고 조용히 다녀오라고 짜증 섞인 말이 나온다. 우리 **이가 혼자 화장실 가기가 무서운 모양이구나 라는 말은 비몽사몽 속에 짜증 속에 묻혀 버린다.

아~~너무나 힘들다. 아이를 키우기가 아이가 커 갈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가정이 위태로워진다.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은 서서히 오그라든다.

아버지가 다가서려 해도 아이들이 먼저 뒷걸음 치고 벽을 만든다. 내 아이는 너무나 바른 아이인줄 알았는데,내 아이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이는 바로 나,부모였다. 학교에서 아들은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면서 부모에게 한마디도 털어 놓을 수 없이 부모는 멀리 있다. 부부 사이도 껍데기만 남아있어, 퇴근후 집에 들어갈 때, 불이 모두 꺼져 있는 집이 오히려 편안하다.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자식들. 십대들을 무서워하는 어른들. 환갑을 넘기고 자식들 출가시키고 이혼을 하는 노부부들. 이혼 전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견뎌낸 시간이 너무나 억울하다.

이 소설에서는 여러 모습을 지닌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따갑다. 난 소재에 빛을 많이 품고 있는 글을 좋아한다. 그 속에서 행복하고 싶어서다.  

*히나 인형 : 옛날 왕궁 사람들을 상징하는 일본 고유의 옷을 입은 인형.히나 축제 때 제단에 올려 놓음 .히나 축제때 강에 떠내려 보낸다. 딸의 불행을 히나 인형과 함께 강에 흘려 보내며 일년 동안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비는 인형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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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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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행복 쥐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아기는 없나보다. . 타인을 의식할 수 있게 되면서 행복에 틈이 생기고,그 틈으로 고통의 감정들이 고이나 보다.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불운을 탓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이 덜 갖고 있는 것, 그것이 재능이든 물질이든 그것에서 우린 안도하고, 타인이 더 갖고 있는 것에 대게 질투나 열등감을 갖는다. 인간인것을...

남에겐 있는 게 찰리에겐 덜 주어진 백치로도 살아 보고, 남에게 없는 걸 넘치게도 가진 천재로도 살아 낸다. 백치였을 때의 부족함을 채운 후엔 찰리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모르고 살았을 땐 행복했는데, 알아지고 보니 세상은 편법이 자행되는 곳, 비정한 곳이었다.

나를 조롱할 수 있는 한, 나를 노리개 삼아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백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나의 눈부신 지적 성장이 그들을 위축시키고 그들의 무능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배반한 것이며, 그들은 그래서 나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p127

앨저넌은 모르모트(실험용 쥐)다. 찰리보다 먼저 똑똑해지는 수술을 받은 흰쥐. 앨저넌의 변화가 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기에 찰리는 유리구슬을 통해 미래를 보듯 앨저넌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읽는다. 보여지는 미래가 아픔이라면 그 미래를 바라보는 찰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천재가 된 후 찰리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 눈물이 찔끔났다. 항상 수치심으로만 존재하던 자신이었는데.천재가 된 모습으로 엄마 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엄마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난 항상 아이의 부족한 면만을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죄책감을 안느낄 수 없었다.  이미 아홉 개를 갖고 있는 아이에게 격려와 인정은 생략하고, 모자란 한 개만 채워 넣으라고 닥달해서 아이의 긍정적인 자존감을 훼손하고 있다. 매일 매일 다짐하며 아이를 대하려고 하지만 등교시간은 다가오는데 반도 더 남은 밥그릇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면 헐크가 된다. 나 자신도 바꿀 수 없으면서 나보다 자기 통제가 힘든 어린 아이에게 변화를 막무가내로 강요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밥 좀  남기면 어떤가... 지각 좀 하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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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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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썩었다. 편안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정은 흔적 없다. 세상이 할퀸 상처를 안고,가족에게 돌아가 봤자 멸시뿐이다. 아픔을 가족에게 드러내 보여봤자, 가족으로부터의 비난이 더욱 가혹하다. 세대가 합쳐지면 그 골은 더욱 깊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종속물인양 쥐락 펴락하며, 자식들은 수동적으로 끌려간며 자란다. 자유를 갈망하던 자식들이 독립할 정도가 되면,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자식들의 다리에 엉켜 붙는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갈 곳이 없다.

부모가 줘야할 사랑과 자식이 줘야할 기쁨은 실종되고, 의식주와 관련된 건조한 고리들로만 가늘게 기워진 가정은,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가정은 흉칙한 돌연변이들을 양산한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들을 키워서 독립시키면, 그 순간 부모로서 할 일은 다한 거야. 이미  우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보답은 다 받았어. 고물고물한 생명체로 태어나, 자라나며 우릴 기쁘게, 행복하게, 웃게 해준거로 서로 다 주고 받은 거야. 그저 지들끼리 행복하게 살길 바라면 되는 거야." 수 년이 지났어도 선명하게 박혀 있다. 서로 얽어 매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기 힘든걸까.

일본 부동산 유통의 문제,법원 경매 제도의 문제, 법률의 사각지대에서 활약하는 버티기꾼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내게 보였던 건 가족의 부패상 뿐이었다. 아버지와 자식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들끼리의 재산 갈등. 무관심. 방치.폭력.익명성. 모두 악귀 같이 섬찟하며,나 또한 그 가족의 덫에 걸려 있음이 공포스럽다.

사건의 서술은 갖가지 정보를 그러모아 수사일지 형식을 취했다. 주로 탐문 수사나 주민들의 증언,제보,차례로 등장하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기록하는 형태이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들은 단순한 정황 증거로 밖에 활용 되지 못했다. 최근의 추리 소설에선 증거가 바로 사건 해결로 직결됨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 방법은 꽤나 원시적인 편. 

문학적인 면에서의 아쉬움은 있으나,사건을 놓치지 않고 쫓고 싶은 욕구를 내내 자극한다. 흡입력 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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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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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부인,브라운 부인,댈러웨이 부인. 시대 순으로 배열하면 이 순서다. 1923년. 1949년.1990년대.

각기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이다. 마지막에 브라운 부인과 댈러웨이 부인의 만남이 짧게 서술된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교대로 나온다. 아무런 기본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었던 터라 초반부엔 읽을 수록 인물간의 관계 정리가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옮긴이의 말" 중 인물들과의 관계와 이 소설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 지 살짝 컨닝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스토리 전개가 거의 정지화면 수준이다.  하루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심리 묘사나 사물을 관찰하는 시점이나 사고의 시점들이 주를 이룬다. 과거의 얘기라도 끼워넣었다면 정지된 느낌은 안받았을 텐데, 내가 느끼기엔 오로지 인물들 각각의 현재위주로 다뤄져있다.

서술된 묘사들이 나의 경험으로는 쉽게 동감하기엔 난해한 비유와 직유들이어서 힘들었다.  읽었던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다 나중엔 그냥 그러려니 넘긴 문단도  많다. 문장이 대체로 길었고, 괄호를 사용한 부연이 많기도 하고 길기도 해서 글읽기의 흐름을 막기도 했다.

동성애와 에이즈,  죽음을 다루고 있어,소재 자체가 잿빛이며 인물들의 사고도 대체로 부정적인것 같다. 너무나 예민하여 그들의 신경을 안건들이고 살기는 불가능해보였다.

내가 너무 쉬운 책들만 읽었나 되돌아 보는 기회였으며, 대체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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