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고 보니 살면서 흑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해외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따로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기회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물론 대학 때 영어 학원을 다닌 적도 있다.하지만 흑인 선생은 0%였다.그 상황은 영어 조기 교육의 광풍이 불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왜 영어학원에는 흑인이 없을까?  학원장들은 학부모들의 핑계를 대면서 이렇게 말한다.학부모들이 흑인 선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그렇다면 학부모와 학원장들이 좋아하는 영어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대개가 미국출신 금발의 백인 미혼 여선생이다.외국인 학원 선생 중에는 특A급이 바로 이들이다.영어 선생을 뽑는 것인지 헐리우드 영화배우를 뽑는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인은 백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유색인종이다.하지만 우리의 내면 세계는 유색인종임을 거부한다.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백인의 것에 가깝다.근대화 과정에서 백인은 문명의 상징이었다.또한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었다.백인들의 이 이미지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가진 정치,경제,사회의 독보적 영향력으로 인해 세대를 걸쳐 내면화되어왔다.미국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미국에 대한 열등감은 그들에 대해 동일시하는 감정으로 이어진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미국의 중심이라는 WASP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구축했다.이에 반해 흑인은 그 대척점에 있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흑인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들을 생각해보면 대개 부정적인 용어들임을 알 수 있다.그나마 몇 몇 운동선수들과 뮤지션 덕에 조금 단어의 수준이 격상되었을 뿐이다.

프란츠 파농은 흑인을 비존재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그들에게는 단 하나만의 운명이 존재한다.그것은 백인이 되는 것이다.파농은 흑인들이 흑인존재를 인식하지 조차 못하는 상황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하지만 그는 먼저 이것이 이중적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먼저 경제적 절차의 소산이고 다음은 열등감의 육화 때문이다.흑인들의 열등감은 우선 언어적 태도의 변화에서 감지된다.언어는 한 문화의 총체를 나타내는 상징이다.식민지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흑인들은 우선 프랑스어 발음에 대해 열등감을 갖는다. 'R자를 들어마시는 앙띨레스 촌닭'이라는 말은 흑인들이 갖고 있는 발음 컴플렉스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불행하게도 영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발음상의 컴플렉스도 이와 유사하다. "L 과 R의 불분명한 구분,P와 F의 혼재,th발음의 곤란함"  영어발음에 대한 한국인의 컴플렉스는 항상 일본인의 발음을 걸고 넘어진다."일본놈들의 '마꾸도나루도 (맥도널드)'" 이를 통해 영어 발음의 컴플렉스를 위장한다.하지만 영어민이 보기엔 '맥도날드'나 '마꾸도나루도' 나 오십보 백보일 터이다. 파농은 웨스터만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흑인들의 열등컴플렉스는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할 흑인 지식인 계층 내부에서 오히려 보다 심각한 형태로 현상되고 있다......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 자신을 유럽인 혹은 유럽인들이 이룩해낸 성과물들과 거의 맞먹는 존재로 상승시키는 착각을 감행한다."

파농은 언어문제에 있어서 백인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흑인들에게 말을 건내는 백인들은 하나 같이 흑인들을 아이 대하듯 한다.이죽거리고,속삭이고,달래고,어르고,속이고.어떤 특정 백인만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방식으로 흑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스스로의 수준을 하향조종해 가면서 백인들은 안도감을 느낀다.이것이 그들이 흑인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현실을 재확인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우리보다 더 피부색이 짙은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백인들의 태도를 취한다.현재도 백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파농의 이야기는 결혼과 성의 문제로 넘어간다.파농은 <나는 마르티니크의 여자입니다>라는 책의 몰자아적 태도를 비난하며 흑인들이 가진 맹목적 백인화의 욕구를 비판한다.파농은 결론적으로 흑인에게 탈출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백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흑인의 집착,백인의 힘에 대한 동경,보호막을 확보하기 위한 흑인의 집념,이것이 흑인의 자아 그 존재와 소유를 결정하는 구성성분이라고 결론짓는다.백인이 된다는 것은 흑인에게 진,선,미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파농의 탈식민화 논의의 칼날은 정체성을 상실한 흑인만을 겨누지는 않는다.열등감의 노예가 된 흑인이나 우월감의 노예가 된 백인이나 모두 신경증의 증후를 드러내고 있는 존재이다.<흑인과 정신병리>의 장에서 파농은 백인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흑인공포증에 대해 설명한다.그 근원에는 흑인들의 자기보다 우월한 성적능력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고 파농은 주장한다.외국에서 만든 포르노가 쉬운 예가 되겠다.이것 저것 다양한 판타지가 나오지만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매저키스트적 관계이다.또는 거대한 흑인남성과 왜소한 아시아 여성의 관계....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은 본 적이 거의 없다.많이 안봐서 그런지 몰라도....백인에게 흑인의 중심은 성이다.특히 생식기이다.사실 이것은 허위의식일 뿐이다.하지만 백인들은 흑인을 동물=자연의 단계로 파악한다.그 자유분방함과 신체적 강건함등은 백인들에게 흑인들에 대한 성적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흑인의 성적 잠재력에 대한 상상이 공포로 치환되는 것이다.이 공포는 흑인을 더럽고 사악한 존재라는 이미지로 투사된다.백인들은 이제 흑인이라는 좋은 투사 대상을 찾게 되었다.그들은 그들의 문명화 과정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욕망들을 흑인에게로 전부 투사해버린다.음험함,어둠,죄,사악함,그림자,깊은 심연....사실 그 안에는 가장 비도덕적인 충동과 부끄러운 백인들의 욕망이 들어있음에도 말이다.흑인 공포증에서 시작된 백인들의 신경증은 결국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흑인들의 대상으로 배출함으로서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은 책 서두에서 흑백간의 악순환을 풀 고리를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그 고리는 백인의 우월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흑인정체성과 흑인 역사의 위대성을 밝혀내는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파농은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항담론으로 과거의 역사,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흑백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담론의 반복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파농이 정치적으로 흑백이 조화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 제시하지는 않는다.그건 그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는 백인의 머리로 세상을 사는 흑인들에게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말을 던진다.

"내가 아는 한가지는 이것이다.타자에게 인간의 행동을 요구할 권리가 내게는 있다는 것말이다.그것 뿐이다.한가지 의무도 있다.나의 자유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말이다.....

...나 유색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도구가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인간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는 영원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한 인종에 의한 다른 인종의 노예화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인간,그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가 그를 찾아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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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6-05-30 11:51   좋아요 0 | URL
프란츠 파농 꼭 한번 읽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접해봐야 겠습니다. 드팀전님 요즘 건강하시죠? ^^

드팀전 2006-05-30 12:58   좋아요 0 | URL
아..예.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좀 그러하네요.어쨋거나 건강은 합니다.ㅎㅎ 약간은 의무감 같은 걸 가지고 읽었습니다.책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문체가 좀 왔다 갔다합니다.논리적 서술이다가 또 흥분된 주장이다가...거기에 잘 모르는 흑인 문학가와 사상가들이 등장합니다.번역도 예쁘다는 생각은 안들더군요.어떤 님들 처럼 원문과의 비교를 해본 건 아니지만 읽다보면 걸리곤 합니다.'네그리튀드'나 '문투' 같은 낯선 단어들도 나오는데 네이버에 검색해서 알아보기도 했습니다.이 책은 다른 번역본이 언젠가 나오주면 더 좋을 듯해요.

보르헤스 2006-05-30 17:5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언제나 번역이 문제군요 ^^

코코몽 2007-05-09 00:11   좋아요 0 | URL
정말로 저도 읽는 데 고생 좀 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가 전형적인 번역투여서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