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황홀 - 윤광준의 오디오이야기
윤광준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방에 처음 오디오란게 생긴 건 중학교2학년때 이다.거의 1년을 '오디오 오디오' 타령을 했다.부모님들은 늘 그렇듯이 얄팍한 조건을 -당신들은 동기유발이라 믿겠지만-달면서 오디오를 부상으로 내거셨다.조건이란건 누구가 알다시피 시험 성적이다.결과가 좋았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해 여름이 가기 전에 내방엔 나만의 오디오가 생겼다.당시에 우리 반에서 자기방에 오디오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귀했다.(잘사는 동네가 아니어서 그럴 수 도 있겠지만..) 한 30만원 돈 되는 인켈 오디오였다.내 방 한쪽 면을 거의 장악하다시피했다.그 당시 오디오는 기술발전의 혜택을 덜 누려서 그런지 성능에 비해 좀 비대했다. 동가격대의 요즘 나오는 것들에 비하면 훨씬 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작은 내 방은 새로 들어온 오디오의 존재 하나로 꽉찬 느낌을 주었다. 그날 이후 주구장창 음악을 듣고 음반을 사모으기 시작했다.아마 내가 처음 산 LP음반이 'WHAM','들국화 1집' 이었던 것 같다.

좋은 소리는 한번 들으면 그 감흥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예전에 가끔 시내 나가서 오디오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소리를 듣곤 한 적이 있다. 이게 '후천 개벽'하는 소리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쿵쾅거린다.그리고 저걸 집에서도 듣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마구 생긴다.하지만 가격대를 알아보곤 맘을 접는다.눈으로는 아쉬움을 귀로는 감동의 여운을 남긴채 샵을 나가야만 했다.그러면서 다짐만 한다. '다음에 이사가면...다음에....'  결국 나에게는 하이앤드는 공간과 가격이라는 벽때문에 늘 미루어온 욕심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매니아라는 중독성 명사에 대한 나의 회피때문이다.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는 매니아가 좋게 들리지 않는다.사람들은 매니아를 한 분야에 자신의 열정을 토해내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묘사한다.저자 역시 오디오 매니아로서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애정을 느끼고 스스로도 프라이드를 느끼고 있는 듯 하다.물론 매니아들에 대한 곱지 않는 시선도 있다. 대게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대상에 대한 의구심때문인 듯 하다.그 기준은 무색무취한 일반인의 시각이다.그런 시각으로 보면 어른이 다돼서 인형옷이나 입고 다니고 징그러운 거미를 집에서 키우고 세상의 온갖 나이키운동화를 모으고 하는 것들이 정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보인다.

내가 매니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매니아들이 갖는 자기영역의 구획화와 자기 전문성에 대한 스스로의 맹신때문이다.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하지만 매니아임을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분야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허다하다.자신이 취미든 전공이든 얻게된 지식이 다른 모든 것과 유기적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결국 한우물만 열심히 파서 우물안에 개구리가 되어버리는 것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또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대한 겸손은 밥먹듯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예를 들어 인라인 동호회라고 치자.거기에는 자주참가하는 주도세력이 있고 또 가끔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또 이제 갓 시작을 한사람도 있을 것이다.갓 시작한 사람이 들어오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는가? 관심과 애정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에 대한 설이 대부분이다.이럴때 이렇게 해라 저럴땐 저렇게 해라....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또 어떤 잘난 이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마치 자신이 갑자기 아이가 되어버린 듯 하다.경험과 지식이 스스로를 너무 당당하게 만들어버린다.매니아들은 그러한 함정에 늘 노출되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쓴 듯하다.그렇다면 나는 적절한 수혜자인 셈이다.이 책을 보는 동안 좋은 기기들에 마음을 빼앗겼고 또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스스로 상상하며 즐거웠다.기계적인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수 있다.여기에 등장하는 오디오기기들은 디자인적으로도 아주 훌륭하다.그래서 많진 않지만 사진보는 즐거움도 크다.린의 턴테이블,탄노이 킹덤,골드문트 아폴로그,소누스 파베르의 과르네리오마주 스피커등등. 그냥 내부 기기들을 모두 빼버리고 장식용으로 설치해 놓아도 인테리어의 수준을 높여줄 만한 탐나는 디자인들이다.저자는 좋은 오디오가 기술적 발전 하나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오디오라는 것은 인간의 예술적감각,인문학적 감성들과 직접적 소통이 이루어진다.제작사가 이러한 점에 대한 소신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한 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이점때문에 하이앤드오디오가 일반 가전제품과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한마디로 장인정신이 없다면 오디오도 없는 셈이라는 것이다.그런 의미라면 오디오기기들은 제품이라기 보다는 작품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장인의 기가 배어있는 작품이 하이앤드의 세계이다 보니 역시 가격은 어마어마하다.저자가 이 책에 소개한 기기들,보기에 아름답고 좋아보여 하나 살까 생각하는 분들은 인터넷 한번 뒤져보시면 생각이 좀 바뀔 것이다.강남의 부자들이 선호했다는 탄노이같은 경우 대략 프론트스피커만 2천만원 수준이다.예쁘장하게 생긴 윌슨베니쉬의 서클턴테이블은 4백만원대이다.(모양진짜 예쁘다)골드문트의 풀에필로그는 2억원대의 가격이다.물론 한 브렌드에서도 가격대비 천차만별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조금 한다 하면 집전세값은 거져날릴 정도의 가격이니 취미치고는 상당히 돈이 많이 들아가는 취미이다.내가 오디오계에 아직 발을 못붙이고 있는 것도 더 좋은 소리를 찾아헤매다 거지될까봐서이다.저자는 말한다.진짜 오디오파일중 넉넉한 사람들은 없다고 다들 적금깨고 부인몰래 카드 할부하고... 나름대로 좋은소리에 대한 집념처럼 들리기는 하는데.... 카드 할부에 적대적인 나는 그런게 영맘에 들지 않는다.없으면 없는 선에서 멈출지 알아야하는데 소리 욕심에 삶이 부대끼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따지고 보면 그러한 소리 욕심의 대부분은 르네지라르가 예기한 '타인의 욕망''매개된 욕망'일수 있을 텐데 말이다.그러한 욕망은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고 그도 말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진짜 맘에 안드는 얄팍함에 대해 지적하자.

저자는 오디오와 음악을 통해 삶을 배웠다고 한다.이러한 표현은 사실 매니아들의 상투적 표현방식이다.정말 그랬을 것이다.독재반대투쟁에 사람들이 실려갈때도 저자는 고개를 파묻고 음반만 돌려다고 스스로 부끄러워한다.세상모든 사람이 다 돌들고 병들고 할 필요는 없다.그냥 부끄럽다 하면 아무도 뭐라 안한다.그런데 저자는 그 부끄러움을 음악에 돌렸다. '나는 숨죽여 흐느끼며 존바에즈의 '우리승리하리라' 밥딜런의 '블로잉인더 윈드'를 들었다,나는 위대한 아티스트들로부터 자유와 희망,절망과 고독을 하나씩 배워갔다.' 이게 무슨 풀뜯어먹는 백해무익한 변명이란 말인가.내가 답답한부분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사후 피난처로 음악을 끌고 들어가는 태도때문이다.흔히들 예술가들이나 예술가인 척 하는 사람들인 정치적 변동기에 자주 취하는 방식이다.아닌가? "세상이 혼란할때 음악과 미술의 한차원 높은 세계에 계시다 세상이 안정되면 그때 나는 다른세계에 잠시 가있어서 ...잘 모르고...좀 미안하기도 하구...그러네. 이거 아닌가?"  내가 무슨 극렬행동가는 아니다.단 매니아들이 -특히 예술적 매니아-이 예술을 등에 없고 둘러내는 변명에 자다가 뺨맞는 예술이 불쌍해서 그런 소리한번 해본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술을 등에 없은 저자의 얇팍한 상상력은 이런 형태의 글을 남긴다.좋은 CD플레이어가 들어왔다는 가게주인의 이야기에 오디오가게로 가면서 하는 말이다.

"오디오숍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착잡하다.아니 즐겁다.조금 후면 성공한 뉴욕의 여피족들이 사용한다는 '와디아'CD플레이어가 내 것이 된다.영화에서 보았던, 마천루의 야경이 창 밖에 비치는 푸른 색조의 세련되 거실에 놓여 있던 바로 그 기종이다.갑자기 내가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선 기분이 든다."

좋으셨을 것 같다.그 훌륭하신 뉴욕의 여피님들과 어렵사리 같은 반열에 오르셨으니.!!  생각은 저정도 수준의 경박함이나 오디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다. 나는 매니아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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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7-19 18:05   좋아요 0 | URL
아, 드팀전님... 제가 어찌 당신의 손을 들어드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보르헤스 2006-06-10 16:03   좋아요 0 | URL
역시 드팀전님! 기대를 져버리시지 않는군요.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더군요. 오디오란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던가요? 그의 오디오 찬양엔 음악의 자리는 없더군요. 음향만이 있을 뿐이지. 하이엔드 오디오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쓰느니 차라리 연주회나 음악회에 한번이라도 더 가는게 나을듯 합니다. 그가 그렇게나 추구하려는 진정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