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up시리즈에 식구가 하나 늘었다. 바디우,아감벤, 지젝에 이어 바우먼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다. 바우머너의 책은 비투비시리즈의 <자유>를 본 적이 있었는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책은 여기 저기서 다양한 의미로 씌이고 있는 '자유'라는 개념- 특히 정치사상적 측면에서-에 대해 개념별로 정리해 놓았던 책이었다. 바우먼은 자유와 소비주의의 거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그 때 따라 읽고 있지는 못하지만 what's up시리즈는 읽을 요량이기때문에 이 책 역시 관심이간다. 이 책에서 '쓰레기'는 자본주의 하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남미 음악이나 아엔데의 칠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빅토르 하라를 잊을 수 없다. 이사벨 아엔데의 소설 중에는 하라를 롤모델로 쓴 작품도 있다. 하라를 떠올리면 그 유명한 마추피추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이 책의 한길사판을 읽었다. 그 때 제모이 <끝나지 않은 노래>였다. 이 책을 봤을 때 새로운 빅토르 하라의 책이 나왔나 싶었다. 그런데 저자가 조안 하라였다. 번역자 역시 동일하다. 결국 <끝나지 않은 노래>의 새로운 판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소홀히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시대적으로 묘한 기시감을 준다. 이상하지 않은가? MB정권이 들어서고 <자본론>이 나오고, <빅토르하라>가 다시 나오고...
소설 <사이더 하우스>를 본 순간, 영화 <사이더 하우스>를 떠올렸다. 영화도 소설도 보지 못했다. 다만 영화 포스터는 기억이 난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업고 길을 가는 그림이다. 멀리 시골 농가가 보인다.
지나칠 뻔 했는데...이 소설의 작가가 존 어빙이었다. 위트와 블랙유머로 가득찬 <가아프>를 썼던 그 사람이었다. 도서 검색을 해봤더니 존 어빙의 책은 이렇게 두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이더 하우스>를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진집이다. 해마다 한 두 권의 사진집을 보는데, 올해 아마 이 사진집을 볼 듯하다. 건축가 승효상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이 사진 집이다.<에드 반 데르 엘스켄> 알라딘 몇 개 올라 있는 사진들이 마음이 들었다. 일상적인 모습들 속에 무언가를 헤집는 모래 띠끌 같은 것은 정서들이 들어온다. 사진에 일말의 흔들림을 조성한다. 당신이 잠든 침대 밑의 악어같은 것들...한 컷에 그런 긴장감 같은 것들을 담아 낼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작가의 능력이다.
이 책 역시 건축가 승효상의 서재에서 눈길을 끌었다. 우연히 그 글들을 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책일 듯 하다. 이런 것을 두고 책과 사람도 인연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침묵은 인간의 근본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하기 시작하는 침묵이다. 음악의 마지막 소리가 사라졌을 때 침묵이 더 잘 들릴때는 없을 것이다."
음악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명문 중에 이런 게 있다.
'최고의 음악가란 어떤 음악가인가?' 라는 질문에 이런 답이 있었다. '그건 쉼표를 가장 잘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나는 가끔 이런 관념적인 에세이를 올리거나 그에 대해 쓸 때, 어줍잖은 선도반들이 '공' 하면서 '공'치는 소리 해대는게 싫다. 그냥 당신이 그 세계를 다 알았으면 '염화미소'하고 스스로 '부처'라 칭해라. 김치 겉저리 같은 선도반들...하여간...내가 피하는 부류다. 지나 나나 '선 소비주의자들'인 주제에...
마지막 책은 <행복한 집구경>이다. 처음에 이 책 저자의 이름을 얼핏 봤을 때 나는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을 연상했다. 왠지 일가 친척쯤은 될 듯 보였다.
내가 집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집에 관심이 많다. 당연히 집 안 인테리어나 가구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오는 돈 질하는 집구경 <행복이 가득한 집>도 가끔 들척인다. 지금도 한옥에 관심만 많아서 한옥 관련된 책을 틈틈히 본다. 와이프랑 연애하던 시절, 고택 구경은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내가 한옥을 지으면 어떤 이름을 지을까 혼자 고민해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연히 세상에 어떤 집들이 있는지, 세상의 핸드메이드 집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책값의 압박이 좀 있어서 그게 고민이다.
브랜드 아파트 광고였던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보여준다." 라는 식의 카피...다분히 과시적 소비를 조장하는 카피다. xx 같은 카피다. 그런데 또 다르게 성찰적으로 생각해보면 저 말은 다른 반성을 하게 한다. 즉 내가 사는 곳...00아파트..00동..000호...전국에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같은 이름을 가진 곳이 얼마나 많은가? 서울,부산,대구....등등...모두 같은 모양에, 같은 위치에 TV를 놓고, 같은 위치에 침대를 놓는다. 아파트를 식빵자르듯이 꼭대기층에서 아래로 잘라내면 각 층마다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을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율적이라고 믿지만 이미 구획된 공간구조 속에서 사물의 위치만을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자율적인 인간처럼 행동한다. 착각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보여준다" 는 XX같은 카피에 광분하며 '썩은 자본주의 꽃' 같은-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넘실거리는 메타포에 취하지만 않으면, 해방의 길이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