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엄살을 부린다. 지나고나면 항상 그것이 '엄살'이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물론 어떤 일이 처음 시작될 때 실재로 능숙한 사람들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군대가서 가장 힘든 시기는 이등병이고, 회사에서는 수습사원일 때다. 사람들의 관계, 업무의 특성, 조직의 문화, 일의 숙련도 등이 모두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경제학 교과서 흉내내서 이야기하자면 ,1단위 처리하는데 요즘 같으면 1시간이면 될 것을 그 때는 무려 4시간쯤 거렸다. 매일 12시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지다보면 '사는게 뭔가? '싶기도 하고, 이거 ' 언제까지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들 처럼 몸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한 번에 100장의 만원권을 짚는 '달인'처럼은 안돼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일과 도구가 손에 붙는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조금 편안해진다. 피아노 배울 때 지겨운 체르니를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도- 그것 때문에 음악의 즐거움이 날아가기도 한다지만- 그런 것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엄살'은 일종의 '자기과장' 이다. 부정적 차원의 과장이다. 자기의 고통을 극화시키는 것이다. 능동적 차원의 과장은 '허풍'이다. 실재로 별거 아니었는데도 한 스푼 운의 도움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최선도 잘 다하고, 목숨도 잘 걸고, 하늘을 두 쪽 내기도 잘 한다.

물론 세상에는 이 악물고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분명히 있다. 또한 자기의 고통이 최고의 고통이라는 통속적인 말도 있는 것을 안다. 그런 것들을 말하는 바는 아니다. 결국 엄살은 내 마음 속의 어린 소년이 징징거리면서 달래달라고 울먹이는 거다. 허풍은 그런 소년에게 아부하는 것이다. 나이 40이 다 되어서도 가끔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평생 도전 과제'로 썩이나 괜찮은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어른' 만 된다면 짧은 인생이 안타깝지만 나이 들어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다.

나는 가끔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그런데 바깥에는 일을 못찾아 새벽 시장을 떠도는 사람들이 연일 늘어나고 있다.....

나는 가끔 풍족하지 못하다고 징징거린다. 그런데 오늘도 자기 몸의 두 배가 넘는 리어커를 끌고 여름 한 낮을 개미처럼 기어가는 노인들을 본다. 더운 여름에 3평 짜리 방에서 서로 등에 짜증을 부려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끔 세상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징징거린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사형대의 외로운 길을 홀로 걸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알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한 옳바른 일을 과장해서 쟁쟁거린다. 그러나 철저히 고립된 도청, 한 낮의 정적은 상상하기 조차 끔직해 한다.....그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나는 가끔 내 분노를 과장해서 쟁쟁거린다. 그러나 한 겨울에 혼자 도는 꽹과리 소리처럼 허공을 맴도는 소리일 뿐이다.....

어쨋거나 나는 '자기 과장'의 달인이다.

내 경험, 내 행동, 내 앎,그리고 내 아픔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사실 거대한 산맥들 아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맹이 하나 만도 못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장'의 벽만 넘는다면 산맥 앞에 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1시가 눈 앞이다. 들어가야지...

아이와 아내가 자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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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8-0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데요. 과장에다 연민도 추가해주세요.^^ <다크 나이트>를 보고 오느라 이 시간 댓글이네요. 명불허전이어서 기분은 좋습니다. '과장'이 아닌 영화를 보는 즐거움...

드팀전 2008-08-07 09:05   좋아요 0 | URL
전 이번주 바빠서 못봤어요. 다음주는 휴가인데 그때 볼 수 있을까나..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믿음직 하군요.
'자기연민'도 자기의 슬픔을 과장하는 것 중 하나겠거니 합니다.^^
제 연극하는 여자 친구가 그걸 '감정의 설사'라고 말하더군요.

Arch 2008-08-0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부린 엄살을 누군가 짚어서 엄살이라고 말해주면 뜨끔하기보다 속상했었는데. 뜨끔을 좀 더 느끼고 감정의 설사(탁월한 비유네요.)를 탈탈 털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전 이 페이퍼에 뜨끔했어요.

드팀전 2008-08-07 17:49   좋아요 0 | URL
^^ 제게 하는 소리니까...뜨끔하실 것 까지는 없지요.
누구나 살면서 여러번 이런 생각들을 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