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칼럼] 철학자 김상봉이 가는 길
홍세화칼럼
 
 
한겨레 홍세화 기자
 











 

» 홍세화 기획위원
 
몰상식이 상식을 억압하는 뒤집힌 세상을 살면서 인생 선배 중에 리영희 선생처럼 뒤따를 스승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허접하다 못해 추악한 세상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기 때문이다. 후배 중에도 그런 분이 있으니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가 그 중 하나다. 귀국하자마자 나를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로 이끈 이가 그였고,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와 같은 저작으로 일천하면서도 편향된 독서에 폭과 깊이를 더해준 이가 그였다.

그가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후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부박한 땅에 진보정치가 작은 뿌리라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절박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지 못한 나에게 그의 ‘몸 던짐’은 ‘서로주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또 하나의 가르침이었다. 그리스 고전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부럽듯이 나는 그가 대학 교수인 게 부럽다. 언론계 종사자는 할 수 없는 정치활동을 대학 교수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언론인도 현실권력의 품에 안기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그 현실권력에 맞서는 견제 정치력이 될 수만 없다. 더 황당한 일은 대학 교수는 정치활동이 가능한데 교사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는 성년인 대학생을 가르치는 데 반해 교사는 미성년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게 이유인데, 그렇다면 ‘도덕교육의 파시즘’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정치적 동물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일방의 억압이라는 문제점을 제기해야 할 진보언론조차 스스로 손발을 묶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권력과 견제 정치력을 등치시킨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시끌벅적한 공천 드라마는 마무리되었고 거리는 선거로 소란하다. 4년 만에 나으리들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민’을 주인대접하기 바쁘다. “영국인들은 투표일에만 자유롭다”던 루소의 말 그대로다. 권력의 향내에 스스로 취하지 않고서야 아쉬울 것 없는 그들이 허리 굽힐 일이 있겠는가 싶지만 그들의 낮은 자세에 짐짓 황송하여 차마 한 손으로 악수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이 땅의 ‘민’이다. 아직 ‘민’이 시민주체로 서지 못한 사회에서 가진 자의 욕심은 대의가 되고 없는 사람의 대의는 욕심이 된다. 진보정당의 빈한한 후보들이 권하는 악수에 황망하게 응하는 시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들, 그들이 내민 가난한 손에 똑같이 가난한 ‘민’은 주인의 자세로 훈계하거나 야멸스럽게 외면한다.

양대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들과 달리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자리, 그것도 후순위 후보는 확률을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선거기간 무관심 앞에서 몸과 마음을 혹사하는 한편 권력에 다리를 놓는다는 비난까지 들어야 한다. ‘친박연대’가 ‘연대’의 뜻을 ‘친박연대’처럼 만들고 ‘보이지 않는 사회연대의 실현’이라는 정치 본연의 뜻이 실종된 땅에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너무 점잖아 구름 위에 올라 앉아 사회를 분석하고 진보를 토론할 뿐이다. 지식인들조차 시민주체 형성에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미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어느 날 현실권력이 불러줄 것을 미리 차단하지 않는 용의주도함일 수도.

불가에서 ‘청산리 벽계수’가 아닌 ‘진흙탕의 연꽃’을 상징으로 삼은 것은 깨달음의 명쾌한 답이다. 썩지도 묻히지도 않고 꽃 피울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대부분 썩거나 묻혀버렸지만 이따금 썩지도 묻히지도 않고 살아남아 빛을 발하는 이들이 있다. 김상봉, 그가 가는 길에 나는 언제나 천진난만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03-3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아...

marr 2008-04-01 19:58   좋아요 0 | URL
아프님 이건 비명인가요? 아님, 감탄사인가요?
전 김상봉 선생께서 비례대표로 나온 걸 보고 내심 좋지 않았어요.
여러가지 의도하신 바가 있겠지만, 그 정당이 진보란 이름을 달고 있건 보수란 이름을 달고 있건, 흑탕물인건 분명하지요.
또 다른 진보신당 비례대표인 김석준 교수도 제가 있는 학교라서가 아니라 잘 아는 분인데, 국회의원 선거 나오실 때마다 전 못마땅해 했어요.
뭐 정몽준이 국회의원 하면서 현대중공업 회장이나 여러 직위 그대로 달고 있는 건 비판하지 않고 교수라서 안된다고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사실, 자본가들은 정치하면서 그대로 자본가인데, 노동자는 정치하겠다고 회사 잠시 휴직하겠다고 그러면 웃기는 일이 되는 것도 웃기는 현실이지요.
그래도 전 김상봉 선생께서 비례대표 나오신 건 기분이 썩 좋지 않군요.

드팀전 2008-04-0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르님 안녕하세요...전 무슨말인지 이해가안가네요..
김상봉교수가 나온 것이 안좋아보인다는 말까지만은 알겠습니다.전 김상봉 교수의 '도덕정치'와 '부채감의 정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차원에서 그의 선택에 비판적 질문을 던집니다.일단 그건 다른 차원의 것이고.. 마르님의 댓글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치판이 흙탕물이기 때문이라면 저로서는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넓게 이해해서 다른 종류의 '정치'에서 계속 계시는게 낫다는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게 마르님의 생각이라고 짐작해봅니다..

대신 '정치=흙탕물이다'라는 논법은 좀 유의하고 사용했으면 하는게 제 바람입니다.그건 사람들의 '정치무관심'을 불러오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외의 어떤 사람들에겐 제도정치 영역을 괄호치면서 '정치'를 논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주로 똑똑한 사람들이지요.아마 홍세화선생이 그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marr 2008-04-02 23:53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입니다.
제가 써 놓고도 읽어보니 모순적이군요.
뭐 저의 편견이기도 합니다만, 김상봉 교수나 김석준 교수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하면 더 이상할 수도 있는데...
정치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좌파건 우파건 말입니다. 정치도 일종의 기술 아니겠습니까?
전 김상봉 선생께서 비례대표 나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루카치가 떠올랐어요. 뭐 어떤 논리적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겟습니다. 그저, 안타까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