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파 “정치적 결단 필요하다” 자주파 “양심의 자유 포기못해” 반론


한겨레|기사입력 2008-02-04 00:39 |최종수정2008-02-04 02:39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3일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의 분위기는 시종 침울했다.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혁신안은 당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혁신안의 핵심인 ‘일심회 관련 당원 제명’ 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이 밤 11시를 넘어서면서 결국 통과됐다. 이 조항 표결 직후,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비대위원들, 그리고 평등파 대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대회장을 떠났다. 잠시 정회 뒤 다음 안건 심의가 시작됐지만, 의결 정족수 미달로 당대회는 밤 11시50분께 산회했다. 제2 창당 추진 방안,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방안 등은 심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일심회 사건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비대위와 당내 ‘평등파’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양심의 자유’와 ‘진보적 가치’를 내세운 ‘자주파’의 반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일심회 관련 당원 제명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민주노동당이 쓰레기 같은 국가보안법에 굴복하겠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비대위의 탈당 협박 때문에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비대위 안에 찬성하는 박용진 대의원은 눈물을 흘리며 “민중과 노동자와 함께 가야 한다. 두 동지를 제명한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날 두 정파는 오후 2시 행사 시작 전부터 날카롭게 부딪쳤다. 강경 자주파는 ‘비대위는 최기영·이정훈 당원 제명안을 철회하고, 당을 파괴하는 신당 추진세력을 징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유인물을 뿌렸다. 신당파는 ‘종북주의와의 동거는 진보정당의 사망 선고’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일부 신당파는 현장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대회가 시작되자, 안건 처리 방식을 놓고 다시 충돌했다. 비대위와 평등파는 ‘일괄 처리’를, 자주파는 ‘조항별 축조 심의’를 요구했다. 859명 중 560명의 찬성으로 축조 심의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분위기는 이때부터 ‘혁신안 부결’ 쪽으로 급격히 흘러갔다.

일심회 조항 심의에 앞서, ‘편향적 친북행위’를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이 찬성 461명으로 가결됐다. 이 부분이 삭제되면서,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에 과도하게 의존’, ‘정규직을 대변하는 정당’, ‘친북정당’ 등 예민한 표현이 모두 사라졌다.

그 뒤 당대회의 최대 관심사였던 일심회 조항 심의가 시작됐다. 수정안이 다섯 가지나 쏟아졌다. 수정안 찬반 토론과 표결이 차례차례 진행됐다. 대회는 예정된 절차처럼 흘러갔다. 시간이 갈수록 대의원들의 얼굴엔 피로와 낭패감, 착잡함이 엇갈렸다. 긴 하루였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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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 2008-02-0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 문제는 뭐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임시 당대회 관련 소식들이 모두 "일심회" 사건과 관련자 제명 문제로 호도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악법중의 악법이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웃기는 코메디도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이 김일성주의자가 되든 맑스주의자가 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양심의 자유이지 누가 가타부타할 게 못 됩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진보 운동의 방향을 다수라는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원리를 다수결이라는 아주 무식하고 몰상식한 측면만을 절대적이라고 믿고 이를 신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애초에 민주주의를 할 생각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민주노동당 사태를 접하면 참 서글퍼집니다.

드팀전 2008-02-05 11:24   좋아요 0 | URL
저도 관심이 갑니다.저도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해요...
민노당 분당 문제는 참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민노당 홈페이지를 가봤는데 완전히 난리가 났더군요.탈당 선언이 줄을 잇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배반자들을 척결하라라고 난리고...또 거기에 온갖 종류의 쓰레기 댓글까지...

바람돌이 2008-02-0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서두에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 맘에 안드는군요. 과연 자주파들을 진보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 말입니다. 북한이 끼면 어떤 진보적 의견도 무시되어버리는 이들을 과연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핵은 안되지만 북핵은 방어용이니 허용된다? 통일 좋죠? 하지만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통일이라면 그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제 오늘 민노당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착잡합니다. 둘이 깨어져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이 우리 정치현장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가 떠올라서입니다.진보 정당이 최소한 그 희생에 준하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문닫는게 또는 갈라서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민주노동당이라는 문패를 그대로 넘겨주고 나오는게 안타까울뿐.... 전 지금의 분열을 질타하고 싶은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쪽박이라도 깨야할때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새로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일수도 있을테고.... 미래는 알 수 없는거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양쪽의 동거보다는 차라리 낫겠다 싶습니다. 새 정당이 생긴다면 제 후원비는 거기로 보내렵니다.

드팀전 2008-02-05 15:08   좋아요 0 | URL
지젝을 조금 비틀어서 그말은...진리는 실패와 반복을 통해 이해된다로 받아들이렵니다.자주파가 진보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저의 인식론적입장에서 정치적 정초는 NL/PD론과는 또 다른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한국정치의 진보가- 물론 한국사회의 모순이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변명도 가능하지만-여전히 80년부터 시작된 NL/PD론으로 수렴된다는 것이 아쉽긴 합니다.물론 그 안에서도 다양한 그룹과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나누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모든 이론적 지평이 모두 현실정당으로 구체화될 수는 없을테니까요...어쨋거나 마치 민노당이 NL/PD의 틀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으로 보도되는 상황에는 불만이 있습니다.궁극적 갈등은 저들 사이의 갈등이었겠으나.

전 한국 정치 구조 하에서 진보정당으로 민노당에 대해 기대를 갖고있었고 지속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은 사실입니다.이번 대선에서 '비판적 무지지'까지도 포함해서.그 결과가 이런 '분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민노당이 대중으로 부터 유리된 것이 과연 '종북'문제만 있었던가도 질문해볼 수 있겠구요.물론 당내 쇄신책으로 종북주의 척결을 내새운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만 그것이 결국 대중들에게 '파벌간의 당내 헤게모니 갈등' 정도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그렇게 비춰질 것입니다.)이번주 한겨레 21의 주제는 공룡여당입니다.거의 압도적 공룡여당.이제 7%의 지지가 어떻게 나뉘어질지 또는 새로운 층을 흡수 할 수 있을지 어려운 문제가 남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민노당에 바랬던 것은 '내거티브형식'의 대안이라기 보다는'포지티브형식'의 대안이었습니다.분당파는 그것을 위해서 단계론적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고 봅니다만...이미 물은 엎질러진 듯 합니다.진보는 어떤'긍정적대안'을 만들어낼까요?

조선일보의 류근일 같은 이들이 '종북주의'를 씹으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긴 합니다.마치 새로운 정당은 합리적으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 마냥...민주당에서 열우당으로 창조한국당으로 옮겨다니던 -제가 언젠가 말했던 그분도-최근에 창조한국당도 탈당하셨다니 이제 탈당파들이 만든 당을 기웃거리지나 않을지...아마 그럴겁니다.

민노당 잔류파의 주장처럼 남은 평당원들을 '종북추종세력'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될-심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민노당 내에 이런 사태가 오지 않길 바랬다는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