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부산 문화회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출발 시간이 가까와지자 셀프-네비게이션이 바쁘게 움직였다.가는 길은 몇 가지가 있었다. 예전 경험에 비추어봤을때 산복도로(산이 많은 부산에서 이 말을 처음 들었다)로 가는 쪽으로 핸들이 움직였다.그러나...퇴근 시간의 통행량은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이면도로의 단점은 한번 막히면 와인병에 걸려버린 코르크마개처럼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것이다.결국 앞차의 후미등에 화풀이를 해가면 따라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이제 미동도 하지 않는 정체가 시작되었다.이때는 결국 빠른 판단밖에 길이 없다.모르는 길이었지만 주택가로 들어갔다.시장통을 따라서 큰 길로 나왔다.으..도대체 여기가 어디지...이정표를 보니 반대방향으로 주행하고 있었다.안그래도 바쁜 와중에 내 이럴 줄 알았다.그 길은 유턴도 없다.이쯤 되면 마지막 방법이 나올 수 밖에 없다.그래...불법유턴이다.보행자 신호가 걸린 틈에 단 한숨의 주저함도 없이 핸들을 왼쪽으로 ....

조바심내며 찾아간 공연장.

시작시간이 되었는데도 썰렁했다.중강당이었는데도 1층 좌석에 빈자리가 많았다.객석 중간 중간에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만 대략 눈인사정도만 나누었다.또 오래전에 봐서 '저 이가 나를 기억할까?' 를 서로 재어야하는 경우는 과감하게 쌩깠다.공연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공연기획자가 공연소개를 했다.특별공연을 먼저 한다는 것.모음곡이기 때문에 짧은 소품마다 박수치지 말아달라는 것.기획자는 이런 말도 했다.

"며칠전 서울 공연에서는 대공연장 전체가 매진되었는데 아무래도 부산의 문화라는게.."

알렉산드로 타로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유럽에서 '타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피아노계의 기대주이다.낙소스레이블을 거쳐 하모니아 문디의 대표연주자로 자리잡고 있다.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아니 이미 세계적일지도 모르는-젊은 연주자다.어제 공연은 1층 자유석 3만원 짜리 공연이었다.프랑스 문화원 주최였기에 문화원을 통해서 사면 50% 할인받을 수 있었다.1만 5천원에 요즘 한참 잘나가는 알렉산드르 타로의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조건이었다.그런데 공연장은 약간 썰렁했다.

원론적으로 지역의 문화수준과 문화소비층의 열악함을 보여준다.자본(경제자본을 포함하여..)의 축적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최소한 문화소비라는 구별짓기 행위를 통해서 차이 기호를 전유할 필요가 있을 만큼도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가시적이고 즉각적 반응을 불러오는 상품의 기호적 소비만으로도 지역에서는 충분히 '과시'와 '차이'를 표현할 수 있다.

또 한가지 기획사의 무성의함도 한 몪을 했다.프랑스 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초대받아 거저 먹는 행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사실 나도 우연히 신문쪼가리에서 기사를 봐서갔지 그게 아니었으면 왔다갔는지도 모를 뻔 했다.공연 포스터는 물론이고 공연에 대한 아무런 홍보도 없었다.조악한 포스터만 공연장 밖에 수십장 붙어 있을 뿐이었다.기획사 측에서는 세계적인 연주자를 몰라주는 대중의 수준을 탓하기 전에 제대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는지 부터 되짚어봐야 한다.그가 세계적 연주자라면 그의 부산 공연을 기획한 공연측은 너무나도 -낙후된 의미로-지역적이었다.

공연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누어졌다.1부는 쿠프랭,2부는 라벨이었다.앙코르는 쇼팽의 곡이었다.타로는 검은색 옷을 입고 나왔다.가벼운 실크남방부터 양말까지 모두 검은색이었다.팔다리가 아주 길었고 얼굴은 작았다.누가 보더라도 미국인이라고 하지는 않을 외모와 분위기였다.약간 붉은 빛 머리와 하얀 얼굴이 모대 조명에 의해 더 선명했다.앨범 자켓등에서 본 사진 보다 훨씬 좋은 인상이었으며 다치기 쉬운 감성과 신경질적 발적이 공존하는 얼굴이었다.그러나 생각보다는 훨씬 겸손하고 젊어보였다.

쿠프랭의 연주는 그가 최근에 하모니아 문디에서 발매했던 '틱 톡 촉'음반에서 십여곡을 다시 발췌해서 들려주었다.공연장 가면서 그 음반을 듣다가 가서 그랬는지 음반과의 자꾸 비교하게 된다.라이브의 특성 상 조금더 다이나믹하고 조금더 서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지사다.개인적으로 하모니아 문디의 녹음에 대해서는 평가가 오락가락한다.처음에 하모니아 문디의 녹음을 들었을때 악기 소리의 정확한 캐치와 악기간 밸런스,소리결의 선명함에 귀가 번쩍했다.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하모니아문디 녹음을 듣다보면 좀 거북스럽다.여전히 선명함과 깨끗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그런데 왠지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난다.마치 진공상태의 실험실에서 소리를 빼낸 것 같다.그래서 이게 과연 좋은 소리인가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그러다보니 오히려 조금 투박하더라도 '내츄럴'에 비중을 두는 도이치그라모폰이나 과거 RCA리빙스테레오,데카 녹음들이 편안하다.  타로의 녹음 역시 그런 선상에 있었다.분명 맑고 깨끗한 녹음이었다.그런데 거기에는 '공기'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음반'과 '공연'은 완전히 다른 음악이다.그런면에서 '음반'을 통조림에 비유한 첼리비다케같은 지휘자의 말도 공감이 간다.어제 타로 공연은 하모니아 문디의 진공녹음 대신 연극으로 치면 제4의 벽을 뚫고 나와 공기라는 노이즈를 거쳐 전달된 내츄럴한 소리여서 좋았다.쿠프랭의 곡들은 아직 좀 생경한 감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절대음악의 형식미가 여전히 어려워서인지 반응이 뜨뜨미지근 했다.오히려 2부의 라벨에서 공연장의 분위기가 더 흥미진진해졌다.타로는 희고 얇은 손가락으로 프랑스적인 에스프리를 부산 무대에서 뿜어내었다.내 뒤쪽에 앉아 있던 예전에 알던 한 피아니스트는-그는 프랑스에서 공부한 연주자며 어제보니 학교에 출강하는 듯 했다- 유난히 큰 박수를 보냈다.프랑스 적자의 해석에 대한 긍적적 평가에 대한 박수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봤다.개인적으로도 타로가 라벨에서 보여준 절제되어 있는 품위와 모던한 감성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프랑스식 정서에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적절한 균형감이라고 해야할까...

공연 끝나고 글샘님과 사모님을 뵈었다. 무대 앞 쪽에 계셨던 듯 하다.나는 어제 무대 중앙의 좌측 상단부에 있었다.공식은 없지만 대개 피아노 공연의 경우 무대 중앙에서 좌측 상단이 명당자리로 알려져있다.무대 전체를 볼 수도 있고 또 소리를 위해서도 적당한 거리이다.그리고 무대 좌측이어야 피아니스트의 손을 볼 수 있다.너무 좌측이면 등만 보이기도 한다.어제 나는 혼자여서 무난히 입구쪽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즐겼다.

글샘님은 문화회관의 멋진 야경속으로 사모님과 데이트를 하러 가시고 나는 부랴부랴 운전석에 앉았다.9시 45분...예찬이가 잘 시간이었다.돌아가는 길은 광안대로의 야경 속에서 조금전에 연주했던 타로의 쿠프랭음반을 들으며 갔다.바닷가 야경을 즐기면 좀 천천히 운전했으면 더 좋았을텐데..미안한 마음에 악세레이터를 세게 밟았다.좀 돌아가긴해도 우리집 앞을 경유하여 광안대로를 통해 문화회관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막히는 시간에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다음번에는 그렇게 한번.....

그런데  언제 또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지....공연은 오케스트라를 봐야 진짜 좋은데 ㅠㅠ

타로가 연주하는 쇼팽 왈츠

타로가 연주하는 쿠프랭의 뮤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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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0-1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님의 페이퍼 제목을 보자마자 글샘님도 어제 그 공연 가셨는데, 라고 생각했더랬어요. 만나시는 사이군요. 하긴 부산 오프가 있었으니까. 부럽부럽.

글샘 2007-10-1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로가 30대 초반 정도인 줄 알았는데...
68년 생이라네요. 흐미~~~
전포동 산복도로는 저도 한밤중에나 한번씩 가는 길입니다. 출퇴근시간엔 가시면 안 되는 길이죠. ^^ 강변로와 광안대로가 시간상 가장 빠른 접속로일겁니다.
그나저나 예찬이가 빨리 자라야 할텐데...
저도 애 잘 보는데, 언제 한번 봐 줄까요??? ㅋㅋ

몽당연필 2007-10-1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애기 잘 보신다구요? 그 말이 왜일케 반가울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