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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ㅣ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는 폭스트롯이다.(왜 있지 않은가 '사교댄스'의 대명사.)폭스트롯은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춤이다.주로 래그타임이나 스윙재즈의 발랄한 리듬에 맞추어 춘다.어원을 살펴보면 재미있다.폭스 트롯(fox trot)을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여우의 빠른 걸음'정도가 되겠다.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어려운 문제에 골머리를 싸고 계신 예비 학자분들께서는 자신들을 심각하게 만드는 텍스트를 그딴 가당치도 않은 춤에 비유한다고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하지만 가라타니 선생은 이 비유를 좋아할 듯 하다. 고진은 분명히 이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폭스트롯의 경쾌한 스텝을 음미하는 마음으로 읽혀지길 바랬을 것이기때문이다.
고진은-그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이 책을 '수능 앞둔 학생들이 보는 100일 마무리 총정리 하이라이트 버전으로 썻다'고 밝힐 법 하다.(물론 고진이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고진은 이 책이 고딩이나 직딩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이건 고진이 직접한 말이다.) 정리하자. 이 책<세계공화국으로>는 고진이 <트랜스크리틱>이후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가라타니 고진'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저자 스스로 요약 정리해주기 위해 만든 책이다.영화로 비유하자면 '반지의 제왕 따라잡기 디렉터스 버전'이다.
이 책이 대중을 염두에 둔 감독의 배려 섞인 책이라고 할 지라도 굳이 사교댄스가 될 필요는 없다.하지만 가라타니 선생은 한번 더 친절을 배푼다.책의 한 장 한 장이 폭스트롯의 스텝처럼 경쾌하다.강의투의 편안한 어법에 애써 애둘러 말하지 않고 요점과 핵심만을 탁탁탁 소리를 내며 찍어내는 문체다.그러니 독자의 손이 래그타임을 따라하듯 책장과 만날 수 밖에 없다.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현재의 체제를 '자본=네이션=국가'가 '세가지 교환양식의 접합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 삼자 연합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서로 맞물려 있어서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국가 해체로 가는 라인과는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먼저 사적 유물론의 '생산양식'을 '교환양식'으로 파악하여 역사를 재구성한다.교환 양식은 크게 호수(증여와 답례) 재분배(탈취와 재분배) 상품교환(화폐와 상품)으로 나뉜다.그리고 마지막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념으로 존재하는 네번째 교환양식(교환양식D)을 설정한다. 그리고 이 양식에 대응하는 사회구성체를 갖는다.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에서는 지배적 교환양식이 상품의 교환(교환양식C) 이다.(물론 각 양식은 단계적이지 않으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비중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기서 벗어나려는 내적 움직임을 갖는다. 가라타니는 이것을 '어소시에이션'이라고 하고 이것이 칸트의 '규제적 이념'으로서만 역사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주장한다.(실제로 없으면서도 있는 '초월적 가상'이다)
정리하면 가라타니의 작업은 사회구성체를 '교환양식'으로 파악하여 구분하고 이후 자본,네이션,국가가 역사적으로 어떠한 맥락에서 각자 자리매김하는지 그리고 이 셋이 어떻게 견고하에 손발을 맞잡고 실체성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가라타니는 마르크스가 괄호쳤던(등한시했던) '국가와 네이션'의 성립과정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한다.그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공동체 사이에서 약탈-재분배(교환양식B) 사이에 기초한다고 본다.또한 루소의 사회계약론처럼 국가를 타자를 배제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에 반대한다.쉽게 말하자면 국가는 다른 국가의 존재를 실존의 토대로 갖는다는 것이다. 일부 맑시스트들이 주장하듯 단순히 국가가 지배계급을 위한 봉사 기관이라는 주장에도 선을 긋는다. 통속적인 마르크스의 혁명론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후 국가는 소멸해야한다는 당위론은 부정된다.
가라타니는 국가의 기원을 동양적인 전제국가,즉 동양적인 세계제국에서 부터 찾는다.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과 같은 고대제국들이다.이 제국들은 전제적인 권력과 관료지배를 형성하지만 공동체의 호수원리를 훼손시키지 않고 유지되었다.반면 이후 주변에서 분화하게 되는 국가들(그리스나 로마같은)은 제국 문명의 여러가지 것들을 받아들이지만 집권적 국가체제는 수용하지 않는다.이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정점에 이른 것이 서유럽의 봉건제 시기이다.이 시기는 쌍무적 계약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집권적인 중앙화 대신 분산과 다중심화가 목표인 시점이었다.이 시기는 호수관계(교환양식A) 에 바탕을 둔 교환관계가 지배적인 양식을 갖는다.
유럽에서는 절대왕권기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앙집중화가 이루어진다.이것은 도시 발달과 밀접하다.절대 왕권은 도시와 부르주아의 결탁의 결과이다.이러한 정치적 변화과정은 결국 상품교환과 화폐경제 원리의 승리라는 형태로 결론지어진다.자본과 국가의 결합은 결국은 절대왕정기를 기점으로 해서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시점에 이루어진것 이다.
네이션에 대해서서 가라타니는 이것이 세계제국의 분절화나 근대 제국주의의 분절화과정에서 생긴것으로 본다.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처럼 그저 네이션을 환상으로 보고 깨어나야만 할 대상으로 파악하는 계몽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가라타니는 네이션의 실체에 대해 존중한다.그리고 네이션이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이라는 형이상학적 기반 위에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가라타니에게는 어떤 해방의 가능성,또는 상상력이 있는가? 가라타니가 생각하는 해방의 힘이 벌어질 수 있는 장은 '생산' 영역이 아니라 '소비'영역이다. 가라타니는 기본적으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가 자본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러면서 노동자의 힘을 소비자의 힘에서 찾는다.노동자는 종속적인 반면 소비자는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서 자본과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장을 떠나면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하다.그는 소비사회에서 옛날 방식의 계급투쟁은 무효화되어간다고 말한다. 그는 소비자란 프롤레타리아가 유통의 장에 나타났을때의 모습이라고 말한다.이 논리로 보자면 소비자운동=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된다.그리고 소비자의 비폭력적인 보이콧 운동이 파괴력을 갖출 것이라고 보는 듯 하다.나는 이 지점이 영 석연치 않다. 소비자라는 존재는 파편화 되어 있다.일종의 음모론 처럼 보이지 만 자본은 프롤레타리아를 소비자로 탈취시켜 버린다.최소한 그런 이데올로기적 작업은 자본의 현명함 속에 충분히 내포되어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도 이마트가면 전부 소비자일뿐이다.또한 현대 사회에서 소비를 한다는 행위 자체에는 단지 사용가치의 구입뿐 만이 아니라 차이나 신분상승이나 하는 심리적인 요인들이 많이 내재해 있다. 소비자라는 층을 프롤레타리아라는 애매모호하지만 정치적 개념으로 묶어낼 수 있는 계급으로 치환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그런 질문이 생긴다.자본주의가 이미 소비자를 포섭해낸 단계에서 과연 소비자가 변혁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자본 자체에 흠결을 내는 방식보다는 기업의 도덕성을 독려하는 도덕주의운동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결국 가라타니식으로 말해도 '도덕주의적 소비자운동'으로는 '교환양식의 변화'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것은 아닌가?
가라타니의 사회구성체에서 네번째인 어소시에이션은 자발적인 상호교환 네트워크이다.이는 삼자연합의 교환양식에 대항하는 전선을 갖는다.고진은 어소시에이션이 개개인이 공동체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장적 사회를 닮아 있고 동시에 시장경제의 경쟁이나 계급분석에대해 상호부조적인 교환이라는 점에서 공동체와 닮아있다고 밝힌다.그는 이러한 '어소시에이션'의 가치가 보편종교에 기원한다고 말한다.초기 기독교 사상을 사회주의와 연관짓는 연구들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역사적으로 보편종교가 사회운동을 낳고 자유의 호수성이라는 윤리적 이념을 펼쳤다고 말한다.물론 보편종교가 정치적,사회적 변혁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라타니는 '자본=네이션=국가'가 완결체이며 영속체다.그러므로 국가의 사멸을 꿈꾼다거나 자본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이상주의(?)에 대해 경계한다.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에 대한 비판이 이러한 궤적하에 있다.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어소시이세이션'을 이루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칸트를 인용한 가라타니는 국가의 본성이 '반사회적인 사회성'에 있다고 말한다.이런 속성은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서 입증된다.가라타니는 이러한 자기실현적 본성을 제어할 수 있는 현실주의적 타협안을 세계연합 같은 것에서 찾는다.칸트가 그러했던 것 처럼.그는 각 국의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하는 방안을 제시한다.이것은 일종의 '위로부터'운동의 양상을 띄며 그 결과 새로운 교환양식에 의한 새로운 사회가 구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계공화국으로>는 칸트의 아이디어와 마르크스의 비판적 재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그는 그의 주요 주장들이(어소시에이션 같은)것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규제적 이념'이라는 말로 현실성문제를 피한다.그러므로 주장들이 현실성이 있네 없네 따지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그렇지만 마르크스를 재구성하면서 마르크스 이론의 실천성 문제들까지 재구성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그의 주장과 논증 하나하나를 비판할 능력은 내게 없다.그렇지만 가라타니가 전개하고 있는 자본=네이션=국가의 연결고리와 그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의미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내용 또한 손도 못 댈만큼 어렵지는 않다.춤추듯 읽자.거대한 주제이며 알려고 들면 한 챕터마다 논쟁과 공부거리가 넘쳐나는 것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즐거운 자극 아닌가..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