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라는 작게 만들고 백성의 수는 줄이며 필요한 물건은 십여가지로만 한다......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가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중 80장 <소국과민> 중에서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읽으며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이 책은  <녹색평론>사가 표방하는 '인문학적  생태주의'의 고향과도 같은 책이다.<녹색평론>의 생태주의는 주류 환경운동의 철학과 다르다.거칠게 말하자면 주류 환경운동이 산업사회라는 토대를 인정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녹색평론>의 생태주의는 산업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를 철학의 기반으로 한다.즉 산업주의에 대한 부정적 성찰이 생태주의의 출발점이다.<녹색평론>의 생태주의를 견인하는 철학은 노장사상,간디의 비폭력 자치주의,아나키즘적 공동체주의,북미 인디언들의 자연주의 등이다.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단적으로 현재 <녹색평론>식 생태주의의  성찰의 계보적 근원에 속한다.간디는 단순한 인도 독립의 아버지가 아니다.그의 적은 조국 인도를 강점하고 있는 제국주의였다.그러나 근원적인 적은 더 깊은 곳에 있었다.그의 진정한 적은 제국주의를 움직이는 '산업사회'였다.자본주의적 산업사회는 반자연성과 반생명성을 특징으로 한다.간디의 이상주의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생명을 착취하고 인간을 속박하는 현 시스템의 전복을 목표로 한다.간디는 이러한 정치적 이상주의의 맹아를 '마을'이라는 전통사회의 작은 공동체에서 찾고 있다.인도의 70만 마을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간디의 마을 공동체론은 누가보더라고 이상주의적이다.간디가 살아있던 시점에도 그는 이런 비판에 직면했다.이에 대한 간디의 답변은 소박하지만 인간 간디의 한계를 직시한다면 수긍이 간다.그는 말한다.

"나는 그 일이 인도를 이상적인 나라로 만드는 것 만큼 어렵다는 것을 안다.그러나 만일 누가 하나의 이상적인 마을을 만들 수 있다면,그는 온 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온 세계를 위한 모범을 제공한 것이 될 것이다.구도자는 이 이상의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답변 또한 이상주의의 외피를 벗진 못했다.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간디의 소박한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거시 기획'을 가지고 '미시 기획'을 비판하는 것 역시 '미시 기획'을 가지고 '거시 기획'이 가능하다고 믿는 관념성 만큼이나 폭력적이기 때문이다.<간디의 물레>에서 김종철 교수 역시 자신의 작업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했다.타이타닉형 산업주의 시스템에서 생태주의가 구성원들의 자성과 새로운 대안을 고민할 수 있다는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한다.(생태주의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 도상에 있다.)

간디의 마을 공동체를 움직이는 정신은 '비폭력 자급자족'이다.간디의 물레는 자치와 자립,비폭력 사상의 상징이다.물레에 대한 간디의 강한 믿음은 책 곳곳이 등장한다.

실잣는 물레는 상업적 전쟁의 상징이 아니라 상업적 평화의 상징이다....실잣는 물레를 건전한 마을 생활을 일으켜 세우는 기초로 만들것이다.나는 물레 바퀴를 모든 활동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다...비폭력을 이상으로 추구하려면 물레를 그 진정한 형상이며 상징으로 인정하고 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나는 비폭력을 생각할 때마다 물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잣는 물레는 미국을 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그것이 핵폭탄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이 미국과 전세계를 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나는 인도와 세계를 구하는 길이 물레에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간디는 기본적으로 농촌 공동체의 전통사회를 반산업주의의 한 형태로 염두에 둔다.이 공동체의 경제적 토대는 수공예이다.대표적으로 물레가 그 상징이다.실 잣는 작업을 통해 개인과 마을은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또한 기계가 말살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복원한다.간디가 고립된 자치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그러나 과도한 잉여가치를 생산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에 긍정적이지도 않다.그렇게 된다면 산업사회의 방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간디의 기본철학은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최소한의 의복,최소한의 재산만을 허한다.더 많은 풍요로움과 소비를 위해 인간과 세계를 피폐화 시키는 산업사회 철학에 대척점에 서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인상적인 것은 간디의 철학과 실천이 무척이나 구체적이라는 것이다.간디는 공동체 마을을 구성하는 방식,자연치료에 대한 임상 경험,마을 교육에 대한 방식,마을 일꾼들의 선발에 대한 기준,지주들의 재산에 대한 처분 방식등에 대해 말한다.이상주의적 철학을 현실에서 어떻게 재현해 낼 것인가가 간디의 가장 치열한 고민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간디의 철학은 이상적이나 결코 관념적이지 않다.내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것이다.자신의 물적 토대가 가져다 주는 한가로움을 관념을 통해 풀어내는 현대 도시인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부분이 이 지점이 아닌가 싶다.간디는 '몸'과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 수십번을 강조한다.지적 노동이라는 것 역시 육체 노동의 하위 개념이라고 그는 말한다.지적 노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결국 진정한 노동은 자기의 손과 발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 존엄성에 대해 깨닫는 것이다.

간디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간디가 가진 반자본주의적 정신,반산업적 정신,공동체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다.간디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노동의 신성함' '몸의 생명성' '실천의 진정성''이웃에 대한 희생'을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간디는 말한다.

"당신 자신에서부터 시작하고 당신이 제일 하기 쉬운일을 처음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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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29 19:58   좋아요 0 | URL
노동의 신성함, 몸의 생명성, 실천의 진정성, 희생심... 생각할 수 있는 과제와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물레 앞에 앉아 실을 잣는 간디 사진을 떠올립니다.
실천의 진정성!

달팽이 2007-01-29 21:05   좋아요 0 | URL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하고 내가 제일 하기 쉬운 일을 처음에 하라"라고 들립니다.
책꽃이에 꽃혀 있는데...손짓합니다. 들어달라고..

드팀전 2007-01-30 09:23   좋아요 0 | URL
배혜경님>결국 손발이 중심이다..그런 말이지요.누군가 그랬다더군요.세상에서 가장 먼길이 머리부터 가슴까지의 길이라고...그런데 그건 잘못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먼길은 머리부터 손까지의 길이지요.
달팽이님>간디의 이야기가 그거죠...^^ 재미있군요.저는 애써 '서술어'(동사는 영문법이랍니다.^^생각해보니 그렇네요.^^)에 밑줄을 그었는데 님은 애써 '주어'에 밑줄을 그으시는군요.^^ 간디 역시 개인의 각성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깁니다.간디의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도덕적으로 각성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개인이 무엇보다 핵심이니까요.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사람을 바꾸는게 가장 우선이고 근본이지요.(하지만 이걸 사회적 대안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 근본적이거나 너무 소박하거나 또는 너무 원대하거나 너무 안이한게 아닐까 싶습니다.그 꿈은 그 꿈대로 또 다른 꿈은 또 다른 꿈으로)

글샘 2007-01-30 04:42   좋아요 0 | URL
음, 읽고 싶은 책이 또 한 권, 생겼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이 리뷰의 백미는... 사모님,의 명언이네요. 맨 위의 말. ㅋㅋ
그래서 '백수 - 일하지 않아 하얀 손'가 욕이 되나 봅니다. 실천은 하지 않고 대가리나 키운... 박지원의 허생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지.'... 가분수는 화근일 따름입니다. 손발이 뛰어야죠.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잖아요. ^^
그리고, 드팀전님. 주어-동사는 영문법이고, 우리말에선 주어-서술어가 옳다고 봅니다.^^

드팀전 2007-01-30 09:22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바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