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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자 2학기도 끝내주는 거야!! 아자!!!

아차! 1학기 등록금이 나왔다. 장학금을 받아서 반액 조금 안내게 되었는데

담 학기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봐야징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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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여를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책을 찾는데 허비해야했다.

대충 종류별로 (국내소설, 국외소설, 에세이, 시집, 동화, 인문학 서적, 예술 서적 등등) 책장 정리를

해두었음에도 이넘의 책이 보이질 않는거다..어째서..왜..이다지도....휴....

그런데... 꼽혀져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꼽혀져 있는 것을 두 시간이나 책 제목을 훑고 또 훑어 댄

뒤에야 발견했다..

왜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정말 진짜..등잔밑은 확실히 어두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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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홍미숙 옮김 / 도로시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왜 그렇게 이 책 읽는것에 여러 이유들을 갖다대며 주저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에리히 프롬이라는 인물이 주는 무게감 때문였는지 문장들의 난해함 때문이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인지.. 그러나 이제는 사랑 해야할 때가 된것 같다. 그 때가 되어서 술술 잘 읽히는 것인지 아님 내가 어른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끊임없이 그 분리를 극복하려고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도피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을 하거나, 동물을 숭배하거나, 예술적 창조를 하거나 인간을 사랑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것의 기록을 인간의 역사라고 한다.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본질을 해석하기보다 보이는 현상에 대한 해결에만 치중해왔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되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인간이 추구하는 분리의 극복, 합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숙한 합일의 방법과 미성숙의 합일의 방법에 대해 나오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조히즘과 새디즘은 미성숙한 방법에 해당이 된다. 그렇다면 성숙한 합일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본래의 전체성과 개성을 지닌 채인 상태에서의 합일을 말한다. 그 방법으로 제시 되는 것이 사랑은 주는것 이라는 것이다.  물질을 주는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주는것. 그렇다고 자기 희생을 뜻하는것이 아니라 기쁨, 흥미, 이해, 지식, 유머, 슬픔 등을 줌으로써 자가기 살아있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상대방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이 책을 읽는 과정중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에 대한 두 가지의 피해의식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대답들이 이 책에 나와있었다. 첫째는 사랑을 주었는데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냐는 문제였고 두번째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였다. 첫번째 문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말하길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사랑도 거래라고 생각한다. 주면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그냥 주는것에서 느껴지는 기쁨을 맛보라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았다는 것 그 기쁨을 말이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두번째!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이런말을 한다. 어떤 강아지 주인이 있다고 하자. 이 강아지 주인은 자신의 강아지는 무척 사랑하는데 다른 강아지를 보면 욕하고 때리고 멀리한다. 그렇다면 이 주인은 진정으로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어떤이는 지나가는 강아지들에게 이쁘다고 쓰담고 친절하게 대한다.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는가! 내것에만 쏟는 사랑, 그 대상만을 찾아 하는 사랑. 그것이 과연 옳은 사랑인가? 에리히 프로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사랑이 기술을 길러라! 사랑의 기술이 없으면 진짜 사랑할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갖다준다해도 사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 아닌가. 미리 이러저런 기술들을 숙지해놔야 좋은 카메라가 손안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정해놓지 않는 사랑, 그리고 대상을 사랑하기 전에 익히는 사랑의 기술! 그것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에 내가 원하는 답을 시원하게 주지 않아서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내가 왜 사랑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것, 특히나 이성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부모로써, 형제로서, 또 신에게 향한 사랑에 대해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이제 사랑할 때 인것을 느끼나요? 그럼 기술을 익히십시요!! 이 책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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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다나카 유코 외 목소리 / 대원DVD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95년 처음 토토로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았고 그 후 원령공주, 나우시카 등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 감독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일부러 그점에 중점을 두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뻔히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처음 토토로를 만난것이 스무살이니까 원령공주나 나우시카를 만난건 아마 스물다섯즈음이 아닐까 싶다.어른들은 내가 만화영화를 보고 있으면 네가 어린애니? 라며 꾸짖으셨다.  그럴때마다 부모님을 옆에 앉히고 함께 보고싶었다. 이 만화가 얼마나 진지하며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냥 말로하기보다 함께 보며 함께 느끼게 하고싶었다. 회갑이 훌쩍 지난 우리 부모님, 함께 만화영화를 보시진 않았지만 왔다갔다 하시며 음악은 들었을 것이다. 만화영화 답지않은 진중하고 아름다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으시며 이젠 서른살이 훌쩍 넘은 딸아이의  만화영화 관람에 더이상 뭐라 안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노노케 히메, 산, 그녀는 인간세계를 떠나 들개와 함께 하며 자연을 지키기위해 자신의 목숨따위는 얼마든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소녀이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들개라며 인간의 행동을 혐오한다. 아시타카, 저주 받은 멍을 없애려고 시작한 여행길이였지만 그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인물이다. 에보시. 철이야말로 인간을 더욱 잘살 수 있도록 만들어줄꺼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 마을을 지켜줄것 같은 황제에게 사슴신의 머리를 갖다주기위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인물.

산과 에보시로 대립되는 자연과 인간의 싸움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 같이 사는길을 모색하는 수밖에. 아시타카는 좋지만 인간은 여전히 혐오한다. 용서할수 없다. 그래서 산과 아시타카는 함께 살수 없다.

문화를 넓은 의미에서 자연과 대립되는 관계로 배운적이 있다. 문화를 전공하는 나로써는 이제 더이상 문화와 자연은 대립의 관계가 아닌 상생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에 인공미를 더하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 자연을 자연답게 가꾸어 가는것이 진정한 문화라고... 에보시는 마지막에 "더 좋은 마을을 만들며 살자" 라고 말한다. 지금껏 인공적인 것만이 최고라고 여겼던 그녀에게 더 좋은 것으로 만든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바로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일 것이다. 앞으로 더욱 황폐해져가는 현대 사회에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경종을 울리는 만화들이, 문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에 꽃 한송이씩을 틔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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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읽은 (아니 꽤 됐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도 그렇고 이 책 <적의 화장법>도 그렇고 참 많은 철학적 사유들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철학적 사유앞에서 콧방귀를 뀌게 되고 자꾸 피식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걸까.. 내가 아는 파스칼이라고는 "1Pa은 1㎡에 1N의 힘을 받을 때의 압력 " 이라는 물리량이 전부임에도 파스칼이 누군지 또 그가 쓴 팡세니 뭐니 하는 철학책이 어떤책인지 궁금해지지가 않는다. 그저 웃음의 장치로 넣어둔 그 무엇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나의 책읽기 방법은 참 피곤한 스타일이였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밑줄을 전부 그었고 나중에라도 꼭 알아봤으며,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인물, 용어들이 노트 몇개를 만들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닌것 같다. 웃으라고 얼마나 웃기는 짬뽕같은 인간들의 대화인지 한번 들어보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읽기를 다 하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헉! 하는 신선함과 대화의 스릴, 그리고 어거지 같은 철학적 사유와  깨끗하게 결론내지 않은 결말로 인해 잠시 멍~ 했다. 그리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듯한 알싸한 기분을 맛보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은 처음이다. 재작년인가 동생이 적의 화장법이란 연극을 보았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고, 요즘 뜨고 있는 작가라는 것 이외에는 그녀에 대한 정보는 내게 전혀 없었다. 사실 첫장을 딱! 열었을 때 만일 이 책을 서점에서 열어보았다면 안샀을 책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의 책은 아무래도 종이 낭비가 심한 책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글자와 글자사이의 띄어쓰기가 너무 크고, 줄간격도 너무 크고, 글씨도 너무 크다.  그래서 며칠전 서점에 가서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들의 거짓말>을 사려고 책장을 넘겼다가 내용이고 뭐고 줄간격 너무 크고 글씨 큰거 보고 에잇! 하며 그냥 놓고 나왔다. 그러니 적의 화장법을 서점에서 책장 한장 열어봤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내가 서점에서 열어보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바이다. 2시간인가만에 다 읽어버린 적의 화장법.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면서 또 불안해진다. 너무 비슷한 류의 책이면 어쩌나... 실망을 주면 어쩌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그 두려움을 앞서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의 화장법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일것이다.

정말 재밌다!!!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재미있다. 질척하지 않고 끈적끈적하지 않게 재미있다. 뭔가 두고두고 오래 생각하게 하지도 않고, 시원찮은 결말이(진짜 앙귀스트가 죽인거 맞아요??) 살짝 걸리긴 하지만 그것때문에 누군가와 토론을 하고..뭐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재미있다. 그저 재작년 동생이 보았다던 그 연극..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지..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연극으로 꾸몄을지 고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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