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홍미숙 옮김 / 도로시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왜 그렇게 이 책 읽는것에 여러 이유들을 갖다대며 주저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에리히 프롬이라는 인물이 주는 무게감 때문였는지 문장들의 난해함 때문이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인지.. 그러나 이제는 사랑 해야할 때가 된것 같다. 그 때가 되어서 술술 잘 읽히는 것인지 아님 내가 어른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끊임없이 그 분리를 극복하려고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도피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을 하거나, 동물을 숭배하거나, 예술적 창조를 하거나 인간을 사랑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것의 기록을 인간의 역사라고 한다.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본질을 해석하기보다 보이는 현상에 대한 해결에만 치중해왔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되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인간이 추구하는 분리의 극복, 합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숙한 합일의 방법과 미성숙의 합일의 방법에 대해 나오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조히즘과 새디즘은 미성숙한 방법에 해당이 된다. 그렇다면 성숙한 합일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본래의 전체성과 개성을 지닌 채인 상태에서의 합일을 말한다. 그 방법으로 제시 되는 것이 사랑은 주는것 이라는 것이다.  물질을 주는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주는것. 그렇다고 자기 희생을 뜻하는것이 아니라 기쁨, 흥미, 이해, 지식, 유머, 슬픔 등을 줌으로써 자가기 살아있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상대방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이 책을 읽는 과정중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에 대한 두 가지의 피해의식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대답들이 이 책에 나와있었다. 첫째는 사랑을 주었는데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냐는 문제였고 두번째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였다. 첫번째 문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말하길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사랑도 거래라고 생각한다. 주면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그냥 주는것에서 느껴지는 기쁨을 맛보라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았다는 것 그 기쁨을 말이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두번째!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이런말을 한다. 어떤 강아지 주인이 있다고 하자. 이 강아지 주인은 자신의 강아지는 무척 사랑하는데 다른 강아지를 보면 욕하고 때리고 멀리한다. 그렇다면 이 주인은 진정으로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어떤이는 지나가는 강아지들에게 이쁘다고 쓰담고 친절하게 대한다.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는가! 내것에만 쏟는 사랑, 그 대상만을 찾아 하는 사랑. 그것이 과연 옳은 사랑인가? 에리히 프로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사랑이 기술을 길러라! 사랑의 기술이 없으면 진짜 사랑할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갖다준다해도 사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 아닌가. 미리 이러저런 기술들을 숙지해놔야 좋은 카메라가 손안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정해놓지 않는 사랑, 그리고 대상을 사랑하기 전에 익히는 사랑의 기술! 그것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에 내가 원하는 답을 시원하게 주지 않아서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내가 왜 사랑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것, 특히나 이성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부모로써, 형제로서, 또 신에게 향한 사랑에 대해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이제 사랑할 때 인것을 느끼나요? 그럼 기술을 익히십시요!! 이 책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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