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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마다 책장정리를 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작가가 속한 국가별로 정리를 한다. 그래서 정리된 책들 중 가장 책장이 넘쳐나는 것은 프랑스, 가장 빈약한 쪽은 남아메리카 및 이탈리아권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독일어권 작가들의 책이 내겐 그리 넘쳐나지는 않는다. 한국에는 재미있는 독일 작가의 책이 곧잘 출판되지 않으며 출판된다 하여도 시류가 조금은 늦다.
즉, 독일에서 대성을 한 작가가 아니고는 한국 출판계로 입성을 서두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자유의 감옥, 꿈꾸는 책들의 도시 정도가 쥐스킨트의 다양한 작품들의 시류를 한국에서는 잇고있다고 본다. 그리고, 소품과도 같은 단편모음, 중장편이 번역되어 출간되는데 그 중 몇가지가 도리스 되리의 소설과 퀴르티의 소설 정도이다.
도리스 되리의 소설은 was machen wir jetzt? (우리 이제 어쩌지?)가 독일에서는 거의 대중을 강타하여 삼사년 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지만 한국에는 번역조차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될지가 의문이다. 또한 벤야민 야플렉의 크레이지 같은 경우도 독일에서는 영상집 영화 디브이디 등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한국에서는 시들한 경우. 역시 한국과 독일의 코드가 다른 것인지, 마케팅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독일어과 출신인 나는 내가 고른 대다수의 독일 소설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코라 휩시가 등장하는 `여자, 전화’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에바 헬러 시리즈는 참으로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렇다. 그 책 사서 읽다가 포기하고 지하철 문고에 기증했다.)
사설이 길었다. `여자, 전화’는 연애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다. 시간단위의 기록 형식과 한 남자에 열중하여 시시각각 고민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그런데 세상에 어느 여자가, 그리고 어느 남자가 그렇지 않는단 말인가? 무게의 차이일 뿐이다.
어느 남자나(내가 여자인 관계로) 내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청해오면, 나는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의 꿍꿍이가 무엇인가. 친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러하다. 그런데 그 어느 남자가 내게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라고 한다면, 나는 그럴 경우에는 차후의 일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와 섹스를 하여야할까? 안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거나 하지 않은 후의 나는 그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까?
결국, 사람은 모두가 다 똑같다는 것에서 문제는 출발한다. 상황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있을 뿐, 본질은 똑같다. 그, 혹은 그녀는 내게 호감이 있을까? 있다면 어느정도일까? 이런 문제는 프랑스 소녀들의 꽃잎점과도 같다. 사랑한다, 아니다, 이 두가지를 오가는 꽃잎점과 달리 프랑스 소녀들은 `그는 나를 미친듯이 사랑한다. 사랑한다. 조금 좋아한다. 관심도 없다’ 사이를 오간다 한다. 선택의 폭이 더 넓고 그 사이의 온도가 극단적이다. 즐거이 기뻐할 수 있는 선택과 뼈저리게 좌절할 만한 선택이 공존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라면 황진이의 시조부터 아니 에르노의 중장편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어느 것은 가볍고 어느 것은 무겁다. 굳이 따지자면 에르노는 무겁고 브리짓 존스는 가볍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꼭 심오한 뜻을 담고있어야 책값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 시간동안 내가 온전히 즐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두고두고 읽을 생각도 나는 굳이 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기대하는 종류의 재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때때로 책장을 덮고도 줄기차게 우연찮게 어느 대목이 생각나는 영화나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소중하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에 대한 사색은 더할 나위 없이 발랄하면서도 할 말은 꼭 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사랑한다’라는 그 한가지의 뜻을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공굴리기를 한다 하면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퀴르티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마디 하기 위해 눈물겹게 다이어트하고 피가 마르게 기다린다. 사람이 모두 똑같다는 것은 이런 의미인 것이다. 보통과 퀴르티, 과연 둘 중 어느 하나가 가볍고 무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무거움만큼이나 가벼움도 중요하다. 읽고나서 그저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기분이며 다시 읽지 않아도 좋을 책이기도 하지만, 딱 떨어지는 재미를 맛보기도 힘든 때에 퀴르티 같은 작가의 작품은 그저 참, 귀여운 소품과도 같다.
참고로 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은 다음 이 책을 읽었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현란하게 오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