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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지금까지 읽어온 바나나의 책들이 짧지만 그래도 중, 장편에 속하는 책들이라서 도마뱀또한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접했는데 아니였다. 6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단편은 중편만큼이나 소재도 내용도 풍부한 반면 어떤 단편은 금방 끝나버린것도 있고! 어쨋든!! 이책을 처음 접했을때의 내 반응은 [어! 요시모토 바나나! 지금까지 인기 많았다고 그냥 날로 먹을라고 이런 책을 냈네!] 하는 반응이였다. 당연히 책을 다 읽고 접은 지금은 그런 마음이 아니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을까.. 아무래도 단편이라 함은 시와 마찬가지로 짧은 글 안에 많은 것들은 아니더라도 좀더 집중적인 에피소드를 다루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무언가 깊은 맛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앞의 단편 네개, 신혼부부, 도마뱀, 나선, 김치꿈까지...그다지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신혼부부 같은 경우는 뭐랄까 이제 막 문학에 접어든 학생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바나나 정도면 이정도는 써주어야하는거 아니야! 라는 기대감이 꽉 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날로 먹었어!!] 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킨건 김치꿈이였던거 같다. 유부남과 결혼한 여자가 한번 실수한 남자가 두번은 실수 안하랴! 라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모든 불안은 내 마음에서 옮을 깨닫고 그제서야 평상심을 되찾는다..라는 이야기였는데 여타 사건도 없고 끝맺음도 그다지 시원하지는 않았던거 같다. 어쨋든!! 그런 마음을 가득히~~ 가지고 있던 내게 후반부 두개의 단편이 역시 바나나야! 라는 마음을 갖게 하였고 이 책의 상품 만족도를 별 두개에서 네개로 급상시켰다.
피와물, 종교에 심취하여 어느 공동체 마을로 들어간 부모와 살다가 그곳을 도망쳐 나와 도쿄에 살면서 아키라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나중에는 그런 상황을 모두 이해하는 부모님과 화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야기 구조를 보면 단순하게 여겨질지 모르나 아키라가 만드는 행운의 마스코트, 또 아버지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지카코의 긴장하는 모습, 딸을 기다리며 비맞는 아버지, 이 모든것을 다 지켜봐주는 아키라...이것들이 마음 한 구석을 싸하게 만들었고 비맞고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야했다. 아무래도 가족간의 화해는 내게 있어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인가보다. 그래서 조용히 화해하며 조용히 서로를 이해하며 끝맺는 이 단편이 내게는 최고로 다가온듯하다. 요란 뻑쩍지근한 화해는 내게 일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나도 내 가족과 이렇게 화해하고 싶다...
오카와바타 기담, 성적으로 변태적이다 할 지경까지 모든걸 다 해본 여자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그곳에서 손을 씻고 나와 그냥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려고 하고 그 결혼을 방해하려는듯한 요소들이 곳곳에서 돌출되지만 그것들을 용서하고 보듬어가며 희망을 느끼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이 단편의 가장 압권은 지금까지 이 여자가 가졌던 불안감의 요소의 표현이다. 책 어디에도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봐 걱정하는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람들을 출연시킴으로써 그녀가 지금 불안해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낄수 있게 해준다. 여튼 그요소가 해결될때의 순간이 용서될때의 순간이다. 이 단편의 4/5 정도를 그 불안으로 채워놓고는 그 용서받는 순간은 단 한줄로 끝나버린다. [그렇지 나도 그랬어. 그런건 이치로 따질 수 없는거야] 바로 이 한마디다. 드라마를 보면 흔히 이런순간 여자가 늘어지는 변명을 하곤 한다. 여자의 과거가 화려하고 또 아무것도 모르던 남편될 사람이 그여자의 과거가 담긴 몇장의 사진을 받아보는 순간!! 또 그여자가 그걸 알게되고 나랑 이래도 결혼할수있겠느냐고 묻는 순간.... 여자는 많이 당황하고 남자는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머리를 쥐어뜯고 여자는 용서해달라고 울고 불고...그건 옛날 이야기다..라면 용서를 빌어야 상식인데..(내가 드라마를 너무 봤나..^^;;;)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가 늘어지는 변명을 한다. 남자가 그여자를 대변해준다 그리고 나또한 무기력한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런 나에게 삶의 희망을 준것이 너다! 그러므로 너를 용서한다고 한다. 사실..용서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걸 느끼게 할 뿐이다. 여자는 이 글의 끝을 [어쩌면 옛날 사람은 이걸 희망이라고 불렀는지도 몰라,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라면 끝맺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웬지 모를 우울함이 싫고 죽음을 너무 간단히 여기는것이 싫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적이 있다.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쓰는 그럴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날수 없는일이기에 싫었다. 그러나 이번 단편들을 통해서 바나나의 글이 꼭! 죽음을 통해서만 화해하고 용서하는건 아니라는것을 알았고 죽음을 소재로 하더라도 매우 희망적임을 알게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상처들이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날로 먹는 책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행복한 선물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