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행복나침반 > 구라로 풀어낸 여인 삼대의 운명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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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천명관, 난 그를 먼저 시나리오 작가로 알았고, 그 후 문학동네 신인상의 '프랭크와 나'를 통해 알게 됐으며, 그 다음해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문학동네 홈페이지를 시끌시끌(좋지 않은 내용이었지만)하게 만든 장본인이란 걸 알게 됐다. 그가 소위 '63세대'(그는 64년생이다)라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이미 터를 다진지 오래 된 그와 비슷한 또래의 소설가들을 얼핏 꼽아보며 소설이라곤 단편소설 하나와 장편소설 하나가 전부인데 그 모든 소설이 당선되었고나, 라고 의미심장하게 '고래'의 첫 장을 넘겼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일지 모른다는 넉살좋은 말로 시작하여, 또한 곱씹어보면 박색의 노파가 주인공들을 파국으로 이끄는 복수극 아닌 복수극이로구나,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 이야기(글이라기보다 이야기)는 마치 변사가 있는 냥, 슬렁슬렁 넘어간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설마 내가 하는 말이 진짜라고 믿진 않겠지만'으로 시작하여 그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배꼽이 빠지게 만들고 이야기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박색의 늙은 노파에서, 냄새 아닌 냄새로 남자들의 아랫도리를 불끈하게 만들다 결국은 남자가 된 배포 큰 여자 금복을 거쳐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고, 열네살이 되기 전에 백킬로그램이 넘어선 벙어리인 금복의 딸 춘희로 이어지는 여인 삼대의 믿기지 않는 격정의 인생사다. 출연하는 인물들 또한 현실 인물이라 볼 수 없는 것이, 천하의 박색 노파가 세상에 품게 되는 한의 근원인 거대한 양물을 가진 반편이와, 박색 노파가 낳은 주름살이라곤 하나 없으나 백발이 성성한 애꾸 여인, 금복을 자신이 사랑했던 게이샤로 추억하는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 등 과연 금복이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앞으로 읽으실 분들은 이 부분은 읽지 않는 게...;) 박색의 노파는 너무도 박색이어서 결혼 첫날밤도 지내지 못하고 버려져 제 몸 하나 건사하며 전전했는데, 그 때에 양반집의 자재로 태어난 반편이를 돌보다 그만 겨울동안 엄청난 속도로 성숙한 반편이의 거대한 양물을 보고 남녀간의 정을 통했으되, 그것이 발각되어 결국은 흠씬 두들겨 맞고 버려진다. 그 후 숨어들어 계곡으로 목욕하러 가자며 꼬여내 하룻밤을 보내고 그 후 반편이를 계곡에 빠뜨려 죽여버린다.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악착같이 돈만 모아온 노파는 반편과 자신 사이에 태어난 딸조차 윽박질렀고, 결국 딸의 눈까지 애꾸로 만든다. 산 속에 묻혀 살던 금복은 삼륜차를 끌고 들어온 생선장수를 따라 좁은 곳을 떠나 바닷가 마을로 오게 되고, 거기서 파랗게 빛나는 대왕고래를 본 후 영원한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수완이 좋았던 금복은 돈을 버는 데 재주가 있었고, 점점 무르익어가는 금복에게 생선장수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다. 거기서 금복은 장정인 (나중엔 1톤이 되는) 걱정을 만나 사랑했고,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나오꼬'의 대체물로 여기는 칼자국의 집으로 걱정을 데리고 들어갔으며, 결국 걱정의 자살과 함께 오해를 한 나머지 칼자국의 배에 작살을 꽂아 죽인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랑하며 살았으나, 죽은지 이미 4년이 넘은 걱정의 씨가 몸 속에 자라나고 있었으며 그녀, 춘희를 낳기 위해 들어간 곳에서 코끼리 점보와 쌍둥이 자매를 알게 된다. 여하튼 바람의 기운을 따라 떠난 금복은 평대로 들어서 거기서 머리를 굴려 다방을 열어 돈을 많이 벌었으나 '건달의 자식들'인 건달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긴다. 그녀의 비명도 뚫지 못한 비바람과 천둥은 겨우 너댓살 된 춘희가 모루로 자신의 어미 위에서 겁탈을 하고 있는 사내를 때려죽임도 묻었으며, 그 바람에 모두 젖어버린 천장이 무너지며 '박색의 노파'가 죽어가면서도 발설치 않은 돈들이 쏟아져 내려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건실한 文을 만난 금복은 그의 말에 힌트를 얻어 벽돌공장을 시작했으며, 본디 늪이었던 곳에 흙과 자갈을 쏟아부어 메우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도 불사한다. 文이 만들어 낸 벽돌은 어떤 벽돌과도 비교가 불가했고, 나날이 재력은 불려갔으며, 금복은 고래의 형상을 닮은 영화관을 짓는다. 씩씩하고 당찬 여장부 금복이, 유곽에서 매를 맞고 달아난 수련을 거둬 둘의 사랑이 깊어지며 알고 보니 거대한 음핵을 가진 금복은 기실 남자인지도 모르고, 또 그 때부터 남자 행색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조차 별로 놀랄 일이 없는 일이다. 이 소설은. 춘희는 항상 버려져 있었고, 혼자서 흙을 가지고 장난쳤으며, 벙어리였지만 점보와 의붓아버지 文과는 독특한 방식으로 대화가 가능했기에 그에게서 벽돌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허나 수련은 약장수와 함께 달아나고 결국에 버려진 금복은 술과 영화만으로 살아갔으며, 술에 취한채 영화를 보던 금복의 곁엔 죽은 자들이 떠돌았으며, 그녀는 그만 자신의 라이터를 놓쳐 영화관은 불길에 휩싸인다. 이 때 춘희는 영화관에 들었다가 박색의 노파가 모든 출입구를 잠그는 것을 보았으며, 후에 800명이 죽어나간 곳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범인으로 몰려 미결수로 십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 그 고된 세월을 견뎌낸 춘희는 걸어걸어 평대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고, 사냥을 하며 혼자 살았다. 그런 춘희에게 어렸을 적 그 옛날의 팔씨름 친구였던 그가 찾아와 그녀의 벽돌을 가져갔고, 대신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그 들간의 정이 싹트고 결국은 춘희도 임신을 하게 된다. 허나 자식이 자신의 발을 묶는 것 같아 뛰쳐나왔던 그 역시 춘희를 버렸고, 춘희는 병이 난 아이를 결국 잃고 만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사랑을 잃은 슬픔으로 끊임없이 벽돌을 만들어낸 춘희는, 결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찾아오던 그가 트럭이 전복되며 죽어버린 것도 모른 채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벽돌을 만들면서. 그렇게 그녀는 '붉은 벽돌의 여왕'이 된 셈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여인 삼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모든 여인들은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거나 예뻐하지 않는다. 박색 노파도 그러했고, 금복도 그러했고, 자신의 자식을 사랑한 춘희는 결국 자식을 잃는다. 그 들 모두 딸을 낳는 것 또한 여성의 자궁이 가진 비극성을 나타낸다. 거대한 대왕고래와 죽을 땐 1톤이 된 걱정을 사랑했던, 모든 것을 걸었던 금복은 왜 거대한 자신의 딸인 춘희만은 보듬지 않았을까.
은희경은 이 소설을 말하며 전대와 현대 모든 작가와 작품에 빚을 지지 않은 작품이라 하였지만, 기실 그는 수많은 신화와 민담, 떠도는 이야기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의 역사인 것마냥, 어디서나 유린당하는 여자들이 있고, 그 여자들에게 놀아나고 당하는 사내들이 있고, 여기나 저기나 자본과 힘을 둘러싼 권력이 있다. 그는 수많은 법칙들을 정립하며 그녀들과 그들의 삶을 정리하려 했지만, 끝날 때에선 그 수많은 법칙들이 사실은 전혀 필요치 않고 또한 무의미한 것으로 정리된다.
큰 물고기가 산 속에 떨어지면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남쪽에서 온 사내가 술에 취하면 너희의 자손은 검불처럼 쓰러지리라.
여장부에서 사내가 되어버린 금복과 금복이 만든 거대한 고래를 닮은 영화관, 대체 노파의 그 깊은 원한과 복수심은 세상의 무엇을 향하기에 그토록이나 깊고 집요했단 말인가. 소설 모든 부분에서 죽은 자들이 서성인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영토가 분명치 않아 죽은 자들은 쉽게 나타나 산 자들과 대화하고 산 자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모든 것을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커다랗고 강한 것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비극의 냄새는 너무도 강렬하여, 그 모든 거대함은 비참한 운명을 산다. 춘희 또한 비극 속에 살았고, 그녀의 아버지인 걱정 또한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본 채 자살의 길을 택한다. 대왕고래의 배를 가르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파한 금복은, 거대한 것에 대해 매혹 당하고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 거대한 것들이 슬픈 역사를 지니고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에 좋은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았던 작가임에, 단 한 명의 등장인물도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 치밀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읽는다기 보다 듣는다, 혹은 보다,의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그 놀라운 흡입력도 또한 주목할만 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재미없는 현대 소설들에 비해 박진감 넘치는 서사는 모두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의 형식에선 좀 벗어나 있음에도 이 매혹적인 소설을 쥐자 끝장까지 읽어내려 갈 수 밖에 없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작가는 참으로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달부터 현대소설을 대놓고 읽는 중이지만, 이처럼 또 신선하고 발랄하며 흥미로운 소설은 처음이다. 독특한 이 느낌, 연출을 준비중이라 알고 있는데 그의 영화는 또 어떨지 한 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