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책이 도착했다. 어제는 헌책들 오늘은 빳빳한 신간들! 꼽으려 책장을 보니 더이상 들어갈곳이 없다. 책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남편과 내가 지금껏 모아놓은 영화 시디들이 책장을 침범해 버려서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시디들 잘 정리하는 방법 없나..이휴...

좌우지간 책들이라도 제대로 꼽아 볼양으로 정리중인데 분류의 기준은 오직!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책..^^; 태양님께는 미안하지만 어째 그렇게 되어버렸다. 내가 읽은 책일수록 위로 위로 보내지고 ^^;; 안읽은 책일수록 딱 눈높이로...

워낙 태양님과 관심사가 달라서 타협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책만 사고 태양님도 태양님이 원하는 책만 사는지라 태양님은 태양님 책 찾느라고 고생할꺼다. 음..뭐..찾아주면 되지 뭐..^^;; 여튼..지금 반쯤 끝났는데 태양님 눈온다고 전화다. 뭐..데이트하자는것도 아니고 그냥 눈온다고 보고 전화다..창문 열고 한번 봐줘야겠다. 오늘 특별한 음식 해준다니까 김치볶음밥 해달란다. 이공 뭐 좀 특별한것좀 해줄려고 했다먼 어쩔수 없쥐 뭐.. 5시 30분까지 책장 정리 끝내고 저녁 식사 준비 모드로 가야겠다.

뭐 정리해도 별반 달라진게 없는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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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일기
임경수 감독, 문정혁 외 출연 / 팬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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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영화를 골라 보는 편이다. 일단 공포영화는 절대 안보고, 추리 영화도 안본다. [의뢰인] 류의 영화는 보지만 폭력이 난무하고 특히 총싸움질 하는 영화는 안본다. 그래서 액션무비도 안보는 편이다. 전에 장국영이나 유덕화, 주윤발이 시대를 풍미했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홍콩 영화는 내 인생의 동반자였지만 머리가 어느정도 크고 난 후부터는 뭔가 찡...한 것만 찾다보니 어느새 홍콩과는 이별을 하고 말았다.

여튼!! 이런 내가 6월의 일기를 본건 음....에릭 때문이다. ^^;; 나를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다. 어쩌냐..좋은걸!! 한 방송국에서  문화프로그램을 만드셨던 피디님과 작가님은 에릭이 공부한다고 방송에 안나올까봐 걱정이라고 하시더군. 그들은 방송에서 멋진 미소 한방 날려주는것만으로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나도 그말에 동감한다. 어쨋든 참으로 불손하지만 대부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또 극장을 찾았을 영화 6월의 일기!  극장장에 앉아 문열릴때를 기다리며 잡지책을 뒤적거리는데 어떤 대학생이 이 영화에 별점이 4개 만점에 2개를 주었더군. 아....이거 에릭때문에 오긴했지만 실망하면 어쩌지..걱정이 살짝 됐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뒤  난 전혀 실망하지 않았고 잘만든 영화 한편 본것에 너무 감사했다.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꼭봐라!! 라고 추천을 해댔다.

집에오면서 태양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학교가 저래? 저거 좀 오버한거지?? 그런데 태양님은 별 말이 없다. 잘 몰라서인지, 현실이 참담해서인지... 나도 이혼한 부모에 엄마 없이 학교를 다녔지만 그게 결코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거나 왕따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었다. 내가 시골 학교를 다녀서일까. 아님 세월이 그만큼 변해서일까. 이지매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너무 끔찍했다. 그걸 당하는 아이의 입장이 끔찍하기도 했지만 그걸 보면서 히히덕 거리는 주변의 여학생들이 더 무서웠다. 그걸 그냥 묵인해버리는 담임선생님이 더 끔직했다.

영화의 마지막.... 참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일기... 그런 괴롭힘보다도 더 나쁜건 무관심이라고 했던 말.. 그말이 마음에 맺혔다. 내가 학원강사를 하기전에 교회에서 성경선생을 한적이 있었다. 난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랑받기도 모자랄 아이에게 무과심을 보였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사실 그건 내 상처였던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강하게 자랄수 있었던 이유가 부모의 무관심이였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그렇게 했던것이다. 그러나 지금 충분한 관심과 사랑속에서 다시 살고 있는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과잉보호다 할정도로 아이들에게 매달렸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그러다 아이들에게 당해요~~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주는것만으로도 기뻤으니까..

6월의 일기. 처음부터 범인은 누구다!! 라고 정해져 있다. 그러나 마지막 죽을 이가 누구인지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봐야 알수가 있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었던 영화이다. 훌쩍 커버린 맹세창의 그 감정없는 냉소적인 모습과 삐짝 말라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노처녀 형사 신은경, 속내를 알수 없는 차가운 성격의 죽은 아이의 엄마 김윤진에 가려서 우리 에릭이 잘눈에 안들어왔지만 첫 영화에서 그렇게 했다는거 잘한거 아닌가? 유달리 연기력이 떨어져 눈에 띄었다면 그게 오히려 더 큰일이지. 첫 영화인데 영화에 잘 녹아들어가 자신이 신화의 에릭이 아닌 겸손한 연기자 문정혁임을 보여준 에릭 잘했다! ^^  신은경과 문정혁 사이에 로맨스가 좀 풍겼으면 영화의 본질을 좀 벗어났을려나? 그래도 팬들은 더 좋아했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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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씨 이야기를 읽고 잠시 생각이 난 나의 자취 생활기!!

나는  살면서 세 가지 유형의 자취를 생활을 했다. 첫째는 함께 살기, 두번째는 혼자 살기. 마지막은 너와 살기. 앞의 두 유형의 자취는 실패였고 마지막 너와살기는 지금 하고 있는데 대략 지금까지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함께 살기.. 대학 4학년부터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하고 나오던 3년간을 난 9명이서 무더기로 살았다.  큰방은 5명, 작은방은 4명 이렇게 살았는데 아침 저녁은 돌아가면서 했고 점심은 각자해결. 처음으로 반찬도 하고 국도 끓이고(지금 내 살림실력은 이때 다키워졌다) 일주일에 잘해야 두번 돌아오는 식사당번이 왜이리 귀찮던지! 귀찮으면 학교도 안가던 나인데 아침을 안하면 8명이 쌩으로 굶어야 하기에 꼭 일찍 일어나 밥을 해야했다. 책임감 없는 9명의 여자들이 사는 집은 그야말로 돼지우리였다.  이 책 그와의 짧은 동거에 나오는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명절날 모두 집을 비우는 2박 3일 정도의 시간에는 집안에 폭탄을 설치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다녀와서 초토화 되어있는 그들을 보면 정말 욕이 나오고 오버이트가 쏠렸다. 그런집에서 3년간 살면서 가장 불만이였던건 '그들'과의 동거가 아니라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거였다.  컴퓨터 불빛때문에 잠을 잘수 없다하여 난방을 하지 않던 거실로 쫒겨난 나와 컴퓨터. 발시려 코시려 밤새 추운 몸을 오그리고 작업을 하면 해가 밝아올 즈음이 되어 몸을 펴보려하면 온 몸 마디마디가 쑤셔 살수가 없었다. 다음에 이집을 나가게 되면 꼭 혼자 살리라. 방안에 컴퓨터를 들여놓으리라,  밤새 불을 켜놓고 책을 읽으리라,  애인과 밤새 수다를 떨리라 다짐을 했었다.

 혼자 살기... 대학원을 포기 집으로 들어가 1년여를 편하게 살았는데 부모님들이 귀농을 하시겠단다 다시 시작된 자취 생활. 이번엔 진짜 혼자 살기다. 그런데 이번엔..무섭더라.. 창문을 열수가 없더라. 누군가 내가 혼자사는 걸 알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은둔자 처럼 생활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 슬슬 길들여질때도 됐는데 9명이서 잡던 '그들' 과 혼자 맞딱뜨린 '그'는 차원이 달랐다. 난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산자락 밑의 내 집은 그야말로 생태보고의 장였다. 듣도 보도 못한 벌레들의 집합소였다. 한 날은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출근을 했는지 다녀와서 보니 온 방안이 벌레, 나방, 날파리들로 난리가 나있었다. 아빠보고 전화를 해서 하루만 와서 같이 자요! 라고 했더니 그러마~~ 해놓고는 안오셨다. 밤새 울었다. 아빠가 미워서 울고 저 벌래새끼들때문에 울고... (알고보니 울 아버지 그때 2002 월드컵 보시느라고 작은집에 계셨단다. 작은집과 내 자취방은 불과..음....10분거리였다. ^^;; ) 3개월을 살았는데 이번엔 벌레가 아니라 냄새가 문제였다. 뽀글 뽀글..어디선가 곰팡이 냄새가..팡이제로를 열심히 뿌렸지만 환기를 잘 못시키고 산지라 소용이 없었다. 책장과 침대 등을 곰팡이에게 내주고 그 집을 나와 작은집으로 들어가야했다.

너와 살기..... 너와 산지 3년하고 4개월! 그럭저럭 살만하다. 돈도 벌어다주고 내가 하고 싶은건 뭐든지 다하라고 해준다. 가끔 내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때 딱 고시점에 흐름을 깰 때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남들은 '너' 가 너무 좋은 사람이란다. 그런 사람없다고 난리다. 뭐 사실 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 어젯밤에는 저녁먹고 좀 앉아있다고 또 꼬꾸라져서 잠이 들었다. 요즘은 하루 걸러 하루는 10시도 안되서 잠이 드는것 같다. 저녁하고 남은 음식들 어찌됐나 하고 부엌에 가보니 남은 음식들 반찬통에 이쁘게 담아서 냉장고에 들어가 있다. '너'의 짓이다. 이뻐죽겠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해달라는거 다 해주께!!! 큰소리를 쳤지만 뭐 그닥 할줄 아는게 없다..^^;;

난 아직도 자취생활을 한다. 음..살림을 산다라고 하기에 나 살림솜씨는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내 동거남 '너' 도 대충 그러려니 하고 사는거 같다. 앞으로 나아질꺼라고 믿고 함께 사는거 같은데 벌써 햇수로 4년이 흘렀으나 그닥..나아진건 없다. 뭐 앞으로 10년후는 좀 기대해도 될려나..^^;;

내년 내후년이면 동거인이 하나쯤 더 늘어날것 같다. 그때도 여전히 지금처럼 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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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2-0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명이 사는 건 어떨지, 상상도 안되는군요.
전 친구랑 1년, 동생이랑 3년, 나머지는 내 혼잡니다. 동거를 할 때도 방을 따로 썼으니 뭐...
가을쯤 제게도 제대로 동거인이 생길텐데, 님처럼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군요. ㅎㅎ

이쁜하루 2006-02-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때 어떻게 살았나 상상이 안갑니다. ㅋㅋ 개념없이 살아서 남이 옷도 막 입고 그랬었거든요. 데이트 하려고 골라놓은 옷 입고 나가면 정말 미웠었죠 ^^
가을의 동거!! 잘 지내실꺼라 믿구용!! 미리 축하합니다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도 나는 살아가야지! 억지로 살아내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야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많이 힘들어 하던 때에 아니 미래라기보다는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일때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것이다. 그때의 내 일기장에 저런 글귀가 써있었다. 살아내지 말고 살아가자 라고.. 장모씨는 어쩌면 살아내면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하루를 보낸것이 아니라 시간적 개념의 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없어서도 아니요.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없어서도 아니다. 이건 순전히 자기고민에서 온 결과라고 보여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왜일까 그가 하는일이 어떤 것 이길래 그가 지금 하는 작업이 뭐가 어때서? 돈이 안되서? 사회적인 지위가 없어서?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이제 그는 슬슬 살아내는것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살아낸 10년이 장경섭 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아로 새겨진 흰바탕에 덜렁 바퀴벌레 한마리 그려져 있는 만화책 '그' 와의 짧은 동거를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는 이렇게 계속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지쳐버린 어느날 침대위에 있는 바퀴벌레를 발견한 장모씨. 그냥 같이  살기로 결심하고 침대를 바퀴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바닥에서 웅크리고 잠이 든다. 그날이 '그'의 동거 첫날이다. 설겆이도 해주고, 된장찌개도 끓여주고, 아르바이트가 까지 해가며 장모씨를 먹여 살려주는 그이지만 사람들의 눈은 곱지 않다. 비위생적이라고 욕을 하고, 그러고 사는 장모씨를 한심하게 여긴다. 슬슬 장모씨도 그들의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어느날 더이상 번식을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알집을 태워버린 '그' 를 보게 된다. 자신이 지금껏 퍼트린 자손들을 없애려고 먹어채우는 '그'를 보게 된다. 장모씨는 고민한다. 어떻게 사는것이 잘 사는것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살아야 하는지.

내가 선택한 길은 대학원이였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조금이라도 되어드렸어야 했는데 난 내 욕심 찾아서 대출받아 가며 대학원을 등록했다. 그렇게 실력이 좋은 학생도 아닌데다가 처음으로 여학생이 들어온터라 나를 보는 눈도 곱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혀를 끌끌 찼고, 손 내밀곳이 없어서 학원아르바이트에 과외에 하다보니 점점 더 나를 잃어가는것만 같았다. 취직한 친구들의 밥을 얻어먹을때면 더 내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고 나 이 공부 끝나면 멋지게 취직해서 보란듯이 너희들보다 더 잘지낼꺼다!! 큰소리 치면 되는거였는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부족했다. 그럴때 나오는 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은행에서 대출 빨리 갚으라고 전화가 온다. 생활비가 모자라 사용했던 신용카드도 막힌지 오래다... 이런 생활 끝에 내가 선택한건 대학원을 포기하는것 이였다.

장모씨는 포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지만 큰 결과물도 냈다. 그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지 모른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길것이다. 얼마전 이리 뒤적 저리 뒤적이다가 장모씨의 블로그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앙굴렘 만화축제에 초청받아 가있는 장모씨와 '그' 의 사진을 보았다. 축하하고 싶어졌다. 디럽게 많이 축하하고 싶어졌다. 이제부터 시작인거지!  앞으로는 장모씨가 더 이상 한숨섞인 말이 아닌 희망으로 에잇..이가이꺼 걍 살아내면 되지뭐!! 라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보태기! 그와의 동거도 좋았지만 즐거운 나의 방을 보면서 내 지나온 시절과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하면서 눈물이 찔끔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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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2005년 만신전(萬神殿)에서 걷어올린 한 권의 보물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장경섭과 최초의 인연을 창비에서 나온 『십시일반』으로 생각했는데 어제 후배가 전해준 『저예산독립만화지 1996년 6월호 통권 제2호-화끈』을 보니 그와 나의 인연은 그가 데뷔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했다. 그런데 고백할 것은 그에 대한 내 기억을 되살려 준 것은 『화끈』에 실린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실렸던 김동고의 "돌아온 조단"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그림체가 당시 내게는 꽤 특이하게 느껴졌고, 그 무렵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단이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던 무렵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그런 점만 놓고 보자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고 창비에서 펴낸 작품집 『십시일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집에서도 장경섭이란 이름은 내 기억 속에 명확하게 새겨지지 못했다. 『십시일반』에서 내가 눈여겨 본 작품은 조남준의 「누렁이1.2」였다. 조남준의 「누렁이2」는 훌륭한 단편 옴니버스 만화집인 『십시일반』의 여러 좋은 작품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뛰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장경섭이란 이름은 내게 확실히 각인되었고, 그것도 매우 뛰어난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와의 오래된 인연에 비해 장경섭이란 이름은 내게 오래도록 각인되지 못하고 표류해왔다. 그 이유는 뛰어난 작가를 선별해내지 못한 나의 둔함 때문이자, 이런 작가의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만화계의 고질적인 구조 탓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제라도 발견할 수 있게 된 그의 작품들은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장경섭 못지않은 실력과 진지한 작가 정신을 바탕으로 무명의 설움을 경험하고 있을 작가들은 많을 테니 말이다. 현재까지 내가 읽은 장경섭의 작품들은 『화끈』에 실린 「張某씨 이야기」와 『십시일반』에 수록된 「커밍아웃블루스」 그리고 이제 발간된 개인작품집 『'그'와의 짧은 동거』가 전부이다. 좀 더 노력한다면 그의 다른 작품들도 구해서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이 세 권에 수록된 장경섭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에 대해 일단 세 가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우선 그가 나랑 동갑이란 사실인데 그 때문인지 이념적 퇴조기를 살아낸,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표출하는 비릿한 삶의 비애가 느껴졌다. 다른 한 가지는 장경섭이란 작가가 매우 고집스럽고, 우직한, 그리하여 매우 호흡이 느리거나 긴 작가일 것이란 추측이다. 앞서 삶의 비애감에 대한 나의 주장이 다소 근거 없는 추측이라면 그의 호흡에 대한 이야기는 내 나름대로는 비평적 근거가 존재한다. 우선 그의 데뷔작이랄 수 있는 『화끈』부터 꾸준하게 주인공(화자)으로 등장하고 있는 '張某씨'와 작가 사이의 길고 긴 인연이 그것이다. 데뷔작이랄 수 있는 96년 작의 "張某씨"의 얼굴선을 그린 펜촉의 느낌은 매우 굵은데 반해 마른 얼굴로 묘사되고 있다. 이에 반해 『'그'와의 짧은 동거』에 등장하는 "張某씨"의 얼굴선을 표현하는 선(line) 자체는 가늘지만 얼굴은 이전의 작품보다 상당히 둥글둥글해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張某씨"를, 작가 자체와 동일시할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 화자가 만화가의 또 다른 페르소나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작가의 작품들이 내보이는 자의식들, 분명히 때로는 과잉으로 보이는 그 느낌들은 작품의 리얼리티와 관련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룬다. "작가의 말"을 살펴보니 "출판사에서 만화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 지난해 12월이었다. 10년 가까이 만화판의 언저리에서 머물렀으니 이제는 한 권쯤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나름의 초조감과 아직도 헤매는 모습을 꼭 드러내야 하나, 하는 부담감에 시달리며 5년 전에 시작만 했다가 끝내지 못했던 원고를 꺼내어 마무리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웃고 있는 작가의 안경 낀, 힘없이 열린 입모습에서 어쩐지 "張某씨" 캐릭터에 대해 그가 느꼈을 법한 애정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장겹섭의 첫 작품집 『'그'와의 짧은 동거』는 표제작인 중/장편에 「'그'와의 짧은 동거」 이외에도 매우 뛰어난 단편 「즐거운 나의 방」, 「즐거운 나의 방 - 다시 열기」를 비롯해 「서브웨이 카니발」, 「히.말.라.야.에.가.보.셨.나.요?」까지 모두 5편이 수록되어 있다. 만화체로 그려진 「히.말.라.야.에.가.보.셨.나.요?」를 제외하곤 극화체와 만화체가 혼재되는 느낌(그러나 전반적인 경향을 놓고 살필 때, 장경섭에겐 이런 구분이 거의 필요 없어 보인다) 속에 자연스럽게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림체만 놓고 보자면 『십시일반』에 수록된 「커밍아웃블루스」가 가장 세련된 그림체이다. 문학에 있어 문체는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이며 이것은 만화의 그림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장경섭의 그림체는 매우 어눌해 보인다. 세련된 그림체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그의 어눌해 보이는 그림체가 거슬릴 수도 있겠으나 작가 대신에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문체가 작가의 자의식을 반영하기 위한 선택적 글쓰기 전략의 일환이라면 만화가의 그림체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에게 장면 혹은 다루는 이야기에 따라 문체나, 문장의 호흡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택한다면 만화가에겐 만화체와 극화체, 혹은 펜의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이 속에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세계관, 그에 따른 표현방식을 모두 포함하는)를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만화가의 그림체는 캐릭터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그'와의 짧은 동거』가 선보이는 어눌한, 어쩌면 아마추어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림체는 작품에 대한 몰입의 과정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진실함을 보인다.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카프카의 『변신』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리얼리티의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과잉되어 보이는 자의식의 세계를 낯설면서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와의 짧은 동거」가 주는 첫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어두컴컴한 싱크대 앞 펑퍼짐한 몸매의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고, 침대에 누운 채 책을 보며 과일을 먹고 있는 "張某씨"의 모습은 낯이 익다. 아버지나 남편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어머니나 아내는 홀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아버지 혹은남편이 쉬고 있는 모습은 매우 낯익은 정경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낯익은 정경으로부터 시작하는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들린다. 설거지 도중에 컵을 놓쳐 깨뜨린 것이다. 그런데 깨진 컵을 주워 담는 손이 이상하다. 깨진 컵을 주워 담는 건 바퀴벌레였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면 분할에 있어 바퀴벌레의 손이 등장하는 것은 다음 페이지로 넘겼으면 좀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란 생각.)  

"張某씨"는 컵을 줍고 있는 바퀴벌레에게 다가가 "야! 손으로 만지면 안돼! 다친단 말야!"라며 바퀴벌레를 걱정하듯 말한다. 그러나 바퀴벌레는 화를 내며 다시 싱크대로 가 설거지를 한다. "張某씨"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후욱’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대체 왜 그래? 그래 불만 있는 거 알아. 아무래도 요새는 일이 좀 바쁘니까 신경도 못 쓰고.... 그래도 그렇게 꽁하니 말도 안하고 그러면 답답해서 어쩌냐. 우리 기분전환 삼아서 해남이나 한 번 다녀올까? 전번에 갔던 갯벌이 근사하던데 가서 갯지렁이도 잡고."라며 바퀴벌레의 마음을 달래주고자 한다. 마치 부부의 대화처럼 낯익지만 이질적인 존재들의 동거가 이 작품의 긴장과 매력 속으로 우리들을 끌어당긴다. 바퀴벌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수거한 '컴배트 파워(바퀴벌레약)'를 늘어놓으며 말한다. "화장실에 2개, 침대 밑에 2개, 싱크대 밑에 2개. 이건 무슨 뜻이지? 이젠 끝인가?" 작가 "張某씨"가 의뭉스럽게 깔아놓은 컴배트 파워, 삶이란 지뢰밭 사이로 이 제 우리들은 끌려들어간다.

"張某씨"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의 집은 마치 김중식의 시 속에 등장하는 귀가할 때마다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할 만큼 멀고도 먼 곳이다.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처럼 힘주어 올라간 계단 끝 막다른 옥탑방이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간다. 치약을 밟고 그는 혼자 말한다. '오늘은 어째 도가 좀 지나친 날이다. 외로움의 정도가...' 그런데 그의 방 침대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인지 그처럼 피곤에 지친 탓인지 침대 위에 올라가 있다. "張某씨"는 너무나 외로웠고, 오늘은 그 정도가 좀 지나친 날이었기에 바퀴벌레를 잡아 죽이거나 집 밖으로 내?는 대신에 침대를 바퀴벌레에 내어주고, 대신 방바닥에 입던 옷을 덥고 잠이 든다. "외로움의 도가 지나친 날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깐을 제외하곤 결혼할 때까지 10여년을 혼자 살았던 경험이 있다. "張某씨"처럼 옥탑방에 산적도 있지만 바퀴벌레와 가장 오랫동안 동거한 것은 인천의 허름한 연립 원룸에 살던 때였다. 아무도 없는 방, 아침에 출근할 때 급한 마음에 휙휙 던져 논 옷가지 그대로 쌓여있고, 싱크대 통에 누렇게 말라가는 밥풀과 하수도를 메우며 시큼하게 상해 가는 음식찌꺼기들. 그곳은 네가 떠나있는 동안엔 마치 네모난 관(棺)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돌연 출현한 바퀴벌레들, 분명 함께 살고 있는데도 불을 켜면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가끔 살충제나 방충제를 뿌려놓으면 죽은 채 발견되는 시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정둘 것 없어 병에도 정을 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너무나 외로웠기에 밤이면 자기 자신에게라도 말을 걸지 않을 수 없던 외롭고 쓸쓸하게 보낸 밤들이 있었다. 그런 어느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젯밤 그 바퀴벌레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작가 "張某씨"는 말한다. "혼자서 생활할 때는 자잘한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해야 한다. 어떤 신문을 사야할지부터 재떨이를 비워야 하는 시점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다보면 예민한 자아는 지칠 수밖에 없고 한 번 지치고 나면 무서운 고독감에 라면 한 봉지 사러 나가는 데도 하루 종일을 고민해야 한다."

외로움 때문에 시작된 바퀴벌레와의 동거는 여러 측면에서 알레고리로 읽힌다. 장경섭은 이미 전작 『십시일반』에 수록된 「커밍아웃블루스」를 통해 외국인 이주노동자와의 동성애를 그린 바 있다. 바퀴벌레는 문명화된 도시의 삶(자연, 사회, 공동체로부터 고립된 개인) 속에서 초대받지 못한 곤충 바퀴벌레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주류 세계에 포섭되지 못한 배타적 소수자(동성애자,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를 우의(寓意)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張某씨"는 마치 우렁각시처럼 설거지하고 살림을 도와주고, 친밀한 동료로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바퀴벌레와 함께 일상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사회가 허락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협소한 통념(通念)의 세계, 일상은 고통의 나날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볼 일을 보던 바퀴벌레는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고 쫓겨나고, 친구 바퀴벌레와 함께 탄 택시에서도 다시 쫓겨난다. "張某씨"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시선이 그를 괴롭히고, 생활 자체도 그를 힘겹게 한다. 다만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張某씨"를 이해해주는 ‘그녀’를 통해 그는 숨구멍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그녀'를 통해서도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스포일러일 듯하여 말을 아낀다.)

전세계에 걸쳐 4,000여종이 존재하고, 한국에도 7종이 살고 있는 바퀴벌레는 아프리카가 원산이라 따뜻하고 어두운 곳을 즐겨 찾는다. 그런 바퀴벌레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흑인 노예들을 잡아다 팔던 노예 상인들의 선박에 의한 것이었다. 본래 추운 곳에서는 살 수 없는 바퀴벌레는 화석에너지를 통해 난방을 해결한 문명적 삶의 혜택(?)으로 오늘날 우리가 거주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살게 되었다. 마치 이주노동자들이 자본의 이동 경로를 따라 삶의 정주지를 옮기는 것처럼, 그러나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허용되는 반면, 노동의 이동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골칫거리로 치부되곤 한다. 이주노동자들, 피부색, 인종에 대해 비교적 열린사회로 평가 받아오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 사건은 이를 잘 반증한다. 「'그'와의 짧은 동거」에서는 사마귀가 사귀어오던 여성을 과실치사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폭동 사건과 이의 전개 과정을 삽입하고 있다. 「'그'와의 짧은 동거」는 그간 문학의 영역에서 감당해왔던 우리 시대와 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의 치열한 고뇌와 사투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말」에서 말하듯 “근대에서 소설이라는 형식이 역사적으로 이상하게 팽대해진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왜 소설일까. 그것은 다른 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른 수단이 있었다면 굳이 소설이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란 것처럼 이제 과거의 문학 특히 소설이 감당하던 몫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커다란 미덕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 판단이 지나친 비관에 의존한 것일까.

그의 다른 작품들 특히 단편 「즐거운 나의 방」, 「즐거운 나의 방 - 다시 열기」은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표현들로 가득하다. “내 방에 들어와 보니 누군가 죽어 있었다. 나였다”로 시작되는 이 단편에서 그는 마치 유체이탈한 영혼처럼 자신이 죽음(주체의 죽음)을 목격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나를 보여준다. 내가 나를 잡고 슬퍼하고, 내가 나를 위로하며, 다시 “내 방에 들어와 보니 누군가 죽어 있었고” 다시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달려온 내가 “내 방에 들어와 보니” 나 아닌 내가 나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그 중 누군가인 내가 “내 방에서 뭐 하는 짓들이야. 이게 다 뭐야! 집어치우지 못해!”라며(이 또한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중 하나다)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나 아닌 나가 “저 자식, 또 지랄이네...”, “받아들이기 힘든가봐.”라며 술잔을 들이킨다. 「즐거운 나의 방」, 「즐거운 나의 방 - 다시 열기」은 마치 에셔의 무한순환하는 그림처럼 그렇게 삶과 죽음의 곡절들을 보여준다.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작가는 그렇게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 일상의 주체이자 소멸되어버린 몰개성의 주체들에게 묻고 있다.

나는 감히 장경섭의 이 작품들 『'그'와의 짧은 동거』를 2005년, 올해 내가 만난 내러티브 있는 모든 이야기(작품)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첫손에 꼽을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인간에 대한 우울하기 그지없는 온갖 예언들로 가득한 2005년, 대한민국 문학 판이 온갖 상업주의의 만신전(萬神殿)으로 변해버린 이 시간, 이 시대를 보내며 내가 발견한 희망과 절망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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