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인천시립교향악단 제445회 정기연주회 - 인천시향과 김대진

일시 : 2026년 7월 17일(금) 19:30

장소 :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연주

  - 지휘 : 김대진

  - 피아노 : 김대진

  - 연주 : 인천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 K.488

  -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D장조 Op.43


* 세줄평

처음으로 아트센터인천을 가본다, 집에서 매우 멀다. 김대진의 피아노와 지휘를 감상하기 위해 선택하였다. 모차르트 곡은 독주 파트는 꽤 좋게 들리는데, 협주에서는 오케스트라에 소리가 묻혀 아쉽다. 2층이어서 더욱 그런듯. 의외로 악기들 울림은 좋다. 역시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시벨리우스는 막강한 화력을 보여준다. 김대진의 시벨리우스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유장한 템포는 마찬가지지만 좀 점잖았던 전작에 비해 개별 악기군, 특히 금관의 활약이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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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트리오 아티스트리 제7회 정기연주회 - Tchaikovsky vs Tchaikovsky

일시 : 2026년 7월 17일(금) 15:00

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

연주 : 트리오 아티스트리

        - 변예진 (바이올린), 변새봄 (첼로), 김고운 (피아노)

프로그램

  - B.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 (1953)

  - P.I.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 A단조 Op.50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 세줄평

흥미로운 기획이다. 보리스의 곡은 듣기 어려운데, 현대적이며 악상간 대비가 뚜렷하여 자주 연주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표트르 일리치의 곡은 워낙 대곡이라 오히려 실연이 자주 없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긴밀한 호흡을 맞춰가는 연주자의 모습이 아름답다. 마지막 한 음까지. 피아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데, 좌석 덕분인지 첼로 사운드가 또렷하게 들려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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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 붓으로 역사를 기록한 화가 ㅣ 내 손안의 미술관 8
엘케 폰 라치프스키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고야 독서 2탄이다. 부제 ‘붓으로 역사를 기록한 화가’는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가 붙인 듯하다. 부분적 연관성은 있지만 이 책의 성격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저는 독일어인데, 표제는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겨울>이다.

 

원제와 차례를 보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는 하는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구성은 크게 1부 ‘벽걸이 양탄자 그림에 일가를 이루다’, 2부 ‘고야가 그린 사계’, 3부 ‘붓으로 진실의 얼굴을 그리다’이다. 2부가 핵심인데, 특이한 것은 고야의 그림 중 사계, 특히 ‘겨울’을 제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고야의 생의 이력을 따르지만 초점은 다소 다르게 가져간다.

 

대가로 성공하기 이전의 고야를 1부에서 다룬다. 마드리드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낙방하고 이탈리아 아카데미에 합격한 고야. 태피스트리, 즉 벽걸이 양탄자 밑그림으로 성공하고, 이어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3부의 경우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판화집 <변덕>과 <전쟁의 참화>를 이야기하지만, 깊게 파헤치지는 않는다. 다만 판화집 <변덕>을 당대 도덕 교육을 위한 그림으로 이해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화가로서 고야의 삶 중에서 주목할 점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화법에 도전하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일흔다섯의 나이에 석판화를 학습한 점을 언급한다.

 

고야의 사계 연작은 이전 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 저자는 왜 특히 <겨울>에 집중하였을지 궁금하다. 고야 이전의 사계 그림은 예쁜 장식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도 상쾌하게, 매서운 겨울도 따뜻하게 그려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정서를 품게 만드는 그림으로. 고야는 전혀 다르다.

 

고야의 겨울은 정말 겨울답다. 매서운 추위에 몸이 절로 웅크려드는 겨울이다. 고야는 매섭게 휘날리는 눈보라와, 얼음처럼 얼굴을 찌르는 겨울 바람을 붓으로 그렸다. (P.72)

 

단지 겨울답게 추위를 제대로 그렸다고 대단하지 않지 않는가. 저자는 <겨울> 그림 속 여러 요소를 분석하면서 당대 에스파냐 사회와 미술 화풍을 함께 분석한다. 겨울바람을 막고자 옷자락을 뒤집어 쓴 남자들의 펄럭이는 옷자락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우하단의 꼬리를 말고 있는 개의 모습이 갖는 그림 속 함의가 어떠한지. 말년의 <개>에 이어 <날개 달린 개>까지 이르러서는 당대 사회의 마녀와 광기를 파헤친다. 그것은 에스파냐를 지배했던 가톨릭 교회의 불의와 압제와도 연관된다.

 

에스파냐는 이성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였다. 모든 국민들이 마녀나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도처에 검은 미신과 마술이 판치는 나라에서 이성의 능력을 설명하는 학자는 기를 펴기 어려웠다. (P.97,99)

 

출세지향적인 고야의 화가로서 경력은 양탄자 밑그림에서 출발하여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수석 궁정화가가 되어 왕과 왕실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영광의 절정에 이른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고야가 장수하지 않고 이때 죽었더라면 우리는 고야를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고야의 위대성은 귀가 먼 이후 <변덕>과 <전쟁의 참화>, 그리고 ‘검은 그림’ 연작으로 이어지면서 당대 사회와 종교의 야만과 비이성을 드러내고, 고상한 대의를 내걸지만 실은 수많은 보통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 학살을 유발하는 전쟁의 참화를 고발한 데 있다. 나아가 빛과 밝음의 거짓과 위선 속에 내재한 어둠과 근원적 두려움과 공포를 보여준 데 있다고 본다.

 

고야는 두 눈을 똑바로 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고야는 자신이 흘러간 낡은 시대와 다가올 새 시대를 고루 체험할, 역사의 격동기 한복판에서 살아 있는 증인이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P.10)

 

장수와 다작의 화가 고야의 그림 중에서 풍경화와 정물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특이하다. 초상화든, 마호와 마하 그림이든, 벽걸이 양탄자 밑그림은 물론, 동판화의 단색 속에서도 고야는 집요하게 사람을 그리려고 하였다. 하다못해 노년의 투우 그림조차도 소와 더불어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

 

역자는 고야를 에스파냐의 역사를 그림으로 나타낸 화가라고 칭한다. 고야가 의식적으로 역사를 담으려고 애쓰지는 않았다고 본다. 고야는 그저 자신이 목격한 당대의 현실, 즉 미신과 종교와 전쟁이 가져온 불의와 비이성과 야만성을 그림으로 충실히 기록하려고 하였다. 그는 분명히 알았다. 이것이 올바른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인류는 분명히 보다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러한 고야다움의 단초를 저자는 <겨울> 그림에서 읽어내려고 하였다.

 

이 책 역시 미술서적답게 고급지를 사용하고 컬러인쇄를 통해 고야의 그림은 물론, 관련된 선대와 후대 화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다만 저자의 의도가 명확하기에 이 책이 고야의 전모를 충실하게 담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고야에 관한 기초지식을 가진 상황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야 화풍의 일면을 제시하여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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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소프라노 원상미 독창회 'Summer Love'

일시 : 2026년 7월 10일(금) 19:30

장소 : 영산아트홀

연주 : 원상미 (소프라노), 이미나 (피아노)

프로그램

  - 그리그, 6개의 가곡 Op.48

             1곡 '인사'

             3곡 '세상의 이치'

             4곡 '비밀을 지킨 나이팅게일'

             5곡 '장미의 시절에'

  - 라벨, 5개의 그리스 민요

             1곡 '신부의 노래'

             2곡 '저기, 교회를 향해'

             3곡 '어떤 멋쟁이가 나와 같을까'

             4곡 '유향나무를 따는 여인들의 노래'

             5곡 '모두 즐겁게!'

  - 바일, 미트볼의 노래

  - 바일, 야간 근무하는 친구에게

  - 바일, 유칼리

  - 바일,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 거슈윈, 날 지켜줄 사람

  - 거슈윈, 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 거슈윈, 슈트라우스의 음악


* 세줄평

성악 연주회는 거의 가지 않는다. 이유는 언어를 알지 못해서다. 이번에 큰맘 먹고 독창회를 찾는다. 연주곡 모두 한번도 들어본 적 없이 낯설다. 그리그의 가곡이 끌린다. 특히 3곡과 4곡이. 바일의 '유칼리'와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가 자아내는 슬픔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라벨과 거슈윈의 노래는 아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 번째 앙콜곡 '서머타임'은 약간의 연출과 어우러져 대미를 장식하기에 훌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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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녀들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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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청목사에서 출간한 그린 북스 시리즈가 있었다. 청소년 대상의 명작 소설 모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는 익히 아는 작품들이지만 일부 책은 굉장히 생소하였다. 문득 작품 목록을 훑다 보니 <아일랜드의 봄>과 <파란 눈의 아가씨>라는 표제와 작가 E.오브라이언이 궁금해졌다. 두 책은 일찌감치 절판되었고, 각종 도서관에서조차 찾기 어려웠다. 다행하게도 근년 들어 오브라이언의 책이 몇 권 번역되어 나왔는데, <시골 소녀들>이 <아일랜드의 봄>과 같은 책임을 알게 되었다. ‘시골 소녀들’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며, 원제는 ‘시골 소녀들’이 맞다. 그린 북스의 경우 표제를 좀 더 그럴듯하게 의역해서 붙인 모양이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아일랜드 내에서 금서로 지정되었고 한다. 어떤 내용이 외설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윤리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설정은 10대 중반인 화자 캐슬린이 노신사 젠틀먼과 교제하는 대목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원조교제에 가까운데 여기서 그들은 육체관계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 오래된 마을을 떠나는 게 아쉽지 않았다. 지쳐빠지고 늙은, 바스러지고 무너져가는 죽은 마을이었다. 가게들은 칠을 새로 해야 했고, 위층 창턱의 제라늄은 내가 어렸을 때보다 그 수가 줄어들었다. (P.209)

 

물론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1960년 이전 아일랜드 시골의 궁핍한 삶, 가정폭력과 가부장적 권위가 지배하는 가정의 모습, 캐슬린과 바바가 다니는 수녀원 학교의 과도한 금욕주의 교육 방침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에 즐거운 마음을 지니지 못하리라. 더블린으로 탈출한 두 사람이 부유한 중년남성과 어울리는 장면 또한 썩 유쾌하지는 못하다. 이런 내용이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이들에게 특히 반발을 유도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캐슬린이 가족과 집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집은 형편없이 쇠락한 가운데 아빠는 술에 의존하고 주기가 차면 부인과 딸을 마구 때린다. 화자는 이미 아빠를 두려워하고 아빠로서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니 설상가상이다. 다행히 공부를 잘하여 수녀원 기숙학교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의 교육 방침과 운영 방식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가혹할 정도다. 공교롭게 최근에 읽은 소설들에서 영국, 독일, 아일랜드로 국가와 종교는 다르지만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학생들에게 매우 비교육적으로 훈육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서도 감옥으로 표현하고 감옥처럼 묘사한다.

 

캐슬린과 바바는 외모, 성격, 가정형편 등에서 매우 대조적이다. 비교적 유복한 바바는 캐슬린을 시종일관 무시하고 독설을 퍼붓거나 노골적으로 질투하고 나쁜 행동에 동참하도록 꼬드기는 등 어찌 보면 악역에 가까운 역할이다.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는 캐슬린의 태도가 이해 안 될 때도 있지만, 결핵에 걸려 떠나는 바바를 바라보며 캐슬린이 품는 감정 상황은 독자가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내 영혼이 살아 발딱거렸다. 황홀감.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것.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P.102)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축은 캐슬린과 젠틀먼 씨에게 있다. 병든 아내를 둔 노신사에게서 캐슬린은 우정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애정으로 나아가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젠틀먼 씨가 적극적으로 어린 숙녀를 유혹하였다는 비난은 온당치 않다. 두 사람은 그저 감정이 합치되었을 뿐이다. 캐슬린은 젠틀먼 씨에게서 아빠에게서 구할 수 없는 부성애를 기대하였을지 모른다. 부유한 노신사가 베푸는 여유롭고 은근하며 안정된 접대와 에티켓에 마음이 쏠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서 손을 잡거나 입맞춤을 하면서 서로 간에 기쁨을 느낀다. 그들은 관계의 진전을 바라지만 서두르지 않기에 내심으로는 바라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두 사람의 최초이자 마지막의 용기 있는 일탈은 젠틀먼 씨의 전보와 함께 날아가 버린다.

 

젠틀먼 씨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만사가 완벽해지는 순간, 그는 완벽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멀어졌다. (P.272)

 

난 벌써 슬퍼졌다. 그 누구도 그를 진정으로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너무 초연했다. (P.287)

 

화자 캐슬린은 솔직하다.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옹호하거나 도색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신이 바라보는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각에 자신의 시골 마을은 쇠락하고 영락한 자취가 역력하다. 수도 더블린이라고 나을까? 물론 젊은 사람을 자극하는 상대적 번영과 활기를 인정하겠지만, 그것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캐슬린은 노동을 해야 한다. 화장을 하고 화려한 대도시로 돌아다니는 저녁의 삶은, 점원으로서의 낮을 토대로 해야만 가능하다.

 

우리는 키득거리면서, 낯선 승객들에게 ‘어쩌라고’ 식의 표정을 보이면서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내 생각에 우리가 대도시에 도전적으로 맞서는 들뜬 시골 소녀들의 삶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P.209-210)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그때까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던 십 대 소녀를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그들의 시각으로 가면 아래 뒤틀린 당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작가는 캐슬린을 응원하고 옹호하지만 따끔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의 기일을 자신은 잊었지만, 자신이 그렇게나 미워했던 아빠는 기억했음을 보여주면서. 어쩌면 캐슬린은 젠틀먼 씨를 실체가 아니라 실현될 수 없는 공상의 꿈으로서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던지면서 말이다.

 

내가 참 어리석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히키뿐 아니라 잭 홀랜드와 마사와 브레넌 아저씨 모두에게 의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실제 인물들 모두에게. 젠틀먼 씨는 그저 그림자였지만 내가 열망하는 것은 그 그림자였다. (P.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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