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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출간되어 금년도 상반기까지 태풍처럼 출판계를 휩쓸었던 장편소설. 하지만 외국계 신작소설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난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빌려보게 되었다.
소설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믿는다. 전자는 순순한 문학적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소설. 불멸의 고전문학 작품들이 죄다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후자는 지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지식소설. 여기서는 가슴을 벅차게 하는 감흥 대신 미처 알지 못하였던 지식과 사실을 알게되어 호기심과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역사소설과 여기 이 책도 그러하다.
어차피 원문이 아닌 번역본의 경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 번역자의 개인적 한계 등. 따라서 어구와 표현의 아름다움과 유려함 등은 그닥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렇다, 오로지 재미.
서양 종교사 내지 중세사, 특히 성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굉장한 구미를 당길 법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애나 존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재도 결국은 '성배'가 아니었던가?
루브르박물관장이 살해당하고 마침 강연차 파리에 머물렀던 랭던 교수가 살인범 용의자로 지목받는 가운데, 암호전문가인 박물관장의 손녀가 그를 도와 도주에 성공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갖고 궁극의 존재로 발걸음을 향한다는 플롯은 긴박감 넘치는 추리소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솔직히 내용 자체보다도 작가가 도처에 장식해 놓은 역사적 이야기가 보다 흥미진진하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기독교계의 갈등. 베드로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대립. 추방된 여성성과 시온수도회, 성당기사단의 존재. 가톨릭의 보수적 분파로서의 오푸스 데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술 작품에 숨겨진 반가톨릭적 상징. 시온수도회의 그랜드마스터의 명단이 주는 놀라움 등.
여기서 랭던이라는 기호학자를 통해 밝혀지는 무수한 기호와 상징의 세계는 우리가 무심히 넘기는 각종 기호들이 사실은 깊은 형이상학적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남성성의 칼과 여성성의 잔, 성배는 잔이 아니라 잔이 상징하는 여성성이며,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유한다는 것. 그리고 가톨릭이 마리아를 추방하기 위하여 얼마나 살륙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과 지금도 뿌리깊게 살아남은 그 상징. 루브르박물관의 최신 조형물의 의미마저도.
새삼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관심이 간다. 아울러 사해문서,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통칭되는 초기 기독교의 문서들. 확실히 당시는 지금보다는 종교에 대한 해석이 다양했음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잃어버린 인간성과 청년시절의 기록에 대하여 아직도 의론이 분분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품 자체로서의 이 소설은 어떠한가? 솔직히 평범하다.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유인은 어디까지나 숨겨진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지 감동은 아니다. 특히 급작스러운 결말부, 레빙경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체포당하는 부분은 호화로운 진수성찬을 내놓다가 자신이 없어 다급히 회수하는 듯 당황스러움을 안겨준다. 역량의 한계인가 아니면 조급함의 증표일까.
이 시점에서 이 소설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양문화에 친숙하게 노출되어 왔다. 우리 이웃과 자신의 뿌리에 대하여는 잘 모르더라도 그리스로마신화는 잘 알며 '로마인이야기'는 지식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전세계에서 보기 드물정도로 기독교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이기도 하다. 몸은 유색인종이나 정신세계의 상당한 부분은 백인종에 가깝다. 황인종을 우습게 보고, 흑인종을 경멸하며 백인종을 동경하는. 서구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보편적 문화적 타당성을 가진 것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우리문화는 이미 서양과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