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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200여 페이지의 얄팍한 양장본이다. 굳이 양장본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20여년전 러시아의 에르미타쥬박물관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책이다.
무엇이 한 천재 다 빈치의 은밀한 취미일까, '은밀한'이라는 어휘가 미묘한 어감을 자아낸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천재의 취미? 그것은 바로 '요리'이다. 다 빈치에게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우선 회화다. 서양 회화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각종 과학적 아이디어의 발명가로서. 그런 그가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다는 것은 의외다.
전반부에서는 다 빈치와 요리에 관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어려서부터 맛좋은 요리를 가까이하던 배경에서부터 음식점에서 일을 하던 사실, 친구와 주점을 인수하여 운영하다 쫄딱 망한 에피소드. 무엇보다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요리였고, 위대한 유산인 회화는 요리개혁가로서의 그가 실패할 때마다 쫓겨나서 빚을 갚는 차원에서 행하던 마지못한 행위일 따름이었다는 점이다. '최후의 만찬'조차도 만찬의 이미지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주어진 기간 3년동안 무려 2년9개월을 먹고 마시는데 소모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스파게티와 포크의 발명가가 다 빈치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로 놀랍기 그지없다!!!
후반부에서는 실제로 다 빈치의 수고가 실려 있다. 솔직히 그리 썩 재밌거나 흥미를 끄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어이없고 황당하기조차한 내용이 잔뜩 게재되어 있고, 그것이 천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라니 오히려 우습다. 그래도 군데군데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예컨대 빵 사이에 고기를 넣어서 만들어 보는 구상은 오늘날의 햄버거와 상통한다. 그리고 요리를 예술적으로 치장해서 내놓는 모습은 맛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즘의 요리 추세와도 어울린다.
물론 그의 아이디어가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호두깎는 작업을 개선하기 위하여 거대한 기계장치와 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히려 인력 한명 투자에 비해 지나치게 낭비적이다. 그가 절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계화의 지나친 맹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자그마한 책을 통해서 다 빈치 당시의 이탈리아 상류층의 식사 습관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현대의 서양요리와 식사예절과는 달리 그 당시는 참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 빈치는 이를 개선해보고자 불철주야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다 빈치의 관심의 폭이 참으로 넓다는 사실도.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의 인간적이고 사소하면서도 생활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절로 미소를 띠게 되고 친근미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