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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 광복 75년 분단 70년 나라와 민족의 선각자, 애국 애민 정신과 민족교육 계몽철학
김형석 외 18인 지음 / 백산출판사 / 2020년 8월
평점 :
부제 : 애국 애민 정신과 민족교육 계몽철학
<인촌탐사 김성수>를 읽은 후, 인촌 김성수 관련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특히 한두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함몰될까 봐 여러 사람이 인촌을 평하는 그런 글을. 이 책을 집어 든 건 이런 연유에서다. 이 책은 총 19인의 공저물이다. 서문과 부록을 집필한 인류학 박사 리 훈이란 분의 주도로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인물이 인촌에 대한 글을 다양한 관점에서 남겼다. 아무래도 대법원판결로 인촌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힌 게 계기가 된 듯하다.
나름 학문적, 객관적 시각으로 인촌 문제를 다루려는 저자도 있는 반면, 개인적 감상으로 영탄에 매몰된 글도 있고, 이념적 편향으로 정치적 편 가르기에 빠져 있는 관점도 있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이 책은 옥석이 혼재한다. 큰 기대를 품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음을 언급한다. 김형석, 백완기, 이민홍, 엄창섭의 글이 그중에서 볼만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인촌의 특장점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확실히 인촌은 학교, 언론, 기업 설립까지는 주도하지만 이후 운영은 자체적으로 맡기되, 위기 상황이 닥치면 다시금 나서서 해결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인촌의 삶의 태도를 백완기는 인간자본의 전형으로 높이 평가한다.
인촌의 삶은 공선사후, 신의일관, 담박명지로 엮어진 공의의 삶으로 그의 삶 자체가 ‘인간자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촌의 삶은 그 자체가 생산과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그가 이룩한 사업의 업적이나 성과 못지 않게 소중하게 여겨야 할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P.100)
인촌에 대해 우호적인 이는 적어도 일제의 민족 말살기 이전까지는 인촌의 행적에 한 치의 틈도 없었으며, 이후 친일 행보는 자신이 이룬 기틀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하는 궁여지책이라고 판단한다. 혹자는 이때 인촌은 자포자기 심정에서 친일로 기울었다고 하는데, 인촌의 심정을 글쓴이가 어찌 헤아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독립 투사와 달리 인촌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고, 이민홍은 이를 트라우마 극기에 실패했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앞둔 일제의 단말마적인 탄압 행태로 점점 조여오는 상황은 여차하면 보성전문이 폐교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인촌이 깊은 고민 끝에 자신의 희생을 통한 변절을 표한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는 그때, 인촌이 자신의 트라우마 극기에 실패한 것으로 본다. (P.78)
다만, 인촌의 친일 행적을 변호하는 견해는 이것이 적극적 친일이 아니라 소극적 친일이므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혹자는 1937년 이전에 친일 행위가 없다면 친일파로 매도할 수 없다고 하나, 기록에 따르면 인촌의 친일 행위는 1935년부터 시작한다. 해방 정국의 반민특위에서 인촌은 한 번도 조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고, 서거 시 전 국민의 애도를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당대에 문제시하지 않았는데, 후대가 재단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엄창섭은 친일 심사의 기준이 엄격히 도덕적 관점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밝힌다. 즉 과거에는 친일을 통한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 기조였는데, 지금은 친일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지금껏 논의를 하고 있는 ‘반민족행위’, ‘친일반민족행위’, ‘친일행위’는 점차 오래된 정의로부터 최근의 정의로 변하는 것이며, 그 관점이 점차 ‘반민족’에서 ‘친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312)
친일 행위에 대한 재검토가 소위 좌파 정권에서 비롯되었기에 이의 정치적 판단 개입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대목도 제법 많다. 최근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순수한 법적 판단이기에 역사적, 철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인 반면 정치적 불만 표출은 제법 맹렬하다. 좌파 정권에 대한 본질을 벗어나는 인식과 비판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인촌을 건국의 어머니로 추앙하는 문구는 과도한 견강부회다. 대자보와 사신에 적합한 문장들을 나열하는가 하면 이념적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글들을 보면 차라리 책을 덮고 싶은 마음까지도 들 정도다. 몇몇 저자의 글들은 어찌 보면 수준 이하라고 하겠다.
이 책에서 얻은 소득도 있는데, 기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과 논란이 그것이다. 오경자의 글에 따르면, 이승만 정권은 인촌을 탄압하느라 고려대학교에 의과대학 설립 인가를 내주지 않고, 법과대학 교수들을 고시위원에서 일부러 배제했다고 하는데, 근거가 궁금하다.
김학주와 강석승의 글에 따르면, 인촌의 실력양성운동과 관련하여 인촌이 일제 타협적인 연정회 설립을 추진하고 자치운동을 전개하여 물의를 빚었고, 송진우를 앞세워 신간회를 주도하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촌의 어두운 면을 덮고 밝은 면만 부각하려는 기존 노력은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또 하나 김형석의 글에서는 해방 정국에서 김구의 임정 세력이 인촌을 암살 시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인촌은 백범과 임정을 존중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승만과 함께 반탁과 단정 수립을 선택한다. 이 때문에 임정과 한민당이 대립하게 되었음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백범이 인촌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이 역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러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에서 유독 인촌 김성수가 이슈화되고 있는 것은 그의 위상이 너무나 드높기 때문인 동시에 일제하 그의 행적이 애매해서다. 외견상 친일은 분명하나 그것이 실제인지 또는 그의 본의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법원 판결은 외형상 물증을 우선시한 결과다. 그것이 내면의 고뇌와 마지못한 사정까지 참작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양한 필진의, 다채로우면서 다소 산만한 글들을 접하다 보니 차라리 인촌에 대한 본격적 연구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과 이념에 휘둘린 글이 아니라 꼼꼼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이를 드러내는 글을. 인촌 김성수를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하기에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