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알레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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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가 200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해설을 제외하면 100면이 살짝 안 되는 분량이니 중편소설에 해당한다. 입센의 뒤를 잇는 극작가라는 평가에서 유독 궁금증이 생겼는데 일단 소설부터 읽기 시작한다.

 

편집자 일러두기는 이 작품에 마침표가 없다고 밝힌다. 독자들이 편집상의 실수로 오해할까 봐 친절히 알려주는 셈이다. 이것이 욘 포세의 글쓰기 스타일인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없다. 모든 문장은 오로지 쉼표로만 진행되며 가끔 물음표 정도는 허용한다. 문장 구조상 불가피하게 마침표가 등장해야 순간에는 아예 문장부호를 넣지 않는다. 이러한 철저하고 의식적인 행위는 작가가 분명 무엇인가 의도하는 것인데 과연 무엇일까?

 

필립 그래스라는 현대음악 작곡가가 떠오르는 까닭은 그의 미니멀리즘 작법과 욘 포세의 글쓰기가 유사해서다. 이 작품에서 반복을 생략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본다, 그녀는 의자에 누워 있다. 남편 어슬레가 영원히 떠났고 오랜 시절이 흘렀어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생각한다. 싱네의 생각 속에 어슬레는 계속 살아 있다. 항상 보트를 타고 피오르드에 나가기를 좋아하던 남편, 창가에 서서 밖의 어둠을 응시하던 남편, 파도가 거칠어 배를 타지 않겠다고 했던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창문을 바라본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장작을 하나 들고, 허리를 굽히고 그것을 난로에 집어넣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현관문 쪽을 바라보는 자신을 본다, 현관문이 열리고, 문에는 그가 서 있다, 그리고 그가 방으로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닫는다. (P.19)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미소 짓는다, 그녀는 그가 현관문으로 나가 등 뒤에서 문을 닫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녀는 의자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본다, 그녀는 왜 항상 자기 모습을 보아야 하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P.54)

 

작품의 시선은 싱네에서 어슬레로 다시 싱네로 계속 옮겨 다닌다. 어슬레는 언제나 밝은 불빛을 배경으로 창가에 서 있던 아내를 떠올린다. 사라지던 밤 그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이내 다시 집 밖으로 나온다. 다시 돌아가려고 생각을 하지만 결국 돌아가지 않았다. 싱네와 집에 안주하지 못하는 어슬레의 생각은 무엇인가. 싱네의 생각 속에 어슬레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싱네를 생각하고, 싱네는 그런 어슬레를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회상, 그리고 상실 전 부부간의 고독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는 알레스를 등장시킨다. 그는 누구인가? 어슬레의 고조할머니. 알레스를 필두로 싱네와 어슬레의 회상은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바다에 빠진 증조할아버지 크리스토페르, 그의 아들이자 만에 빠져 익사한 할아버지 어슬레로 이어진다. 어슬레 집안은 바다와의 친연성 못지않게 익사의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어슬레의 사라짐은 집안의 내력이려나. 회상 속에서 선조들을 바라보며 엇갈리고 때로는 마주치는 싱네와 어슬레. 이로써 과거와 현재는 단절되지 않고 더불어 굴러가며, 어슬레의 익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저 사람은 알레스, 그는 생각한다, 그는 본다, 그는 안다, 저 사람은 알레스, 저 여자는 알레스야, 그는 생각한다, 그는 안다, 자기 고조할머니라는 것을, 저 여자는 알레스, 그의 이름은 그녀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더 정확히 다시 말하면 일곱 살 때 죽은, 여기 만에서 익사한 그녀의 손자 어슬레의 이름을 딴 것이다, (P.39)

 

싱네는 수십 년을 홀로 빈집을 지키며 남편을 회상한다. 아이가 있었다면 아내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싱네는 다만 떠나간 남편의 부재와, 그를 향한 끈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반복하여 의식한다. 언뜻 보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사랑이 삶의 전부를 차지하고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어슬레는 바다로 향하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고, 싱네는 어두운 창밖을 늘 바라보는 남편에게 어찌할 수 없는 불안감을 지닌다.

 

작가는 문장부호, 문장 반복, 남편과 아내 간 시점의 전환 외에도 메타 관찰자를 의도적으로 추가한다. 싱네는 회상 속에서 남편만을 관찰하지 않는다. 남편을 바라보는 과거의 싱네를 지금의 싱네가 지켜본다. 과거의 싱네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관찰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과거의 어슬레와 지금의 싱네가 함께 과거의 싱네를 바라보며, 지금의 싱네는 그러한 어슬레와 싱네를 동시에 의식한다. 그리고 는 그러한 싱네를 보고 듣는다. ‘가 등장하는 게 작품의 가장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점이 시사적이다.

 

나는 방의 그곳 의자에 누워 있는 싱네를 본다, (P.3)

 

그리고 그녀는 그를 바라본다, 그녀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양손을 배로 가져간다, 그리고 그녀는 양손을 모은다, 그리고 나는 싱네가 말하는 걸 듣는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P.101)

 

이 작품은 철저하게 고독하다. 현실의 싱네는 외롭고, 회상 속 싱네와 어슬레도 서로에게 근원적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어둠과 빛 속에서. 남편의 조상들 사이에 간혹 드러나는 흐뭇한 장면도 짙은 구름 속 순간적 햇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과 회상으로 일관할 뿐 현실은 아무런 사건을 담고 있지 않다. 작품을 이끌고 지탱하는 힘은 전적으로 생각의 끈질김에 있다. 이 끈을 놓치면 큰일 난다는 듯 작가는 인물에게 생각을 밀어붙인다. 우리네 인생은 불안정하고 모호하며 애매함에 휩싸여 있지만, 그럼에도 의식은 단절되지 않으며 시공간을 넘어서 무한히 계속되며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쉼표로만 문장을 이어가고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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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쏜살 문고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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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 사후에 작가의 남편이 편집하여 발간한 동명의 단편집이다. 25편 중 13편을 수록하였는데, 이 단편집은 작가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의 표제명은 콜리지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고전적인 또는 영화적인 사랑의 장면은 자연적이며 운명적인 조우에 있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은 미숙하고 유치하지만 그렇기에 항상 마음속 깊은 여운을 드리운다. 남녀의 사랑이 이성으로서 자각될 때 더 이상 천연스러움은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과는 떨어져 둘만의 은밀한 공간을 찾게 될 때 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그러니까 서로의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달라질 듯 느껴져 그러면 우리는 지금처럼 당당하고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 우리는 뭔가 비밀스러운 짓을 하게 되는 거겠지. 우리가 더는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이 아니게 될 거잖아. (P.29)

 

헨리의 손길을 항상 피하던 에드나가 문득 그에게 키스를 원하는 감정을 고백했을 때 헨리와 그녀의 관계는 크게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마련이다. 작가는 분명한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 헨리는 어둠 속에서 전보를 손에 든 채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새 드레스들>의 두 딸 로즈와 헬렌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각은 상반된다. 부모인 앤과 헨리는 헬렌을 구박하며 문제아 취급한다. 할머니와 의사 맬컴 선생은 헬렌에 동정적이다. 특히 맬컴 선생은 오히려 로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들여다보면 앤과 헨리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할머니의 정신은 오락가락하여 설득력이 없다. 맬컴 선생은 할머니와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 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만다. 그런데 말이다, 내게는 맬컴 선생이 썩 호의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마치 꿍꿍이를 품은 듯한 느낌이.

 

노인네랑 대화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그는 생각했다. ‘내 말의 의미를 반만큼도 못 알아듣고 있잖아. 그저 헬렌에게 인형을 못 사 주게 된 일만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야! 저러니까 도대체 발전이라곤 없지.’ (P.112-113)

 

맨스필드는 삶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우리네 삶은 참과 거짓, 선의와 악의가 뒤섞여 있다. 이러다 보니 겉보기와 실질이 합치 안 한다거나 가까운 과거와 미래에 감정과 태도가 표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도 중차대한 사안 보다는 한낱 하찮기 그지없는 사소한 건으로 말이다. 사랑과 미움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간, 연인 간 사랑과 행복이 넘칠 것 같지만 실상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가. 그것을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에 국한한 것으로 간주하지 말라. 보통의 사람들 누구나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렇게 작가는 주장한다. 인생은 모순이자 역설로 점철되어 있다.

 

<검은 모자>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요양 간다며 거짓말하고 서둘러 애인을 만나고자 하는 여자의 열망이 전반부에 두드러진다. 어쨌든 불륜 남녀는 즐겁게 만남을 가졌을까? 아니다. 여자는 애인이 쓴 검은 모자가 못마땅하고 그 흉측한 모습에 치를 떤다.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외모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인정 못 한다. 문득 남편이 그리워진다. 제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향해 마차를 되돌린다.

 

<진실한 모험>의 화자는 브뤼주에 홀로 여행하면서 낯설고 불친절한 경험에 마주친다. 조각배를 타고 뱃길을 관광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안내원에게 미움을 받기조차 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와 남편이 런던과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브뤼주 관광을 제의하자 화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브뤼주로 향하는 여행>의 화자 역시 기차와 선박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와중에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 짐꾼, 두더지, 남녀 커플, 노부인 - 을 보면서 인간성의 실체를 발견한다. 남녀 커플을 보면서 사랑의 힘을 찬미하다가 거만한 노부인의 아양을 보면서 악몽 같은 연애에 치를 떤다.

 

<>의 연인은 사랑하지만 결혼 관계는 아니다. 여자는 법률 계약에 얽매이기를 꺼린다. 여자는 절대적 자유를 희구하고 남자는 그 공허함, 허무함을 덜 수 있기를 바란다. 뉴스에 실린 아내를 독살한 남편 사건에 대해 두 사람은 시각이 엇갈린다. 누구나 내심에 배우자의 독살을 상상할 거라며, 다만 남자는 심약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면 여자는? 문득 와인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하나님 맙소사! 혹시 내 상상이었을까? 아니, 상상이 아니었다. 그 음료에서는 분명히 싸늘하고, 씁쓸하고, 기묘한 맛이 났다. (P.195)

 

<로자벨의 피로><시소>도 위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소소한 부조화를 그리고 있다. 가난한 로자벨의 실감 나는 상상의 허무한 뒷맛, 늙은 두 아기와 어린 두 아기가 각자 벌이는 인생의 소꿉놀이는 별 차이가 없다. <밀리>는 어떠한가. 밀리 에반스는 사람을 죽였다는 아이에게 연민과 보호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의 인도주의적 감상에 흐뭇함마저 느낀다. 새벽녘 말을 훔쳐 도망가는 아이와 추격하는 남편 일행을 바라보며 밀리의 마음에 싹튼 감정은 무엇일지? 그녀의 감정이 일순간에 표변한 까닭은 무엇일지 알 수 없다.

 

밀리의 마음 속에서는 낯설고 광적인 기쁨이 피어나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짓눌러 버렸다. 밀리는 맨발인 채 길 위로 황급히 내달렸다. -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고 악을 쓰며 비명을 질렀고 흙먼지 속에서 손전등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아하! 그 녀석을 쫓아가, 시드! 아아아! 그놈을 잡아, 윌리! 얼른 가! 그렇지, 시드! 총으로 쏴 버려. 총으로 쏴 버리라고!” (P.124)

 

한편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전형적 작품이 <펄 버튼이 어떻게 유괴되었는지에 관하여><잘못 찾아온 집>이다. 전자에서 어린 펄 버튼은 유괴를 당한다. 집시일까 방랑유람단일까 유괴자들의 정체는 분명치 않지만, 천만다행히도 오래 지나지 않아 펄 버튼을 찾는 일행이 등장한다. 이제 펄 버튼은 행복을 되찾을 수 있겠지. 어찌 된 일일까, 그녀는 비명을 지른다. 생각해보니 어린아이는 유괴된 곳에서 기쁘고 신이 나서 즐겁게 놀고 있었으며, 유괴자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지. 반면 펄 버튼을 구출하러 오는 무리에 대한 그의 인상은 이러하다.

 

작고 푸른 남자들이 달려온다, 그를 향해, 고함과 호루라기 소리를 삑삑 내며 상자처럼 일렬로 똑같이 늘어선 집으로 그 애를 다시 데려가려는 작고 푸른 남자들 한 무리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P.64)

 

후자의 노부인의 평온한 삶은 잘못 찾아온 장의 마차로 완전히 틀어진다. 일순간 그는 삶이 종지부를 찍었음을 절절하게 체험한다. 비록 그것이 잘못 찾아온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앞선 놀란 심정이 저절로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자신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으므로. 죽음 앞에 아무 준비 없이 노출된 노부인이 쥐어짜서 죽음을 거부하는 손짓은 일체의 과장이 없으므로 더더욱 우리네 현실과 부합한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야? 이 소리의 의미는 대체? 사람 살려, 신이시여! 그의 나이 든 심장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정신없이 벌떡거리다 아래로 쿵 떨어지고 말았다. (P.181)

 

<무모한 여행><><이 꽃>과 결을 같이한다. 화자는 홀로 군대가 통제하는 전방의 마을로 찾아간다. 욕구에 충만한 군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 굳이 그 시기에 그녀는 이모와 삼촌을 만나려고 가야만 했을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마을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 뒤를 키 작은 상등병이 뒤따른다. 후반부는 술집을 배경으로 한다. 화자와 키 작은 상등병은 어느덧 커플이 된다. 일행은 푸른 눈의 군인이 말한 -월한위스키를 맛보려고 야간통금령도 어기며 몰래 다른 술집으로 가서 들이킨다. ‘무모한 여행은 전반부의 여행을 지칭하는지 또는 후반부의 무모한 술집 탐방을 뜻하는가. 또는 전후반부 모두에서 그녀가 보이는 행보를?

 

<이 꽃>은 워낙 은근하고 미묘하게 묘사하여 도대체 어떤 사건 또는 행위를 기술하는지 한참 생각했으나 역시 단서는 있었다. 의사, 은밀한 처치, “삶의 흐름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P.173), “그것은 그녀를 태() 안으로 받아들였다”(P.174), 하마터면 끝장났을 거라는 그의 탄식. 그렇다, 이 작품은 은유적으로 낙태를 기술한다. 남녀 간 열렬한 사랑, 그런데 사랑의 결실은 이렇게 거부당한다. 무슨 이유인가? 결혼 준비가 안 되어서? 드러낼 수 없는 불륜의 관계이기에? 요즘에도 낙태는 완전한 자유권이 주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작가 당대에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암암리에 빈번히 벌어지는 현상. 원하는 사랑의 원치 않는 생채기라고밖에는.

 

여전히 맨스필드의 글쓰기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슬처럼 깨끗하고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독자의 눈과 마음에 던져주지 않는다. 이슬이 쉽게 오염될 수 있음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에는 피의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의식적으로 외면하려고 한다. 작가는 굳이 우리의 눈과 귀에 현상과 다른 실체가 엄연히 실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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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72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성염 옮김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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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책은 <국가론>이지만, 불가피한 사정상 <법률론>의 후기를 먼저 쓰게 되었다. <노년론/우정론>에 이어 순차적으로 키케로의 주요 저작을 차근차근 살펴볼 예정이다.

 

키케로는 플라톤을 무척 존경하였다. 그는 플라톤을 따라서 <국가론><법률론>을 지었다. 좋게 보면 오마쥬, 나쁘게 보자면 아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라는 시기적, 지리적 차이는 물론 정체(政體)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독자적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키케로의 <법률론>은 제1권만이 완전한 편이며, 2권과 제3권은 누락이 제법 많이 있다고 하며, 나머지는 현존하지 않는다. 법철학을 담고 있는 제1권이 여러모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마르쿠스) 무릇 법률이란 자연본성의 위력이고 현명한 인간의 지성이자 이성이며, 정의와 불의의 척도네. (P.74)

 

키케로는 법의 탄생을 인간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자연법사상이다. 신이 자기 모습을 따서 만든 유일한 존재인 만큼 인간의 영혼은 신적인 것이며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성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러하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이것을 사회적으로 정리하고 공표한 게 바로 법이다. 인간은 법의 준수를 통해 영혼과 이성을 갈고 닦아 자연 본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키케로 법철학의 대강이라 할 수 있다.

 

(마르쿠스) 무릇 덕이란 완결된 이성이며, 그런 것이라면 분명히 자연본성 속에 존재하네. 그래서 모든 도덕적 선도 같은 방식으로 자연본성 속에 존재하네. (P.95)

 

키케로의 법철학은 성선설에 기반한다. 영혼의 타고난 순수성과 선의가 반드시 존재하며 그것에 대한 믿음에서 자신의 의논을 전개하는데, 강제적 필요에 의해 법이 탄생하였고 사람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마지못해 법을 준수한다는 실정법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 자연, 영혼, 본성이라는 고차원의 기준에서 출발하므로 작위적이거나 무리한 면이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법의 탄생을 정당화한다.

 

법철학과 실제 법률과는 다르다. 전자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논의가 가능하지만 후자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내용을 담고 있어 대립하는 사건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다 명확한 의견과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2권은 종교 관련 법률, 3권은 정무직 관련 법률을 다룬다. 두 권 모두 동일한 구조를 취하는데 우선 해당 법조문을 일괄 기술하고 이후 법조문의 문구별로 세부 해설을 하고 있다.

 

종교 관련 법률은 현대와는 다른 종교관이어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이어서 흥미가 떨어진다. 키케로는 자신의 자발적 유배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종교와 연관하여 정적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어 이채롭다. 상속자의 제의 거행 의무를 다루면서 유산 상속은 받더라도 제사 의무를 회피하는 것을 법적으로 용인해주는 세태도 개탄한다.

 

(마르쿠스) 법률이 정무직을 감독하듯이 정무직이 인민을 감독하지. 정말 정무직은 말하는 법률이고, 법률은 말없는 정무직이라 할 수 있네. 사실 통치권만큼 자연의 법도와 체계에 부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P.192)

 

일반 독자에게 흥미로운 장면은 아무래도 제3권의 정무직 관련 법률 설명이다. <국가론>에서 다룬 왕정, 귀족정, 민주정 등 여러 정체(政體)와 연관되는 내용인데, 통치 형태와 법의 긴밀한 관계는 고금을 막론하고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정치 현상에 일희일비하며 열의와 분노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과잉 정치 관심인 동시에 인간사에서 정치가 갖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입증한다. 실제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기에 키케로의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퀸투스는 호민관 제도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반감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이 대목은 법률론의 내용을 넘어서는 영역인데, 법률이 인정하는 정치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라고 하겠다. 호민관이 원로원의 권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귀족으로서는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티쿠스도 퀸투스와 같은 의견이다.

 

나도 호민관의 저런 권한에 나쁜 면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저 제도에서 시도하는 선은 저런 악이 없이는 달성하지 못할 것이네. (P.216)

 

키케로 또한 큰 틀에서는 그들과 마찬가지지만 그라쿠스 형제에 대한 그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 유보적 내지 중도적 의견을 제시한다. 통령직도 장단점이 있듯이 순전히 장점만 있는 좋은 제도는 없다면서. 키케로에 따르면 호민관직은 필요악이다. 최선량들이 다스리는 체제가 성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평민들이 그들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면 호민관직은 불필요하다. 호민관직은 평민들을 귀족정 틀에 끌어들이기 위한 불가피한 타협이다.

 

<국가론>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의 고전인 이 책을 펼칠 때 난해하거나 따분하면 어떻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키케로는 현학적이지 않다. 전형적인 로마인답게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와 제도에 기반하여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 게다가 대화체라는 형식을 통해 딱딱한 구성을 피하고 있어 평범한 독자의 이해에 더욱 도움을 주고 있다. 흥미로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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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년의 미학, 플러스 썅년의 미학
민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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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광고문구를 보면 전작보다 더 시원하고 더 강력함을 강조한다. 전작 자체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남녀차별과 남성우월 사고를 통렬히 신나게 비판했는데 이보다 더하다니 작가의 주장에 매료된 독자로서는 기쁘게 속편의 책장을 넘길 것이다.

 

요즘 온라인에서 보면 일부 여성주의는 극단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네들의 극단성은 성취되지 않는 남녀평등에 대한 분노의 표출을 넘어 자신들의 주장에 호응하지 않는 남성 일반과 일부 여성에 대한 혐오까지도 거리낌없이 표출한다. 이의 반작용으로 일부 남성은 오히려 극단적 여성주의자를 향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극단과 극단의 대립 속에서 온건하고 중도적이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의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섣부른 의견은 박쥐처럼 회색분자 취급을 받아 비난의 대상으로 집중포화 받기 일쑤이므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본성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제아무리 부정해도 수컷과 암컷의 본능은 불변한다. 반려견처럼 인간 모두가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는 한. 남성이 여성의 생물학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 역할을 바꾸자고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 성을 자신의 성보다 우월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암암리에 드러낸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여성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남자들보고 여자처럼 화장하고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착용하며 월경을 겪어보라고 할 요구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평등을 추구하는 요소는 가정 내에서, 사회 속에서 남녀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동등한 인식과 취급이다. 남성 일반은 무채색을 선호하고 자신을 예쁘게 꾸미는 데 무심하다. 여성 일반이 화려한 복장과 예쁜 외모를 가꾸는데 관심 많은 것 또한 본성이다.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수컷이 화려하고 암컷이 수수한데 인간에게는 반대가 되었을 뿐 치장과 유혹, 선택의 과정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사회의 보편 문화가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됨을 인정하자. 유치원과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남녀평등 인식의 토대를 쌓으며 그들이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자. 당장 성인에 대해서는 작가가 주장하고, 작가의 전 남친과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차별의 현장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적하여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지만 성급하면 극단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말을 이 책에도 적용할 수 있다. 굳이 동어반복의 비슷한 내용의 책을 서둘러 낼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봐도 순전한 상업적 동기 외에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전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편집상의 실수-예컨대 카풀을 car poll로 표기(P.93)하는 등-가 여러 군데 나타나는데 무관하지 않다.

 

여성들이여,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라. 남성들의 허위와 위선을 사정없이 까발려라. 단지 그들을 미워하지 마라. 증오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이 외로운 행성에서 함께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유일한 같은 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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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시희극선 - 구두장이의 축일, 동쪽으로, 각자 기질대로, 왈패 아가씨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41
토머스 데커 외 지음, 이미영 옮김 / 아카넷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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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품>

1. 구두장이의 축일 (토머스 데커)

2. 동쪽으로 (조지 채프먼, 벤 존슨, 존 마스턴)

3. 각자 기질대로 (벤 존슨)

4. 왈패 아가씨 (토머스 데커, 존 미들턴)

 

700면에 가까운 두툼한 양장본. 겉표지에는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이라는 부기가 달려있다. 누가 봐도 심오한 학술서 번역본이구나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셰익스피어 당대의 유명한 희극 모음집이다. 얄팍한 단행본으로 분책하여 나오면 딱 좋겠지만 이 책이 발간된 십년 전만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할 만하다. 현재까지도 <왈패 아가씨> 정도만 별도 번역본이 <왈가닥 여자>라는 표제로 시중에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도시희극의 대표작만 수록하였다. 도시희극은 신화 또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왕과 귀족계급을 작품소재로 삼지 않고, 17세기 영국 사회, 그 중에서도 대도시 런던에 살고 있는 몰락한 귀족, 신흥 중산층 상인 및 수공업자, 매춘부, 사기꾼 등의 실제적 인물을 등장시켜 기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와중에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벌이는 이러저러한 행동 양태를 희극적으로 그려낸 극작품을 지칭한다.

 

이전 다른 작품들처럼 개별 희극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내용을 들여다보고 기록을 남긴다면 너무 분량이 많아질 것이므로 지양하고 수록작 네 편을 뭉뚱그려 살펴보고자 한다. <왈패 아가씨>는 별도 번역본에 대한 촌평이 있어 사정이 낫지만 다른 세 편은 아쉽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먼저 각 희극의 중심인물의 신분을 보자면, <구두장이의 축일>은 구두 장인인 사이먼 에어다. 요즘과 달리 당시 구두장이 기능공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회적 위상이 꽤 높은 듯하다. 구두 만드는 기술을 양반의 기술로 칭할 정도이니 말이다. 에어는 무역 투자로 부자가 되고 런던 시장으로 임명된다. <동쪽으로>에서는 금세공사 터치스톤과 그의 도제 퀵실버와 골딩, 그의 아내와 맏딸이 벌이는 귀족으로의 신분상승 소동이 중심 에피소드다. <각자 기질대로>는 뚜렷한 중심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신사, 상인, 가짜 군인, 물지게꾼, 하인, 판사 등 다양한 유형의 런던 시민들이 표제처럼 각자 자신의 기질을 발휘하여 한몫하고 있다. <왈패 아가씨>는 당연히 소매치기 몰이다.

 

이처럼 중심인물만 놓고 보더라도 신분이 보다 대중화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회의 발전 모습을 문학에서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음이다. 이의 부수적 효과로 산문체의 비중이 늘어났고, 등장인물의 대사 또한 고상함에서 평이함과 비속함을 넘나들고 있어 나쁘게 보자면 품위가 없지만 좋게 보자면 보다 실제적이고 생동감이 돋보인다. <왈패 아가씨>에서는 10장에서 아예 대놓고 소매치기들의 전문 용어를 죽 나열하고 있다. <각자 기질대로>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명시한다.

 

(프롤로그) 단지, 실제로 사람들이 쓰는 언어와 행동으로, / 희극이 이 시대를 반영하여 보여 주고자 할 때 / 선택할 만한 인물들을 골라서, / 인간의 죄가 아니라 어리석음만을 조롱할 겁니다. (P.302, 프롤로그)

 

희극이 온전한 웃음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웃음 속에는 인간과 사회를 향한 체념과 함께 날카로운 비판이 숨겨진 경우가 많다. 도시희극은 칼날을 왕과 귀족에서 도시민으로 향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구가 급증하며 돈이 최고의 가치로 급부상하는 가운데 전통적 신분구조에 대한 집착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가치관을 보이는 사람들의 양태야말로 웃음거리로 삼기에 딱 좋은 소재다.

 

<구두장이의 축일>에서 전통 귀족 링컨 백작과 신흥 시민 오틀리 경은 서로 배척하는 태도를 암암리에 드러낸다. <동쪽으로>는 한층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터치스톤은 중산층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기에 도제 골딩을 사위로 삼는다. 반면 터치스톤 부인과 맏딸 거트루드는 귀족으로의 신분상승을 최우선시한다. 귀족이라는 허명에 속아 넘어가 페트러늘 경과 결혼하면서 으스대며 부모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대목과, 뒤이어 가난한 처지로 영락하여도 어쨌든 귀족 신분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장면은 극도로 대조적이고 적나라한 비판을 보여준다. <각자 기질대로>는 누구 특정인물에 국한하기 보다는 등장인물 대다수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노우웰 노신사의 헛된 계략은 무위로 끝나고, 스티븐과 매슈는 대놓고 우스갯감이다. 보바딜 대위는 사기꾼처럼 등처먹는 존재며, 카이틀리는 똑똑한 척 굴지만 의처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변신을 거듭하는 하인 브레인웜 만이 유독 돋보인다면 과찬일까. <왈패 아가씨>는 겉모습만 보고 몰을 창녀로, 괴물로 편견을 지닌 채 바라보는 편협한 보수적 시각을 풍자한다.

 

몰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흥미롭다. 칼싸움으로 랙스톤을 단번에 제압하는 실력, 전통적 여성복장을 탈피하고 남장을 하는 자율성, 결혼에 연연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 등. 단연 특이하면서도 흥미롭고 매혹적인 인물이다.

 

() 제가 언제 결혼할 건지 말씀 드리지요. / 한량들이 채권 추심원을 두려워하지 않고, / [......] / 처녀들이 순결을 간직한 채 늙어 간다는 소식을 / 공께서 듣는 날이 오면, / 바로 그 이튿날 나도 결혼하겠어요. / 만약 그때까지도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요.

(놀랜드 공) 마치 최후의 심판 날처럼 들리는군.

() 그날 결혼하는 게 가장 좋을 거예요. / 그래야 결혼을 후회해도, 곧 쉬게 될 테니까요. (P.653, 11)

 

희극 중에도 즐거운 희극과 분명히 희극이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은 희극이 있다면, <구두장이의 축일>은 시종 유쾌하다. <왈패 아가씨><각자 기질대로>는 왔다갔다 하지만 대체로 희극풍이다. 반면 <동쪽으로>는 매우 통렬하고 진지하며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어 비록 말미에서 희극으로 전환하지만 작위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구두장이 에어의 여유롭고 너른 도량과 쾌활하고 활기찬 분위기는 작품 전체를 축일처럼 만들고 있어 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오죽하면 왕조차도 그를 즐거운 마음에서 미치광이 시장님”(P.140, 21)이라 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품 성격이 다른 것은 작가가 런던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성 여하에 좌우된다. <구두장이의 축일><왈패 아가씨>는 긍정적이고 화합지향적이다. <동쪽으로><각자 기질대로>는 속물주의와 허위의식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비난한다.

 

<왈패 아가씨>의 런던은 <구두장이의 축일>에 나오는 축제적 활기도 있고, <동쪽으로>의 탐욕과 속임수도 난무하며, <각자 기질대로>의 과장된 악당들이 여전히 활보하는 그런 세계이다. [......] 즉 도시희극 후기작 <왈패 아가씨>의 런던은 선과 악, 헌신과 속임수, 공평함과 차별이 공존하는 혼란스럽고 양가적인 세계이고, <왈패 아가씨>는 그런 런던을 따뜻하면서도 풍자적인 시각으로 구석구석 그려내고 있다. (P.684-685, 작품해설)

 

이들 작품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외설적 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상대방을 놀리고 비하하거나 가볍게 웃음을 유도하기에 성적인 표현처럼 적절한 요소도 드물 것이다. 셰익스피어 조차도 자신의 희극에서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였으니 도시희극처럼 중하층 계급이 대거 등장하는 장르에서는 아예 대놓고 남발할 정도이며, 표현수위도 한층 높다. 다만 어쨌든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노골적이지만 언어적 유희로 돌려까기하는 대사가 곳곳에 난무한다. 모든 인물이 다 그렇지는 않으며 이를 전담하는 몇몇 역할이 있다. <구두장이의 축일>은 기능공 퍼크, <동쪽으로>는 도제였던 악당 퀵실버, <동쪽으로>에서는 의처증이 있는 상인 카이틀리, <왈패 아가씨>는 랙스톤, 고스호크, 그린위트 같은 신사들이 성적인 농담과 대사를 연기한다. 자칫 눈살을 찌푸릴 수 있겠지만 당대의 윤리 관념과 오락으로서 희극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퍼크) 살이 부푸는 게 느껴진다고요? 혹시 임신하신 건 아니고요? 그런데 우리 주인님이야말로 새신랑처럼 가운 입고 반지까지 끼셨으니 아랫도리 살이 부풀어 오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마님 솜씨가 좋으시니 곧 주인님 기운을 빼놓으시겠지만 말이에요. (P.54, <구두장이의 축일> 7)

 

(퀵실버) 수레바퀴에 매여서 계속 돌아야만 하는 개라도 마님의 수레바퀴 같은 성욕에 나리처럼 비참하게 묶여 있진 않을 거예요. 개가 바퀴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건 구르는 바퀴 꼭대기가 개보다 밑으로 내려올 때뿐이듯이, 나리도 마님을 밑에 깔고 있을 때만 마님을 꼭대기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P.192, <동쪽으로> 22)

 

이 번역본 자체에는 굉장히 만족한다. 뛰어난 책 만듬새에 덧붙여 충실한 번역, 세세한 주석,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알짜배기 작품해설 등. 다만 솔직히 영국 고전 희곡의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이 두껍고 무거우며 딱딱한 책을 펼쳐 읽는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여기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처럼 불멸의 대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 더더구나 유인이 약하다. <왈패 아가씨>처럼 각 희극작품들이 낱권으로 출간되어 보다 접근성이 용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구두장이 에어의 활기와 쾌활을 드러내는 대사를 더한다.

 

(에어) 그럼 식탁 백 개를 또 만들고, 또 만들면 되지. 내 유쾌한 견습공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 구두장이들의 명예를 위해 깊이 건배하자고. 하지, 다들 신나게 마시고 있나? 퍼크, 모두 재미있게 놀고 있어? (P.129, <구두장이의 축일>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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