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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 2 ㅣ 시튼 동물기 2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튼 동물기를 읽다 보면 인간과 동물 간에 존재하는 차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의 우월감이 어떻게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회색곰 왑과 여우 빅스는 한층 그러하다.
<고독한 회색곰 왑의 일생>
왜 남들은 불행한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까? 왜 모두들 나를 못살게 굴까?......왑은 모든 적들을 잊지 않았고 그들을 미워했다. (P.36)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을 향한 미움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당장은 외롭고 약하기에 도망치거나 감내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되갚아 주리라고 누구나 마음속에 되새긴다.
동물기 중에서 상당히 긴 이야기에 속하는 이 편은 고아가 되어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동물의 고군분투 생존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눈에 그런 회색곰은 단지 사나운 맹수로서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는 외면하면서.
왑의 행동은 지극히 정당했다. 잭은 왑의 영토에 침입했고 왑을 죽이려다가 자기 목숨을 잃은 것이니까 말이다. (P.57)
왑이 무너진 것은 젊은 곰의 잔꾀에 속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튼은 동물기의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생을 마치는 연유를 언급하곤 하였는데 그것은 맞서 싸우지 않으면 결국 생존을 위협 받는 엄혹한 자연의 규칙에 따른 것이다.
<용감한 개 스냅>
반려견의 관리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었다. 내게는 귀엽고 사랑스런 가족이지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는 언제 위협적 본능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개 동물일 뿐이다. 인명을 해친 반려견과 스냅이 아마 유사한 종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스냅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품지 않고 상대를 향해 맹렬하게 뛰어드는 본성을 발휘한다. 길들이고자 하는 화자의 자기합리화와 노력이 가상할 정도다.
동물기에 따르면 과거엔 많은 개들이 늑대 사냥에 동원되고 희생된 것을 알 수 있다. 개와 늑대는 일대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니 결국 숫자와 인간의 힘을 빌어야 할 것이다. 화자는 스냅의 용맹함을 두드러지기 위해 사냥개들의 비겁함과 망설임을 은근히 조소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다. 제일 먼저 덤벼드는 개가 십중팔구 희생될 테니까. 그걸 알면서 나선다는 것은 인간에게도 흔치않은 경우다.
그렇다. 그들은 곧 덤벼들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한숨 돌리는 대로. 늑대 따윈 두렵지 않다. 암, 그렇고말고. 개들의 목소리에는 용기가 깃들여 있었다. 개들은 제일 먼저 덤벼드는 놈이 상처를 입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결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열기를 북돋기 위해 조금만 더 짖는 것뿐이다. (P.138)
스냅의 용맹은 맹목적이고 무모하다, 본성에 따른 것이겠지만. 그것이 여타 동물기와 스냅의 사례가 차별되는 까닭이다.
<어미 여우 빅스의 마지막 선택>
여우는 옛날 동물우화 등에서부터 똑똑한 동물로 나온다. 약삭빠르고 잔꾀를 부리다가 오히려 제 꾀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확실히 이 이야기를 통해 여우가 과연 영리한 동물임을 알게 된다. 자신을 추적하는 사냥개를 따돌리고 심지어는 사람마저 가뿐하게 속여 넘길 수 있는 동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전반부가 여우 부부가 타고난 능력을 신출귀몰하게 발휘하는 무용담인 반면 후반부는 여우 입장에서는 매우 비극적이다. 제아무리 잘난 동물도 인간이 마음먹고 목숨을 앗을 수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만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도 느끼게 된다.
빅스의 용기와 변함 없는 성실함은, 비록 너그럽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해도 충분히 존경할 만했다. (P.177)
어미여우 빅스가 마지막 남은 새끼를 위해 쏟는 지극한 모성애는 여우에 대해 살짝 부정적인 뉘앙스로 기술하던 작가의 감정마저 누그러뜨린 듯하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새끼를 구해낼 방법이 없는 빅스.
빅스는 새끼를 비참한 죄수로 살게 할 것이야 죽일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했을 때, 가슴속의 모성애를 누르고 마지막 남은 출구를 열어 새끼를 자유롭게 해 준 것이다. (P.178)
그의 선택은 야생동물의 수준을 능가하며 오히려 어지간한 인간들보다 깊은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가슴 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