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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동화 ㅣ 부클래식 Boo Classics 58
테오도르 슈토름 지음, 이미선 옮김 / 부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수록 작품>
1. 레겐트루데
2. 불레만의 집
3. 키프리아누스의 거울
‘동화’는 메르헨의 번역어다. 이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전형적인 동화로 간주하는 독자가 과연 있을까 의심스럽다. 동화와의 연관성을 따지자면 초자연적 요소와 권선징악적 결말 정도다. 따라서 굳이 동화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전통적 옛날이야기의 요소를 차용한 비사실적 성격이 강한 이야기 정도로. 작가가 여기서 교훈성을 강조하는 성 싶지도 않다.
<레겐트루데>
세 편 중 그나마 온건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의 요정이 오래 잠든 사이 불의 요정이 활개를 쳐 지독한 가뭄으로 고통 받는 설정은 생소하지 않다. 비의 요정을 깨워야만 가뭄을 물리칠 수 있다. 마렌은 연인 안드레스와 긴 여정을 시작한다. 도중에 마주친 정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비의 요정 레겐트루데가 잠이 든 연유다.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내게서 멀어져 갔어. 그리고 더는 아무도 오지 않았어. 그래서 난 더위와 지루함 때문에 잠이 들었던 거야. (P.43)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성적 사고가 대세가 되면서 레겐트루데는 “도깨비, 망상, 아무것도 아닌 뭣”(P.12)으로 취급받는다. 레겐트루데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부류를 작중에서는 “새로운 종교를 가진 사람”(P.12)으로 부른다.
마렌과 안드레스의 활약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레겐트루데의 전언은 절실하다.
집에 가거든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전하고, 앞으로는 나를 잊지 말라고 전해. (P.47)
<불레만의 집>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동화라면 잔혹동화에 해당된다고 할 정도. 이야기 중에 한 부분이라도 밝은 대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돈만 탐닉하고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매몰찬 인간상. 세상과의 연을 거부하고 칩거하며 혈육의 정마저 부인하는 불레만. 영원히 죽지 못하며 뒤늦게야 신의 자비를 간구하는 그의 처지는 딱하기보다 우스꽝스럽다. 그럼에도 악인에 대한 응징과 처벌이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은 작품의 비전형적 괴기성에 독자마저도 낯설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반전은 불레만 씨가 키우던 애완 고양이 두 마리의 변신에 있다. 삽시간에 커다랗게 자라나 맹수처럼 돌변해 버린 그들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들은 불레만 씨가 집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영원한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
<키프리아누스의 거울>
선한 생모와 악한 계모의 대비는 신데렐라와 장화홍련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옛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 점에서 이 동화는 전통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점 등도 그러하다.
등장인물의 전형성이 두드러진다. 천사 같은 백작부인, 유혹에 흔들렸지만 근본 심성은 선한 백작. 대비되는 악인 유형은 새 백작부인과 하거 대령이다. 이들의 성격은 외모에서부터 드러난다. 특히 새 백작부인의 외모 묘사는 대표적인 팜므 파탈에 가깝다.
키프리아누스가 보내준 거울은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그것은 현실의 선과 악을 투영할 뿐이다. 선한 사람이 선한 의도로 사용하면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선대의 백작과 백작부인의 이야기는 후대의 백작과 백작부인으로 반복된다. 선대의 계모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망치고 말았지만, 후대의 계모는 비극을 끝내고 거울을 되돌려 놓는다. 선대의 아이들 이름과 후대의 아이들 이름이 똑같게 되는 점도 상징적이다.
이 세 편의 동화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옛이야기와 동화의 상투성을 벗어던진다. 인물은 유형화된 정형성을 탈피하고 내면에 복잡한 감정과 사고의 흐름을 보여준다. 불레만 씨와 새 백작부인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스토리 전개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레겐트루데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보여주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정경 묘사는 대표적이다. 불레만 씨의 파멸을 보여주기 위해 급히 내달리지 않고 가정부 앙켄 부인의 죽음, 고물상의 아들과 어린 크리스토프의 우정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점들이 결합하여 세 편의 동화를 매우 독창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독자의 취향과 호오를 떠나서 말이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이지만, 두 세계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환상의 세계에서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데, 현실의 세계에서는 환상의 세계를 보면서도 믿지 못한다. (P.139)
작품해설에서 <불레만의 집>과 관련하여 기술한 대목이다. 인간의 이성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 의식을 초월한 불가해한 세계. 이것이 환상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이며 동화로 대변되는 옛날이야기부터 현대의 환상문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면면히 이어져오는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