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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 1 ㅣ 시튼 동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큰아이가 <시튼 동물기>를 읽고 싶다고 하여 부랴부랴 구입하였다. 두 아이가 경쟁적으로 책장을 넘기며 보고 또 보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흐뭇하며 기특하다. 근래 사다 준 책 중에서 가장 열심히 흥미진진하게 읽는 책인 듯싶다. 불현 듯 생각나서 나도 간만에-아니 처음인 듯도 하다- <시튼 동물기>를 읽는다.
나의 주제는 무심하고 적대적인 인간의 눈에 비친 한 종의 일반적인 생태가 아니라, 각 동물의 진정한 개성과 삶의 관점이다. (P.7)
시튼의 동물기가 특히 두드러진 점은 위와 같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대등한 존재이며, 각 동물이 주인공으로서 인간 중심의 독선적 사고관을 벗어나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미처 알지 못하던 동물의 삶을 피상적 관찰과 이해에서 벗어나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인식하며 깊은 공감을 품게 된다.
한 야생 동물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훨씬 더 흥미로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P.103)
<커럼포의 늑대왕 로보>
우리는 로보의 맹렬함과 영리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목장주와 사냥꾼의 유인과 추격에도 로보는 굴함이 없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당당한 역할을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수행하였던 것이다. 블랑카가 아니었다면 과연 “가엾은 영웅” 로보가 덫에 걸려들었을까? 사랑하는 이와의 갈등 또는 상실로 이성을 잃는 사례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로보의 체포와 죽음에 유달리 동정이 가는 연유다. 그는 의연하고 당당하였다.
<산토끼의 영웅 리틀워호스>
이 편에서는 본능에 충실하며 영리하고 순수한 동물과 잔인과 탐욕에 물든 인간이 진한 대비를 이룬다. 리틀워호스를 포함한 산토끼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인간의 무지와 간섭으로 자연의 균형을 깨뜨린 탓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과 멸종시킨 생물은 참으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사냥개와 산토끼 간의 목숨을 건 경주는 흡사 로마제국의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사투를 연상시킨다. 쫓기는 산토끼나 쫓는 그레이하운드나 오로지 본능과 생존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동물의 죽음을 수반하는 유희를 즐기는 인간, 여기에 오직 이익과 흥미가 있을 뿐 정당한 규칙과 올바른 원리는 없다. 결코 정직하다고 할 수 없는 미키의 일갈이 선명하다.
“공정한 경기라고! 너희들이 말하는 공정한 경기가 이런 거냐? 이 거짓말쟁이, 더러운 사기꾼, 이 치사한 겁쟁이들아!” (P.86)
<지혜로운 까마귀 실버스팟>
까마귀들은 조직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며 병사들처럼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사실 까마귀들은 웬만한 군대보다 훨씬 낫다. (P.103)
까마귀들의 사회성과 조직 규율이 이처럼 세밀하고 철저한 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이를 데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화자가 까마귀들 간에 의사전달을 위한 각종 구호 체계를 악보에 음표로 정리한 부분은 기상천외하며 압도적이다.
올빼미에게 습격당한 실버스팟의 죽음은 그의 지혜로움에 대한 평판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은 동물은 물론 인간도 모두 해당되므로.
<야성의 개 빙고>
인간과 개의 끈끈한 유대는 인간이 개를 길들이면서 시작하였다. 개는 자신의 야성을 포기하면서 동물 사촌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인간에게 생을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야성을 간직한 개는 다소간 우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어느 순간 강렬한 야성으로 개의 본성을 잃을 수 있다.
빙고는 늑대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의 야성은 사냥개 탠을 죽이고 암코요테와 짝짓기를 한 것에서 절정에 이른다. 개는 가축과 야생의 중간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아니 인간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빙고는 늑대처럼 살다가 늑대처럼 죽어 간 것이다. 독자는 알고 있다. 빙고가 인간에게 충실한 개였음을, 그가 두 번이나 화자의 목숨을 구해 주었음을.
인간은 늑대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무차별 살육하였다. 언젠가 늑대 시체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옛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오늘날 늑대는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화자 역시 늑대와 코요테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에게 있어 그들은 단지 생계 수단으로 간주될 뿐 하등의 감정적 연민을 품지 않는다.
덫에 걸린 늑대로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아! 내가 여태껏 얼마나 몹쓸 짓을 해 온 걸까! 이제 그 죗값을 치르는가 싶었다. (P.159)
역지사지. 화자가 늑대와 같은 곤경에 처하고 보니 동물의 심정에 공감과 연민을 알게 된다. 시튼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물을 단순한 사물과 객체로서 바라보지 말고 심장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의 친척으로 봐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