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궈한스 야코프 크리스토프 폰 그리멜스하우젠 지음, 박신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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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 유독 긴 이 작품은 악한소설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30년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시골에서 양치기로 살아가던 소년이 전쟁에 휘말려 온갖 체험을 하면서 단순 무지한 초심에서 점차 타락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악한소설답게 주인공인 어린 소년은 처음에 순수하다. 선악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순수하며 단순하고 무지하여 짐플리치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다소 비사실적인 설정인데 백지와도 같은 주인공의 정신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그럼으로써 벌어지게 되는 우스꽝스러움을 부각시키고자 함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작가는 소년은 단순 무지함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는 이토록 완벽하게 무지했기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 자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번 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당시에 누렸던, , 고상한 인생이여! (1, P.6)

 

평화롭던 주인공의 일생을 굴곡지게 만든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파괴적이며, 군인들은 잔인하다. 특히 무력하고 자신들보다 지위가 낮다고 간주되던 농민들에게 더욱 행패가 극심하다. 전쟁의 잔혹함과 군인들에 대한 반감은 제1권의 군인들의 농가 약탈, 농민 고문 및 겁탈 장면, 군인들이 연회에서 폭식과 폭음을 일삼는 장면과 제2권의 전쟁의 참상 장면에 대한 주인공의 시각에 명확히 드러난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제한적 상념에 그치지 않고 계급 갈등적 인식으로 확대되면서 소위 나무의 알레고리(1, P.32~37)에서 사회적 의미마저 얻게 된다.

 

세속에 물든 짐플리치우스는 은둔자와 함께 한 정결의 생활을 떨치고 타락과 회개를 되풀이 한다. 악행의 과정에서 주인공은 믿기 힘든 행운을 잇달아 만나게 되고 이는 주인공의 타락을 부채질할 뿐이며,

회개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주인공의 반성과 타락의 반복은 악한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라고 하겠다.

 

어떤 종교를 내가 믿어야 합니까? 만약 다른 두 파를 비방하거나, 다른 파는 틀렸다고 꾸짖는 어느 한 종파에게 나의 영적 구원을 맡긴다면 이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3, P.117)

 

사회의 엄청난 부조리를 체험한 주인공에게 기존의 가치관과 종교관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믿음 체계가 다르다고 서로가 상대방을 죽고 죽이는 종교전쟁. 짐플리치우스는 특정 종교에 귀의하길 거부한다. 그럼에도 짐플리치우스가 완전한 악의 수렁에 빠지지 않은 사유는 마음 한 가닥 절대 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아서이다. 이것이 산적이 된 올리비에라와의 차이다. 평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올리비에라의 주장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그는 마키아벨리즘을 언급하며 계급지배가 고착화된 사회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며 타락한 교회에 날선 비판을 가한다.

 

늘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이 도둑으로 교수형에 처해지는 사실을 보게나. 자네는 그런 일이 법에 따라 처리되었다고 생각할 것이야. 대체 자네는 상류 계급이 나라를 힘들게 했다고 재판을 통해 벌 받는 것을 어디서 본 적이나 있는가? (4, P.153)

 

너는 사람들이 교회를 악덕으로 더럽힐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허영과 쓸데없는 것들로 교회당을 채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4, P.158)

 

짐플리치우스는 세속적 타락된 삶을 살지만 결코 매몰되지 않고 한구석에 속세에 대한 회의적 마음을 품는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 순수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를 외견상 바보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주인공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보임을.

 

내면에 바보스러움이 없는 인간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다. (3, P.112)

 

5권에서 무멜 호수의 후작이 나타나 주인공을 물의 왕에게 데리고 가는 장면은 매우 환상적정이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악한소설로서는 보기 드문 설정에 해당한다. 이어서 물의 왕과 주인공 간에 이루어지는 신앙에 대한 대화는 악한소설의 특징이면서 매우 진지한 신앙 대화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특히 마지막 장은 온전히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짐플리치우스의 심경을 기술하며, “세상이여 안녕이라는 문구를 되풀이하여 문장을 구성함으로써 독특한 결미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전형적 악한소설과는 다소간 차이가 보이는데, 주인공의 악덕과 타락이 그렇게 심하지 않음이 두드러진다. 전자는 주인공이 완벽하게 타락하여 온갖 사회악을 저지르는데 여기서는 개인적 타락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인공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겪는 사회적 모순과 개인적 역경을 헤쳐 나가는 장면에 초점을 둠으로써 짐플리치우스의 내면적 순수함이 부각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단순했고, 깨끗했고, 솔직하고, 성실하고, 진실했고, 순종적이었으며, 잘 받아들였고, 절제했고, 순진했고, 수줍어했고, 경건하고, 명상적이었다. 곧바로 나는 악해지고, 비뚤어지고, 거짓말하고, 아첨떨고, 불안해하고, 매 순간 타락했다. 이 모든 악덕을 나는 스승도 없이 배웠던 것이다. (5, P.191~192)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완역을 한 게 아니라 원본을 축약한 레크람판을 다시 축약(80%) 번역했다. 원본 대비 분량을 알 수 없는 축약본이 아쉽지만, 한편으론 이렇게나마 대략이라도 실제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그나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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