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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겉표지의 뉴베리 아너 상이라는 은색 라벨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태여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탁월한 수준의 동화임을 무언중에 웅변하는 듯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글쎄, 명불허전이라고 할까. 대단한 돼지라고 써진 거미줄 아래서 순진하게 서있는 아기돼지의 이미지는 전혀 낯설지 않아 분명 어디선가 본 듯이 친숙하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표현은 윌버에게 모욕적이다. 윌버는 배부름과 함께 따뜻한 우정을 갈구한다. 마음과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외로움에 식욕조차 잃을 정도다. 동물 사이에 우정이 가능할까? 더구나 돼지와 거미라는 전혀 조화롭지 못하고 상관없는 관계에 있어서. 작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여준다.
“나한테는 네가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고, 나한테는 네가 놀라워.” (P.124)
전혀 다르기에 오히려 더욱 가능한 법이다. 아니 그 이상이니, 거미 친구는 윌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였고 한계를 뛰어넘었으니. 덕분에 윌버도 평범한 돼지에서 대단한 돼지로, 근사하고 겸허한 돼지로 명실상부하게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쥐 템플턴조차도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의 우정을 윌버에게 발휘한다.
윌버와 거미 친구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초반부에 두드러졌던 윌버와 펀의 관계 밀도는 옅어진다. 동물 간의 우정과 동물과 인간의 우정은 동등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동물이 인간 의존성을 탈피하고 홀로서야 비로소 동물로서의 자아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속뜻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 입장에서도 동물 애호의 과도한 몰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 것인지도. 후반부에 펀은 더 이상 윌버를 찾아오지 않으며, 품평회에서 만난 헨리와 즐겁게 놀았던 생각에 푹 빠져있다.
윌버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난 죽고 싶지 않아.” (P.87)
윌버는 시한부 목숨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도축되어 햄으로 만들어질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가련한 존재. 인간은 닭, 돼지, 양, 소 등의 육식을 애호하여 집단 사육하고 도축한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고기 굽는 냄새에 코가 킁킁거리고 침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면서 자기합리화를 한다. 역지사지라고 우리들이 그런 처지에 놓여 있고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괴롭고 비참한 심정일까. 문득 영화 <혹성탈출>이 연상된다. 인간이 유인원에게 동물처럼 부림당하는 장면. 작가는 인간의 야만성을 슬쩍 꼬집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거미줄의 문구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단순함은 샬롯의 침착한 이성과 매우 대조적이다. 샬롯은 자신의 시도가 분명히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윌버의 목숨을 구하려면 주커만을 속이면 돼. 내가 벌레를 속일 수 있으면, 분명히 사람도 속일 수 있어. 사람들은 벌레만큼 영리하지 않으니까. (P.93)
샬롯은 혼신의 노력으로 윌버를 구해주었고, 윌버는 샬롯의 필생의 역작을 지켜내었다. 생을 달리하고 세대가 달라졌지만 두 동물 간의 우정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매우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