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선비의 의주 금강산 기행 - '금강일기 부 서유록(金岡日記附西遊錄)' 역주
작자 미상, 조용호 옮김 / 삼우반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1840년대 조선 후기의 한 선비가 오늘날의 의주와 금강산 일대를 거닐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처음 가본 알라딘 중고서점을 둘러보다 우연히 구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일종의 기연이다. 개인적으로 기행문 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풍물과 인정을 먼저 겪고 후기지수에게 소개하는 글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과 대리체험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더구나 요새는 네이버와 다음의 지도 서비스, 해외의 경우 구글맵을 통해 여정을 시각적으로 따라갈 수 있어 보다 사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강씨로 추정되는 선비가 답사한 곳은 공교롭게도 오늘날 모두 북한 영역이므로 가볼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과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의주로 가는 길은 당대의 굴곡진 역사 순례의 여정이기도 하다. 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에 이르면서 풍경의 기묘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작가의 의식은 왜란과 호란의 수치를 상기한다. 임금이 국토의 북쪽 끝자리에 몰려나 궁색하게 지내게 된 사실, 여진족이 무인지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이 사상 초유로 항복의 예를 거행하게 된 점이 당대 지식인에게는 뼈저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더욱이 호란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여파와 굴종은 당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저자의 심경은 곳곳에 읊은 한시에 잘 드러난다. 기실 이 기행문은 산문 반, 운문 반이라 칭할 정도로 시의 비중이 제법 크다. 그럴듯한 시 한 수를 지을 수 있어야 인정받는 풍조를 새삼 알게 된다.

 

평양의 명소와 기생에 대한 대목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장면은 의주에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의주를 출발하여 압록강을 도강하고 봉황성을 지나 책문에 다다르는데 이곳이 바로 양국의 실질적 국경인 것처럼 기록되어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책문까지 의주부윤의 공권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일종의 중립지역인지 궁금하다.

 

의주 여행이 홀로 이루어져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엿보이고 서둘러 여정을 밟는데 비해 금강산 기행은 벗들과 함께 해서인지 보다 느긋하고 유람에 충분한 시간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금강산 기행의 최고봉은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재미있으리라. 저자는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의 순으로 돌아본 후 귀로에 접어든다. 주마간산 식으로 훑는 게 아니라 장안사와 표훈사를 거점으로 삼아 명승지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어 일생일대의 금강산 기행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욕을 알 수 있다.

 

만폭동, 비로봉, 구룡연, 총석정 등 빼어난 명소의 경우 저자 본인과 동행한 벗들의 시가 차례가 실려 있다. 이로써 일행의 흥분된 감회와 고양된 정서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다만 저자가 제아무리 영탄사를 늘어놓은 다 한들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훗날 기회가 될 때 금강산을 방문한 후 이 책을 다시 둘러보면 저자의 감흥에 동조하려나. 오히려 저자가 가는 길에 영평팔경을 찾아보는데 오늘날의 포천 지역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영평팔경이나마 목도하고 싶다.

 

이 책의 가치는 내용 자체에 역자와 출판사의 노력이 더해 빛을 발한다. 옮긴이는 단순히 번역에 그치지 않고 해제를 통해 내용 소개, 저자 추정 및 작품의 의의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어 독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기행문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인데 본문 곳곳의 주석과 사진 및 지도를 삽입하여 저자와 독자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고 친절을 아끼지 않는다. 한문에 지식이 있는 독자를 위해 말미에는 기행문의 원문조차도 수록하고 있어 완성도를 높이고 있음은 상찬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