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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ㅣ 세계의 클래식 11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조호근 옮김 / 가지않은길 / 2013년 1월
평점 :
시간여행은 매력적인 제재다. 지금이야 다소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19세기말이라면 획기적이었으리라. 훗날 잘 알려진 영화 <백투더 퓨처>조차도 관객에게 스릴과 함께 흥미진진함을 가져다주었으니.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친다면 한가득 실망만 갖게 된다. 웰스는 SF소설을 개척한 것이지 액션 어드벤처 작품을 쓴 것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웰스의 다른 작품들, 즉 <우주전쟁>, <투명인간> 또는 <모로 박사의 섬>을 보면 작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류 문명의 낙관적 진보관에 매우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간성과 문명의 퇴보를 암시한다. 서기 802701년 지구의 미래상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어렴풋이 닮은 지상의 연약하고 순진한 존재. 어둠과 지하에서 기술과 지능이 우월한 기분 나쁜 그림자 같은 존재. 이 두 유형이 인류의 미래라고 하면 어떤 이들이 기꺼이 반기겠는가만, 웰스의 설정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주도면밀하다. 또 매우 냉소적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궁극적 지향점은 완전한 평화와 행복의 구현이다. 모든 사람이 노동의 굴레에서 가난과 질병의 함정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상천국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영원한 발전과 지복(至福)?
내가 꿈꿔 온 인류의 위대한 승리는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은 윤리 교육과 보편적 협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었던 거야.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완벽한 과학으로 무장하고, 현대 산업 조직의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 낸 진정한 귀족 정치였단 말이네. 그 승리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자연과 동료 인간에 대한 승리였던 것이지. (P.106)
웰스는 당대 심화되어 가던 자본과 노동의 분리, 빈부 격차로 인한 계급화 현상을 여기에 대입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지상과 지하로 삶의 영역이 재편된다. 지상의 귀족은 엘로이, 지하의 노동자는 몰록이라는 인류의 미래 종족으로 퇴화된 것이다. 그리고 힘의 우위는 역전되었다.
엘로이들은 그저 살찐 소일 뿐이고, 개미와 같은 몰록은 그들을 보호하고 잡아먹을 뿐인데, 아마 번식도 시키겠지! (P.133)
이 소설은 불편하다. 독자가 기분 나쁨과 불편함을 느끼지만, 더 큰 긴장과 불안과 호기심을 품은 채 자신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낯설고 기묘한, 절대 좋은 경험은 아닌.
나는 인류의 지성이라는 꿈이 얼마나 단명했는지를 생각하며 애도했다네. 인류의 지성은 자살한 거야. 인류는 지성을 사용해 안락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고, 안전과 지속성을 표어로 내세운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말았네. 그리하여 마침내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만 거지. (P.166)
웰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끔찍한 미래사회를 탈출한 주인공. 상상할 수 없는 머나먼 미래로 다시금 시간여행을 계속하는데. 이미 인류라는 종의 자취는 사라지고 지구 자체마저 쇠퇴와 소멸을 기다리는 암울한 광경. 작가는 굳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타임머신’하면 흔히들 미지의 미래 탐험과 역사적 순간의 참여를 떠올린다. 그 바탕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이른바 장밋빛 전망에 근거한다. 줄기세포와 게놈 프로젝트, 그리고 로봇의 발달은 어쨌든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믿음. 웰스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이 정말로 종국적으로 인류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타임머신>의 내용은 순전히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치부해도 좋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