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덕 - 르네상스 고전드라마 총서 3
토마스 노턴 지음, 신영수 옮김 / 학문사(학문출판주식회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영국 최초의 고전 희곡이다. 한마디로 훗날 셰익스피어로 이어지는 영국 희곡 장르의 선구자격인 것이다. 제재는 리어왕과 관련 있으며, 극 전개와 분위기도 <리어왕>을 연상시킨다. 물론 형식과 구성에 있어 고답적이고 어설프지만 이것이 묘한 고졸(古拙)한 맛을 자아낸다.

 

세네카 풍이라고 하는데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각 막의 서두에 딸린 무언극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장황하고 현학적인 대사와 해설과 암시의 기능을 하는 코러스의 등장은 그리스 희곡의 전통을 계승했음을 알게 해준다.

 

왕국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왕위계승권이다. 일개 국가를 다스리는 절대권을 누가 차지하는 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냉전과 열전이 반복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성립된 전통이 장자우선주의인데 이 원칙에 반하려는 왕의 행위는 무수한 혼란과 살생을 몰고 오게 마련이었다. <리어왕>의 왕자가 아닌 공주라는 점만 제외하면 비슷한 배경이다.

 

고보덕은 리어왕의 후손인데 두 아들 모두에게 왕국을 분할 상속하고 싶어 한다. 왕의 의사를 확인하는 순간 대신들의 입장은 갈라진다. 찬성파(아로스터스), 반대파(유불러스), 신중파(핀랜더). 유불러스의 발언을 통해 분열된 통치가 비극을 유발할 것이라는 암시가 드리워진다.

 

2막은 영토를 분할 받은 두 형제, 페렉스와 포렉스가 각각 식객들의 아첨과 모함에 따라 대신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전쟁 준비에 돌입함을 보여주며, 3막은 동생이 형을 살해하고 영토를 차지했음을 전령이 고보덕 왕에게 알려준다. 이로써 왕의 빛나는 장밋빛 꿈은 일거에 무너지고 만다. 코러스는 아들에 대한 눈먼 사랑으로 비극을 유발시킨 왕의 한심함을 질타한다.

 

4막에서 극은 크게 꿈틀거리는데, 형제간의 살인이 모자간의 살인으로 승계 확대되고 만다. 이쯤에서 왕비 비데나와 아들들의 관계를 되살펴볼 필요가 있다. 1막에서 비데나는 왕이 분할 상속 의사를 품고 있다며 페렉스에게 왕과 차남을 경계하고 비난하는 대사를 한다. 비데나 차남 포렉스의 생모이지만 그의 사랑은 장남에게 편중되어 차남을 적대시할 정도다. 그리고 제4막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 분개하여 비데나는 포렉스를 살인자라고 칭하고 아들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복수를 다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두 아들 간의 반목의 근원은 사실상 왕비가 잉태한 것임을 알게 된다.

 

난 네가 내 아들임을 거부한다!

살인자, 난 너를 버리마;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

너는 그녀 자신보다도 더 애절하게 그를 사랑한

페렉스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르지?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으면서, 네게 복수를 않겠느냐? (P.74)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5막 초반부 귀족들 간의 대화에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왕실의 패륜에 분노하여 왕과 왕비를 살해했음이 드러난다. 이것은 고대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왕은 백성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지닌 존재인데, 백성이 왕을 살해했다는 것은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에 대한 존경과 복종 체계가 무너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강경 대응하여 즉각 진압하고자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왕에게 충언을 했던 유불러스가 장문의 발언을 통해 이를 강력히 주장한다.

 

권력의 진공은 또 다른 권력욕을 부추긴다. 더 강한 자가 무력으로 권좌를 차지하려는 욕망은 필연적이다, 퍼거스 공작처럼. 다른 귀족들은 무력이 아니라 합법성과 정당성에 근거한 왕위 계승권자를 선호한다. 아로스터스와 유불러스의 연설은 이 역할을 담당하게 할 의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매우 생뚱맞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당대 현실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을 통해 이 희곡의 정치적 함의를 밝히고, 그리스 비극과의 비교, 타 복수극과의 비교를 통해 의의와 한계를 지적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미혼과 불명확한 후계 구도가 정치적 불안정과 국가 분열을 초래하여 외세의 간섭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감안한다면 제5막에서 권력의 중심을 왕에서 의회로 옮기고자 하는 의회주의 기치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 희곡을 실제 무대 상연을 통해 관람하게 된다면 어떠할까? 틀림없이 매우 지루하여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 틀림없다. 장황하기 그지없는 대사는 배우를 곤혹케 할 것이며, 듣는 청중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대사와 극 전개에 요령부득으로 난감해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역사적 의의를 떠나 예술적 가치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연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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