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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투명인간에 대한 세인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갈망과 공포. 갈망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획득에서 비롯한다. 대개는 비도덕적 욕구로 드러나지만, 예컨대 여탕 훔쳐보기 등. 공포는 근원적이다. 사람은 원래 미지의 것에 불안과 두려움을 품게 마련이다. 내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가 분명 눈앞에 실존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면 얼마나 짜증나고 답답하고 무섭겠는가.
투명인간 그리핀을 향한 독자의 감정도 복합적이다. 그의 딱한 처지에 동정심이 생긴다. 당초 그는 순전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연구를 시작하다 투명인간이 되고 말았다. 특이한 체질은 연구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을 터. 막상 투명인간이 되고 보니 사람들 앞에 떳떳이 드러낼 수 없어 숨어 다녀야 하며, 옷도 입지 못하고 먹을 때도 조심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만만치 않다.
나는 인간이 욕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던 거야. 물론 투명성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지. 하지만 그것들은 얻는 순간 그것들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없게 되었어......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베일에 싸인 불가사의한 존재, 인간의 몸뚱이, 나 자신을 붕대로 감싸 가둔 괴물이 되고 만 거야! (P.194)
반면 동정심보다 더한 적개심도 어쩔 수 없다. 그를 악화일로의 길로 몰고 간 것은 결국 그의 인성 탓이 크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선인이 아니다. 투명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도와 사악한 욕망, 투명인간로서 보여주는 폭력과 절도 행각 등. 투명인간 자체는 본래 선악의 시비 대상이 아니지만 그리핀으로 인해 투명인간은 보다 더 악인과 결부되고 말았다.
이제 포트 버독은 내 지배 하에 있어. 공포 정치! 오늘은 투명인간의 새로운 시대, 신기원, 첫 회의 첫날이야. 나는 투명인간 1세다. 통치는 우선 쉬운 것부터 처리할 것이다. 첫날은 본보기로 한 놈만 처형할 거야. (P.215)
그리핀의 말마따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것이지만 범죄는 아니”(P.64)다. 사람들은 범상한 것에는 무관심하다. 반면 이상한 것에는 주의와 감각을 기울인다. 호기심 외에 경계심이 작용한다. 이상한 것이 나의 안전에 영향이 없을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경계를 풀게 된다. 그리핀의 언행은 불행히도 타인의 심리적 무장과 방어본능을 강화시켰다. 보이지 않는 우위를 지배욕과 폭력으로 전환시킴에 따라 그는 친구였던 켐프 박사의 도움마저 잃게 되고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애석하지만 자초한 결과다.
일개 사이코 과학자의 일탈이 초래한 비참한 결말을 보여주기 위한 게 작가의 의도는 아니다. 그가 누구였던가. 그가 창작해 낸 일련의 공상과학소설은 당대 수준에서 최신의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인류 문명의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리핀도 본인이 깨우친 과학기술의 장밋빛 전망에 눈이 멀어 그것에 수반되는 도덕적 문제와 덫을 등한시하였다. 마치 모로 박사처럼 말이다.
엉뚱하지만 신독(愼獨)이란 자구가 떠오른다. 일찍이 성현은 인간의 약점을 간파하여 홀로 있을 때의 몸가짐을 단속하였다. 그리핀이 이 말씀을 알리가 없겠지만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면 그의 말로가 이처럼 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상호 간의 두려움을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이질적 존재에 대한 동질적 집단의 배척 등으로 논의를 확대한다. 개인적으로는 과대해석으로 생각하지만 후대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일정한 타당성도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투명인간이 그다지 좋은 방책은 아닌 성 싶다. 일단 너무 불편하고 게다가 몸 자체에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게 탐탁지 않다. 해리 포터의 마법 망토가 효과성과 편이성 면에서 한층 뛰어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