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 40년 - 4판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음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날로 차가워진다. 음주운전 처벌은 계속 강화되며, 소위 주폭(酒暴) 단속도 엄격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음주 후 사고를 치더라도 관대히 용서 받았다. 술 먹고 그런 건데 뭐. 아니면 사람은 좋은데 술이 웬수지 하면서 말이다. 수주 변영로의 명정기(酩酊記)도 요새라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글들이다.

 

참으로 대담하면서 일견 낯 두꺼운 글들이다. 명정(酩酊)이란 한마디로 곧 술주정이다. 글쓴이가 술 마신 내력의 자술서인 동시에 대취하여 술주정을 부린 광태를 기술한 글이다. 이 수필집이 출간된 연도가 1953년이며, 대다수의 수록글들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물며 글쓴이가 당대의 저명한 시인이라면 한구석의 조금이나마 탐탁지 않은 심정마저 스러진다.

 

아무나 명정기를 쓰지는 못한다. 적어도 글쓴이처럼 5, 6세부터 시작한 음주 내력에 술을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그 이상의 주량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담대한 인물이라도 자신의 술주정을 사회에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치부인 동시에 대체적으로 도덕적으로도 떳떳치 못한 법이다. 그럼에도 명정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글쓴이라면 겉과 속이 한결같고 가식 없는 인품임을 알게 해준다. 스스로 도덕군자인양 위선을 부리지 않는다.

 

이른바 혼술이 아닌 바에야 술친구가 있을 것이며 술자리 전후로 맞닥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대의 저명한 문인, 학자들의 드러나지 않은 일화를 알게 되는 재미도 남다르다. 겨울밤 길바닥에 뻗어있던 수주의 목숨을 홍난파가 구해 준 일. 시인 황석우가 접시를 던져 뺨에 큰 상처가 났던 사건. 위당 정인보를 위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술동무를 해드린 일. 오상순, 염상섭 등과 통음한 후 나체로 소를 타고 시내로 향하던 황당한 사건은 물론 염상섭과 대취한 후 취한들과 3 1의 난투를 벌인 일대 사건 등 무수한 사건과 사고.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낯부끄러운 일조차도 그는 솔직담백하다.

 

술 먹는 사람만이 술의 해와 폐를 참으로 가슴 쓰리게 느끼고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술 깨인 뒤에 치르고 겪는 그 고통 그 비참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 때때로 자살까지도 염에 두어 본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P.84~85)

 

술 먹는 사람에게는 이런 종류의 기록이 종종 유지(有之)하나 지내 보면 턱없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도덕적 추태감을 골수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P.100)

 

때로는 대취하면 일경(日警)의 뺨마저 후려갈기던 당당한 기세의 그였지만, 음주의 폐해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한다. 애주가치고 금주, 애연가치고 금연을 생각해보지 않고 실행해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이에 그는 금주패를 몸에 차고 무려 수년간이나 금주를 결행하였으며, 수년 지나서 재차 금주를 결의하고 일간지에 금주 단행론을 공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여기서 초지일관하였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지만, 사기 결혼(?)으로 재혼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 술 취한 인물을 바라보는 심경은 복합적이다.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롭다. 이 사람이 술 마시면 이렇게 변하는구나. 새삼 신기하다. 게다가 술주정이 그다지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면 구경의 재미도 쏠쏠하다. 일견 부럽기조차 하다. 명정에 이를 정도의 정신적 여유와 애주에 이르는 몰입, 그것을 담아낼 주량과 체력. 속물들은 자칫 속내가 드러날까 봐 마시는 둥 마는 둥 술잔을 입에 댈 뿐이다.

 

수주의 명정기를 읽다 보면 그래도 그는 참으로 깨끗한 인물임을 알게 해준다. 가난한 시인이자 영문학자로서 시속과 세태에 물들거나 굴하지 않고 의연함을 견지하였다. 그의 연보를 통해 독립선언서를 일찍이 영어로 번역하였거나 해방 후 영시집을 발표하고 영문 일간지를 발간하는 등 당대 현실에서 위민과 애국의 길을 나아갔다. 이는 명정기의 마지막 편 나의 음주벽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아는 이는 아다시피 나는 호주를 지나 탐주를 하였고 그간 금주 연한 몇 해를 빼어 놓고는 무일불취(無日不醉)하였으나 의롭지 않고 떳떳치 않은 술은 되도록 사퇴했다......(중략)......나는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여 본 적이 없음을 50이 지난 오늘날 자허(自許) 삼아 말하여 두는 동시에 어느 권세나 금력 앞에 저두평신(低頭平身)하여 본 적조차 없다. (P.141~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