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악이 반달문고 14
김나무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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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나온 동화임에도 시대적 배경은 해방 무렵이다. 지역적 배경은 머나먼 남녘바다 외딴 섬마을. 향토적 색채를 물씬 드러내기 위해 작중 인물의 대사는 죄다 걸쭉한 남도 사투리다. 문화적 배경은 현대문명과 전통 민속의 갈등이고. 이런 동화를 과연 아이들이 읽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어른들의 우려와는 무관하게 춘악이라는 또래의 인물은 좌충우돌하는 아이들의 코드와 제법 맞아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거기에는 타산적 이해관계와 사리사욕에 대한 고려 없이 사람에 대한 순전한 이해와 공감이 우선하므로. 생소한 사투리 구사는 오히려 흥미와 재미를 고취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이일지라도 현실의 파고는 비켜주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엄정한 실제는 거짓된 아름다움보다도 더 아름답다. 춘악이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하다. 아버지의 이른 병사로 급격히 기운 가세는 춘악이로 하여금 학교조차도 못 다니게 한 정도다. 그럼에도 춘악이는 씩씩하고 올곧다. 어찌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지만 좌절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 한 편의 동화 속에 참으로 많은 것을 집약하고 있다. 우선 일제 치하의 친일세력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현대화라는 명목 하에 우리네의 소중한 전통이 막무가내로 무시당하고 스러져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첩을 얻어 본처를 방치하는 남편과 괴로워하는 아이를 통해 비뚤어진 가정문화를, 문둥이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통한 비인간적 처사도.

 

세상사의 오묘한 조화를 아직 어린 춘악이는 알 수 없다. 선한 이가 괴로움을 당하고 선하지 못한 이가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실을.

 

저 아지매는 와 저리 무섭은 문둥병에 걸려서 아프고 가난해졌을꼬? 창해 즈그는 착하지도 않은데 억수로 부자가 되고......참 이상타. 착한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복을 준다꼬 선생님이 그랬는데...... (P.59~60)

 

이 작품이 활기와 밝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큰 공로는 물론 춘악이에게 있다. 그는 할매 나무를 베어버린 창해 아버지를 당당히 비판하고 창해를 구하기 위해 얼음물로 뛰어들 용기를 지녔다. 반면 창해의 사고가 자신이 챙겨주지 않은 탓이라는 순수한 양심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전형적인 동화는 항상 해피엔딩이다. 이 책도 여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춘악이는 물론 마을사람들과 갈등관계에 있던 창해 아버지는 창해의 사고를 통해 개과천선을 하고 춘악이가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물질적 도움을 제공한다. 천편일률적이지만 아이에게 비극적 결과를 내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춘악이의 인물 설정과 함께 이 작품을 특징짓는 점은 무엇보다도 전통 민간신앙의 요소가 풍성하다는데 있다. 작품 전체를 통해 학골 마을의 상징인 당산 할배나무와 할매나무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증폭되던 작중 갈등은 창해 아버지가 할매나무를 베어버리고 팔아버린 데서 폭발하며, 창해의 사고는 할매 나무의 원한으로 간주된다. 섣달그믐에 당산 사당에 초롱을 걸고 소원을 비는 대목이라든지 작중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굿판을 벌이는 모습 등이 모두 이제는 찾기 힘든 전통 민속의 장면이다.

 

흥미로운 독자적 인물 설정과 민간 전통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점이 이 동화가 여타 작품들과 구분되는 뛰어난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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