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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아래에서 ㅣ 산하세계어린이 26
마리타 콘론 맥케너 지음, 이명연 옮김 / 산하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동문학 또는 청소년문학의 주인공은 대체로 집안형편이 가난하다. 원래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부유하였지만 사정이 생겨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역경을 무릅쓰고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작품의 배경인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는 1840년대에 대기근을 겪는다. 감자가 주식인 나라에서 감자가 죄다 썩어나가는 형편이 되니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당시 인구 8백만 명 중 1백만 명이 사망하고, 1백만 명이 해외 이주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기근이 가라앉은 이후로도 인구는 계속 유출하여 현재 아일랜드 인구가 4백만 명 대라고 하니 대기근의 여파를 짐작할 수 있다.
골짜기 건너에서는 남자들이 욕을 해 대고 있었고, 여자들은 하느님께 살려 달라며 기도를 했다. 밭마다 감자가 썩어서 땅에 뒹굴었다. 감자는 모든 사람들의 양식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이제 곧 기근이 닥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P.9)
끔찍한 사건을 소재로 하다 보니 내용은 물론, 작품의 어조와 분위기가 밝을 수 없다. 점점 줄어드는 식량, 식량을 구하러 떠난 아버지, 영양부족으로 몸이 허약해져 숨을 거두는 막내 아기, 소식 없는 아버지를 찾으러 나선 어머니,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말로만 듣던 멀리 떨어진 친척을 찾아 길을 떠나는 어린 세 남매.
기아와 잇따른 열병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가정도, 이웃도, 사회도. 작가의 시선은 감정에 들뜨지 않는다. 아동문학임을 감안하여 적나라한 묘사는 자제하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사회의 참상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이었다. 뺨은 움푹 꺼지고 눈은 퀭한데다, 눈 밑에는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비쩍마른 입술에 몇몇 사람들은 황달기까지 있었다. 굶주림과 질병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유령 같았다.......에일리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지옥이라고. (P.94)
위는 급식소에서 맞닥뜨린 사람들을 본 에일리의 느낌이다. 작가의 시선은 때로 비판적이다. 모두가 굶주린다면 모르겠지만 소작농을 버려둔 채 본국으로 떠나버리는 영국인 지주들, 그리고 와중에도 영국 본토로 농작물을 싣고 가는 장면 등은 유독 날카롭다.
우린 아일랜드 사람들이오. 그런데 우리의 식량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소. 아일랜드 땅에서 기른 곡식으로 영국인들의 배를 채우다니. 그 동안 우리 동포들은 배를 곯며 굶어 죽어가고 있단 말이오. (P.122)
허기를 근근이 버텨가며 낯선 길을 여러 날에 걸쳐, 더군다나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이 행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흉흉한 인심, 아사의 공포, 치안 부재의 불안을 무릅쓰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자체가 하나의 성장소설의 전형이다. 사람은 고난과 실패를 통해 깨닫고 배우며 자란다. 아이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길을 떠날 당시 철부지에 불과하였던 두 동생은 어느덧 자기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사리분별을 갖추고 세상에 눈을 떴다. 때 이른 철듦에 씁쓸하지만 어차피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슴 한 구석이 아파 왔다. 심장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마이클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마이클은 느릿느릿 걸음을 늦추며 생각했다. 그의 앞에 길고도 참담한 여정이 남아 있었다. 신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그는 너무 잔인했다. (P.146~147)
무심하고 잔인한 신, 그럼에도 삶을 위해 맹목적이지만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별 볼일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당시엔 너무 하찮고 구질구질해 보이기조차 십상이다. 일상의 안온과 평화를 상실한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들은 아쉽고 안타까워한다. 수구초심 하는 여우처럼 낯선 곳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마냥 그리워한다.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애타는 심정으로. 이렇듯 각성은 상실을 전제로 한다. 마이클의 자각처럼.
에일리는 이제야 스르르 긴장이 풀렸다. 나노와 레나 할머니가 계신 집이라면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일리는 자기들의 마음이 언제나 고향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가 있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문 밖에는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돌들이 놓여 있고, 아름다운 풀꽃들이 가득한 작은 뜰이 있는 집. 고향의 들판에는 지금도 산사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P.175~176)
우여곡절 끝에 난관을 헤치고 세 아이들은 이모할머니 댁에 무사히 도착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기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고난에서 행복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마지막 대목에서 에일리는 두고 온 고향을 회상한다. 이제는 안심이라는 듯이.
하지만 독자들은 잊지 못한다. 아이들의 성공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임에 불과함을. 그들처럼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많은 어른과 아이들의 존재가 있다. 게다가 아이들의 부모도 행적이 묘연하지 않은가. 작가는 부러 회피한다. 밝은 결말을 방해하지 않고 싶기도 하며, 이 밝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구름 사이에 살짝 드러난 찰나에 불과한지 알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대단히 이질적인 아동문학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