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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여자아이 -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레너드 삭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월
평점 :
남자아이를 둘씩이나 키우는 처지이고 보니 육아가 힘겹게 여겨지는 사례가 자주 있다. 게다가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이와 애엄마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빈도가 증가하여 어찌 처신해야 할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아내의 의견과 입장을 십분 인정하지만 한창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녀석을 책상머리에 잡아놓고 애엄마가 원하는 학습 수준을 강요하는 장면도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가끔씩 오버랩 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상기하면 때로는 입맛이 씁쓸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이 책을 펼쳐든다.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간결 명료하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생물학적인 성차가 존재하므로 육아 및 교육 과정에서 이 점을 고려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일견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주장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네 교육방식과 프로그램이 성적으로 무차별적이고 획일적임을 깨닫게 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남녀합반이 당연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대세는 남녀공학으로 바뀌는 추세가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상대방 성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과 존중을 가져오며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은 과학적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일정 시기까지는 동성들로만 이루어진 교육체계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시대의 추이에 역행하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임상의학자인 저자는 현재의 남녀공학 교육방식은 남녀평등론자들의 정치적 주장이 반영된 결과일 뿐 교육학적인 진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음을 밝힌다. 수많은 상담사례와 연구결과를 통해 이것이 남녀의 자연스런 성장 상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성별 차이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부각하고 강화한다는 것이다.
어린 남자아이는 손의 미세근육이 아직 발달되지 못하여서 여자아이에 비해서 예쁜 글쓰기에 불리하다. 이를 다그치면 오히려 글쓰기에 저항감을 갖게 된다. 또한 상대적으로 청력이 약하다. 대부분의 여자선생님들이 하듯이 조근 조근한 어투는 주로 뒷자리에 앉은 남자아이들에게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으니 주의가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언어능력도 늦게 형성되니 영락없이 부진아 또는 부적응아로 비치기 딱 좋다. 놀랍지 않은가!
남녀의 성 차이는 호르몬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결정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여자의 뇌 조직과 남자의 뇌 조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P.29)
단순히 발달과정 상의 늦고 빠름이 아니라 뇌 구조가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아이나 어른을 불문하고 남자들은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서투르다. 여자아이가 수학이나 물리에 서투르고 공간 지각 면에서 취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뇌 기능의 차이에 연원하니 무조건 상대방 성을 놀리고 비웃을 것은 아니다. 자연은 남녀의 성역할에 따른 구조와 기능의 차이를 태생적으로 부여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남자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학교의 규율은 활동적이고 모험적이며 공격 성향을 지닌 남자아이들의 욕구를 억제할 뿐 자연스럽게 발산하지 못하게 한다. 학습능력의 상대적 차이는 성적과 평가의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조를 고착화시키며 상대방 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커녕 질시와 갈등을 확산시킨다. 더구나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성을 의식하면서 남녀의 전형적인 성역할이 오히려 강화된다고 한다. 여기서 여자아이는 외모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바람직스럽지 못할 정도로 중시된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있다. 그러나 각 아이가 독특하고 복잡하다는 사실 때문에 성별이 아동발달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칙 중 하나(다른 한 가지 원칙은 나이이다.)라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P.52)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놀라운 사실들과 인상적인 사례들을 계속 나열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흥미롭지만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중요한 점은 평등이라는 관념에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실질상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야말로 그릇된 평등이라는 사실이다. 저자의 주장이 비록 부분적으로 과장되고 침소봉대하는 것일지라도 일정 부분 진실에 가깝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데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첫 번째 목표는 교육이다. 사회공학은 두 번째이다. (P.156)
후반부의 성 문제, 약물중독, 동성애에 관한 사안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사회와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치부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학교 흡연, 청소년 산모의 증가 등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게이와 호모라는 단어는 이미 친숙한 용어다.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저자의 견해는 사실 새로운 게 없다. 연령별, 남녀별로 각각의 조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반론적일 뿐 절대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한다. 다만 남녀의 성차를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며 이를 긍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라고 한다. 때로는 부모의 권위도 올바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가정과 사회가 아이 중심적이 되면서 부모의 권위가 상실되었다고 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있어 가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제아무리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가정에서 어긋나면 바로잡기 어려운 법이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일을 대신 해주지 않을 것이다. (P.263)
육아 관련 많은 책들은 주로 육아의 테크닉을 다룬다. 기존에 읽었던 여러 책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목표는 동일하다. 우리 아이를 남보다 공부 잘하고 똑똑하게 키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기본원칙을 재발견하게 하고 있어 참신하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육아와 학교교육의 숨은 병폐를 제대로 짚어낸다. 잘난 아이로 키우기는커녕 시름시름 병들어가게 방치하고 있지나 않는지.
이 책을 읽고 난 후 육아 방식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명약관화한 일부 사실은 뼈저리게 다가오며 그동안 내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간과하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일부 견해는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볼 때 저자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녕 육아는 어려운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