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과의 대화
리처드 오스본 지음, 박기호.김남희 옮김 / 음악세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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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래식 음악을 듣던 초기 시절에 카라얀을 무지 싫어하였다. 출시 음반은 온통 카라얀이고, FM에서 들려주는 연주도 카라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주류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후에 알게 된 그의 나치 전력, 게다가 그의 연주 해석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의견까지 맞물려 내게 카라얀은 클래식 음악계의 악의 제국이었다.

 

오늘날 자주는 아니지만 카라얀 연주를 간혹 듣곤 한다. 그의 연주는 어느 연주든 일정 수준 이상의 안도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워낙 근래에 정격연주의 해석이 유행하다 보니 종래의 심포닉한 해석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카라얀이 항상 정해는 아닐지 몰라도 다른 가능성의 방향을 억지로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2. 카라얀의 나치 전력과 관해서는 여전한 논란이 존재한다. 일단 그의 나치 가입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가 나치 경력을 자신의 출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느냐 여부가 관건인데, 정황 증거와 푸르트벵글러의 카라얀 혐오가 중시되는 듯하다. 1908년생인 카라얀이 나치 시절을 보낸 것은 30대라고 할 때, 과연 카라얀이 푸르트벵글러의 라이벌이라는 인식이 온당한 지 의문스럽다. 주요 포스트라고는 아헨 시절밖에 없던 카라얀이 전후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급부상하면서 자연스레 전전에 과도한 의미와 해석을 부여한 것은 아닌 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카라얀이 이처럼 무시무시한 드라마에 출연한 위대한 배우였다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배우라기보다는 인질에 가까웠으며, 유능했고, 또한 열심히 일했으며, 기초가 불안정했다. (P.20)

 

그렇다고 카라얀의 나치 전력에 면죄부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많은 양식 있는 지성인과 예술인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유무형의 피해를 입은 가운데 비록 일자리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나치에 가입한 것은 자체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점에서 저자는 다소 소극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과 전쟁 기간 중 그가 나치 정권에 정치적으로 동조를 했을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분석하고 재활용하는 데 깊숙이 관련된 사람들이 고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P.20)

 

3. 저자 리처드 오스본은 음반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데다 내용을 보니 카라얀과 직업적, 개인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은 인물이었다. 카라얀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대체로 호의적이며, 긍정적이다. 그가 카라얀을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있음이 대번에 드러난다. 후에 그가 카라얀의 권위 있는 평전을 저술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4.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카라얀의 관계는 불가분이다. 그의 전성기는 LP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맞물려 시작되었으며, CD시대를 앞당긴 것에도 그의 지분은 분명하다. 게다가 영상매체의 중요성과 기술 구현에 매진한 것도 결국 시대를 앞선 혜안임은 분명하다. 오스본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당신은 해석 예술가로서 영상을 당신의 작업에 없어서는 안 될 연장선으로 이용한 역사상 첫 번째 지휘자입니다. (P.187)

 

신기술과 신 포맷에 대한 카라얀의 적극적 관심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편향과 상업성의 발현이라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마뜩치 않다. 차라리 다음과 같은 이유가 보다 설득력 높다.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음악은 더 이상 학식과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러한 청중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들 이외의 또 다른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P.184)

 

5. 우리는 20세기 마지막 지휘계의 거장으로서 카라얀을 꼽는다. 카라얀의 사후, 번스타인, 솔티, 첼리비다케 등이 잇달아 작고하면서 카리스마를 갖춘 전통적 지휘자는 자취를 감추었다. 여러 음반 자켓과 영상물 등을 통해 우리는 카라얀과 카리스마를 당연히 결부시킨다. 범접할 수 없는 음악적 권위를 갖추고 오케스트라를 지도 편달하고 때로는 호통과 쓴소리도 아끼지 않으면 음악적 수준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거장. 하지만 오스본은 이것이 우리의 잘못된 환상임을 밝힌다. 카라얀은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 라이너, 셀 같은 유형이 아니라 오늘날 대다수 지휘자들과 같은 유형임을.

 

자신을 아르투르 니키시의 후계자라기보다는 사이먼 래틀의 선조로 만들어버린 카라얀의 업적과 영향력의 한 측면이다.....카라얀이 음악을 준비하는 방식은 형식적이거나 훈시적인 것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고, 상호협조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P.27)

 

6. 과도한 신성화와 우상시는 자칫 대상의 인간적 면모를 흐릿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카라얀의 실제 성격에 대한 면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낯설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카라얀을 개인적으로 상당히 매력 있고 솔직하며, 또한 재미있지만 냉소적인 재치가 번뜩이는 진실된 사람이라고 말할 것 같다. (P.16)

 

하지만 그의 성격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음악 만들기에 대한 그의 견해일 것이다. 긍정적이든 아니면 부정적이든 완벽주의라는 용어가 카라얀의 음악관을 대변한다. 기술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음악은 악보에 종속될 뿐이라는 의견은 음미해 보면 확실히 탁견이다. 스코어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 그리고 스코어를 넘어서는 것을 음악가는 찾아내고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카라얀 사후 이십여 년이 경과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베를린 필은 기술적으로 최고 수준을 자부한다.

 

카라얀이 주장했던 것은 가능한 한 아름답고 정확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음악이 모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었다......단원들은 스코어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지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통제력을 가지고 즐겁게 연주한다. (P.31)

 

리허설에서 그것은 음표를 정확한 방법으로 연주하기 위한 정확한 방식을 확립하는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그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 됩니다. 지휘에서 최고의 기술은 지휘를 해서는 안 될 때를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P.148)

 

7. 거장들의 회고담에서 찾을 수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색다른 묘미는 동시대 동료 음악가들에 대한 일화와 추억이리라. 이 책에서도 멩겔베르크, 제프리트, 토스카니니, 칼라스, 므라빈스키, 셀 등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마도 양자 간의 관계에서 그가 후배이자 일방적 약자의 위치에 놓였던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카라얀이 지휘자 중에서 특히 데 사바타와 탈리히를 높이 평가한 대목은 의외다.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했던 사람으로 데 사바타를 꼽은 카라얀은 탈리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극찬한다.

 

그는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하나로 모으고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악기처럼 통제하는 위대한 천재처럼 보였습니다. (P.79)

 

8. 카라얀은 작금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도 점차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의식하면서 그럴수록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먼저 양자의 장기간의 협력 작업을 중시하며, 현대의 지휘자들의 재임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명한다. 한층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진정한 작업은 양자의 장기간의 지속적 상호 공동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오케스트라의 제1의 당면과제는 생존이다. 정부보조금과 기부금이 현저히 줄어든 시점에서 오케스트라는 자칫 생존을 담보로 독립성을 상실하기 쉽다. 카라얀은 오케스트라가 음악 외적인 것으로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만 한다고 본다. 그것이 어쩌면 카라얀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특히 음반 판매를 통해서 오케스트라와 단원들의 재정적 풍성함을 누리게 한 근본 목적이 아니었을까.

 

오케스트라가 개성과 독립성을 잃는다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현재 새로운 계약에 따라 일하고 있는 독일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연주나 리허설을 할 수 있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특히 주장해야 할 내용일 것입니다. (P.126)

 

이백 쪽 남짓한 많지 않은 분량의 대담집이지만, 때로는 상당한 깊숙한 논의까지도 건드리고 있어 클래식 음악 이해의 측면에서도 유익한 책이다. 더구나 카라얀의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적 면모와 함께 그의 음악미학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열린 마음과 귀로 그의 연주를 들을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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