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요, 그리고 몇 편의 다른 시
윌리엄 워즈워드 지음, 김천봉 옮김 / 이담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주요 시들은 모두 한번 이상씩은 읽어봤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공동시집인 <서정담시집>의 번역본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예의상 그 유명한 시집을 훑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시인의 작품집으로는 마지막으로 읽는다. 개별 시선집에 포함되지 않은 시들이 의외로 많은데 놀랐으며, 1798년판 <서정담시집>의 전모를 알게 된 점, 그리고 특히 워즈워스의 시적 사유가 관념적이기 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점 등은 특히 유익하였다. 앞서 읽지 않은 시작품들을 위주로 하여 간략한 소회를 남기는 게 도리인 듯하다.

 

<광고>는 이 번역본이 1798년 초판본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2판부터는 워즈워스의 서문이 실려 있으므로. 이 책에 실린 글과 나중의 서문을 비교해 보면 여기에서는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시적 이념이 덜 의도적인 내용으로 표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들은 주로 사회의 중간 및 하층 계급이 사용하는 대화언어를 시적 즐거움의 목적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집필되었다. (P.9)

 

여기에 과연 인간의 열정, 인간의 성격과 인간적인 사건들이 자연스레 묘사되어 있는지를 자문해보기 바란다. (P.9)

 

시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전주의적 이지가 조화를 이룬 고상한 언어와 인물이 아니다.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때로는 인간에 내재한 비합리적인 면모도 드러내고자 한다.

 

먼저 <노수부의 노래>, <사이먼 리, 늙은 사냥꾼>, <우리는 일곱>, <충고와 대답>, <틴턴 애비 위쪽으로 몇 마일 거리에서 쓴 시>는 여기서 논의에서 제외한다. 이들에 대한 감상은 이전에 충분히 술회하였고 여전하다.

 

이어서 역시 읽어본 작품이지만 새롭거나 보완적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유모의 이야기>에서 소년-청년은 사악하고 악마적으로 작중에서 평가되지만, 그의 친자연, 반종교적 태도와 자연과 합일되는 소박한 바램은 되짚어 볼 수 있다. 그가 신대륙에서 대자연 속으로 사라진 것은 거짓과 위선과 억압이 판치는 인간 세상에 머물기에는 그가 매우 순수하였음을 알게 해준다.

 

호수나 야생 대초원에서, 사냥으로 양식을 구하고,

벌거벗은 사내 되어, 자유롭게 이리저리

배회하면 얼마나 즐거울까하고 말이야. (P.107)

 

<나이팅게일>의 지저귀는 소리에 대한 상반된 입장, 즉 멜랑콜리 대 명랑한(merry), 즐거운(sweet) 감정은 인간의 주관적 자연관에 대한 비판이다. 시인은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자연의 고운 목소리”(P.123)로 받아들인다. 시 속에 등장하는 아주 늦은 저녁의 한 처녀가 나이팅게일 숲 속을 배회하는 것, 그리고 시인의 아기가 달빛을 보며 고요히 웃는 장면, 양자의 공통점은 자연의 경이와 즐거움에 매료되는 순수한 마음의 사례를 보여준다.

 

<여자 부랑자>를 통해 보면 워즈워스는 고답적인 시인이 아니다. 평민의 언어로 평민의 삶을 시로 읊었다면 그가 어찌 평민의 삶의 애달픔과 고통의 실상에 무지했겠는가? 그의 시는 웅변적으로 입증한다. 여기엔 가정과 고향을 박탈당한 이들에 대한 깊은 동정과 연민, 그리고 공감이 짙게 배어있다. 그의 시가 이후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시대적, 개인적 한계일 뿐이다.

 

모두, 모두 강탈당하자, 울면서, 나란히,

우리는 상처 없이 머물 만한 집을 찾아 나섰어요. (P.137)

 

고통스레 생각을 접었죠. 즐거운 집 생각들,

모든 희망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되었으니까요. (P.151)

 

!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P.161)

 

23연의 장시인 <가시나무><여자 부랑자>와 유사한 정서를 보여 준다. 시인이 마주친 늙은 가시나무 옆에서 정신을 놓고 오열하는 여인과 불행한 여인의 슬픈 사연,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함. 뱃속의 아기, 불쌍한 아이의 운명. 워즈워스는 도보 여행을 자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여행을 통해 평민들의 삶을 목도하고, 행복보다 불행과 고통에 허덕이는 평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체험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민들의 언어로 시적 언어를 구사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레 평민들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의미일 때, 표제의 ‘Lyrical’은 단지 아름다움의 의미보다 감성과 정서에 직접 다가섰음을 강조하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여인의 울부짖음을 되풀이하는 시인의 감정도 구경꾼의 그것은 아니다.

 

오 고통이여! 오 고통이여!

아 나의 비애! 아 고통이여!

 

<미친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타국 출신의 여인,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 미친 여인.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가엾고 비참할 처지에 기도하는 고운 심성의 여인. 합리성의 기준에서 여인은 제정신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감성적 판단에서 이 어머니가 미쳤는가? 아니다, 아이와 아내를 버린 남자가 미쳤고, 여인을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오히려 미친 것이다.

 

예쁜 아가! 다들 내가 미쳤다지만,

아니다, 내 가슴 너무너무 즐거워,

수없이 슬프고 쓸쓸한 일들

마음껏 노래하면 행복하단다. (P.283)

 

전자와 달리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마지막 양>의 근본 정서도 위의 작품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애지중지 키운 쉰 마리의 양을 하나씩 팔아야만 하는 가난한 사내. 그것은 개인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가난의 천형이자 그 속에서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삶의 고뇌는 형언할 수 없는 지경이다.

 

-허나 이제 이 튼실한 어린 양이

내 가축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지.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죽어도,

가난해서 다 죽어도 상관없네. (P.271)

 

그래서 미친 듯이, 녹초가 되도록,

나는 일감을 찾아 돌아다녔지.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네.

나에게는 참 비참한 나날이었으니. (P.275)

 

<여행하는 노인>에서 아들의 임종을 지켜주러 가는 노인과, <버려진 한 인도여인의 한탄>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여인의 정서는 이제는 고통을 초월한 체념과 평정마저 엿보인다. 그네들에겐 더 이상 삶에 대항해 대항하고 분투할 한줌의 여력마저도 고갈된 것이다. 그네들의 유일한 바람은 그저 죽기 전에 자식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는 지극히 미약하고 소박한 소망뿐이다.

 

이제 영원히 나 홀로 남았는데,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리? (P.383)

 

나의 불쌍한 버려진 자식! 내가

한 번만 너를 꼭 안아볼 수 있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죽을 텐데,

내 마지막 생각들도 행복일 텐데. (P.385)

 

참고로 <버려진 한 인도여인의 한탄>에서 Indian’을 인도인으로 해석해야 할지 의구심이 든다. 아메리칸 인디언이 보다 적합한 게 아닐지? 시인은 첫머리에서 북극광 현상 언급하였으며, 여인이 죽어가는 곳이 차디찬 눈밭임을 서술하고 있는데, 인도보다는 북아메리카가 보다 자연 기후 면에서 온당하다.

 

<유모의 이야기>에서 보이는 자연 대 인간의 대립 구조는 <이른 봄에 쓴 시><지하 감옥>에서 한결같다. 사랑과 자비로 인간을 보듬는 자연의 방식, 반면 위선과 폭력으로 점철된 인간의 방식.

 

그간 인간이 인간에게 행해온 일들

문득 떠올린 내 가슴 너무도 슬펐다. (P.217)

 

이곳을 우리 선조들이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과 지혜를 처리하는 방식,

......(중략)......

이게 유일한 구제책인가? 자비로운 신이시여? (P.279)

 

그래서 시인은 <충고와 대답>의 후속작인 <입장전환>에서 이렇게 웅변하지 않는가.

 

봄의 숲이 베푸는 자극 하나가

자네에게 인간에 대해, 도덕적인

악과 선에 대해, 더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네, 숱한 현자들보다도. (P.369)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써서 작은 아들 편으로 시의 주인공에게 보낸 시>에서도 신춘을 맞이하여 온화한 날에 자연을 체험하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이 강렬히 드러난다.

 

한 순간이 반백년의 지성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는 지금, (P.181)

 

인간은 항상 비교와 선택을 강조한다. 내가 남보다 우월해야 안심하고, 내가 최선을 선택하도록 교육받는다. 어린 아들에게 농장과 해변 중에서 어디가 더 좋은지 반드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아버지의 일화를 보여주는 시가 <아버지들에게 거짓말 기술의 습득과정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반복하여 질문하며 대답을 하도록 팔을 잡는 신체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는 대증적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것은 곧 자연의 본성을 위배하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자연의 본성은 겸손이다. 자연은 스스로 잘난 척하지 않으며, 남과 이웃을 경멸하고 무시하지 않는다. 겸손하면서 당당하고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영위하며 드러내는 것이 자연이다.

 

<황량한 물가였으나, 아름다운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에스웨이트 호수 근처에 서 있는 한 주목나무아래 대좌에 남긴 시>에서 시인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좌의 주인공이 그러하다. 시인은 대좌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듣는 이가 조금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기대한다.

 

눈으로 계속 자기만

응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 바라보지. (P.117)

 

진정한 지식은 사랑으로 이끌고,

진정한 위엄은 내적 사색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언제나 의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언제나 자신을 존경할 수 있는 이에게만

깃든다는 것을 배우기 바라네. (P.117)

 

자연의 본성은 사랑과 연민이다. 자연은 일방의 이익을 위하여 타방이 피해를 보는 걸 원치 않는다. 구성원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연의 희망이다.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길>에서 신은 해리 길에게 징벌을 내렸다. 해리 길이 커다란 죄악을 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구디 블레이크를 두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최소한의 인간미, 즉 휴머니즘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늙고 약한 가난한 이에 대한 동정심.

 

언제나 듣고 계시는 신이시여!

오 그에게 더없는 온정을 베풀게 하소서!

......(생략)......

젊은 해리는 그녀의 기도를 들었지만,

얼음처럼 차갑게 외면하고 말았네. (P.175)

 

<죄수>의 화자는 저녁 무렵 자연의 장관을 언급한 후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시선을 돌린다. 화자와 죄수의 시선의 마주침. 화자는 연민과 동정심으로 교감하고자 한다.

 

형제처럼 자네 슬픔을 나누려고 왔네. (P.393)

 

자연 속에 깃든 찬탄할 만한 덕의 인식을 노래한 시가 더 있다. <저녁에 리치몬드 근처, 템스 강 위에서 쓴 시>. 여름날 템스 강의 황혼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시인, 시인은 황혼의 색조들이 영속하길 바란다. 달콤한 꿈과 환상을 꿈꾸며. 가벼우면서 오싹한 슬픔을 모른 채. 이윽고 찰나의 황혼은 스러지고 저녁 어둠이 모여 든다.

 

-저녁 어둠이 사방에 모여 든다

덕의 아주 거룩한 힘들을 거느리고서. (P.359)

 

장편 발라드 <백치소년>은 전반부의 예상과 달리 밝은 결말로 매조진다. 엄마의 착한 심성,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 그럼에도 백치소년을 밤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유는 참으로 딱하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집, 급한 병자의 발생, 결국 가난이 원인 아니겠는가. 가난이 아니면 그들이 굳이 사람들과 떨어져 살 일이 없으리라.

 

오 리 내에는 집 한 채 없다.

난처한 그들을 도울 손길이 없다. (P.297)

 

밤새워 산속을 헤매었음에도 백치소년은 해맑기 그지없다. 백치소년의 순수성은 이성과 허위로 무장한 정상적인 인간에 대비되는 자연의 인간상을 그대로 투사한다. 그는 거짓이 없다. 그에게 올빼미는 수탉으로, 달은 해일 뿐이다.

 

<서정담시집> 1798년 런던 판은 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같은 해의 브리스틀 판은 한 편이 추가되어 총 24편을 담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추가된 시가 <류티 혹은 체르케스인의 사랑가>로 콜리지의 작품이다.

 

과연 콜리지답게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한밤, 냇가에서 배회하는 화자, 그는 사랑하지만 자신에게 무심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가득하다. 배반의 상과 상냥한 상이라는 대조적 표현이 현저하다. 상념에 잠기다 강둑에 미끄러진 화자는 근심으로 죽은 자신을 상상하며 초췌한 모습에 그녀의 마음이 돌아선다면 기꺼이 죽으리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마지막은 그래도 내일에 대한 기대로 끝맺는다. 이 시에서는 류티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래의 표현이 변형되어 반복되는 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아니, 배반의 상! 내 마음을 떠나라

류티가 친절을 아니 베풀 바에는.

 

어쩌다보니 평균 이상으로 글이 길어져버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처음 읽는 시, 조명을 덜 비추었던 시에 한두 마디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옮긴이의 해설에서 두 대목을 인용하며 <서정담시집>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성과 질서, 정형화된 형식, 고상한 주제, 위트와 유머, 격식 등을 중시한 기존의 신고주의 시풍과는 확연히 다른 소재, 시의 전개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자세와 태도 등으로 근대화의 새 물결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에서 기인한다. (P.431)

 

<서정민요>는 이러한 연민 혹은 공감의 원리를 문학적으로 실현한 최초의 시도이자 최고의 성과였다. (P.436)

 

이것으로 나름 오랜 시간을 단속적으로 투자한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세계와 이별하련다. 전자의 <서곡>과 후자의 <문학평전>이 있음을 알지만, 전자의 단편을 읽어보니 내 역량으로는 이해가 어렵고 후자는 평론집으로 판단되어 대상에서 제외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책 자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상업성이 전혀 없음에도 영한 대역의 성실한 번역과 반양장 본임에도 탄탄한 만듦새를 높이 평가한다. 다소 빈약한 주석과 해설이 마음에 걸리지만 시집에서 상세한 주석을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작품해설은 조금만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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