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 1 창비아동문고 154
E.데 아미치스 글, 김환영 그림, 이현경 옮김 / 창비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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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는 꽤나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원전으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그래서 어찌 보면 불운한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무슨 연유인지는 책을 몇 장 넘기다 보면 절로 알게 된다. 의도된 목적성, 지나친 교훈성.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화자로 내세워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작가는 여기에 부모와 교사로 대표되는 성인의 가치관, 당대 사회의 주도적 국가관을 강력하게 투입하고 있다.

 

깔라브리아에서 온 소년에서는 새로 전학 온 깔라브리아의 소년을 맞이하면서 선생님이 반 대표에게 새로 온 친구를 안아 주라고 지시한다. “삐에몬떼의 어린이가 깔라브리아의 어린이에게 하는 포옹이란다.” 자칫 오버하는 듯한 선생님의 의도는 다음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너희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구를 모욕하는 사람은 이딸리아 국기가 지나갈 때 쳐다볼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P.25)

 

이쯤해서 이탈리아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수세기 동안 분열되었던 이탈리아가 통일을 달성한해가 1861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미치스가 이 작품을 발표한 해는 1886, 작가는 통일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신생 이탈리아는 통일 국가로서 기틀을 확립하기 위한 정치,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서 질서 확립과, 국민의식 고취, 애국심의 배양 등 사회 통합적 장치를 필요로 하였다. 이 작품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애국심의 강조가 여기에서 연유한다. 매월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형식을 빌린 이달의 이야기네 편 중 빠도바의 꼬마 애국자’, ‘롬바르디아의 소년 보초병’, ‘사르데냐의 북 치는 소년’, 이 세 편의 주제도 여일하다.

 

작품의 정치적 배경과 합목적적 교훈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이야기로 이 책을 읽으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화들의 나날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인 꼬마 엔리꼬가 바라 본 학급과 급우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등생이자 모범생인 데롯씨, 용감하고 정의로운 가르로네 같이 누구에게나 존중받고 가까이하고 싶은 친우들이 있는 반면 프란띠처럼 도저히 구제불능이라고 할 만한 아이도 존재한다. 귀족의 아들, 석탄장수 아들, 꼬마 벽돌공, 가롯피 등 대다수의 학생들은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지만 인간 본성에서는 착한 아이임이 밝혀진다.

 

학급의 선생님은 정의의 화신이자 투철한 가치관과 애국심의 사도라고 불릴 만하다. 그는 불의에 대해서는 불같이 분개하며, 아이들의 단합과 충성을 고취하는데 헌신한다.

 

너희는 너희를 괴롭히지도 않은 친구를 모욕하고, 불행한 친구를 조롱하고 자기를 방어할 힘도 없는 허약한 친구를 괴롭혔다. 인간으로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을 한 거야. 비겁한 녀석들! (P.32)

 

작품에서 교사와 함께 엔리꼬를 올바르게 훈육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인물이 또 있는데, 그것은 엔리꼬의 부모이다. 그들은 엔리꼬의 일기를 읽고 이따금씩 메모를 덧붙이는데,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아울러 군국적, 애국적 기조를 띠고 있다. 사실상 작가의 목소리라고 할 이 대목을 빼버렸더라면 딱딱함이 훨씬 덜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라, 거대한 훈련장에 나가 있는 꼬마 군인아. 책은 너의 무기이고 교실을 부대이며 전세계가 전투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 승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문명이란다. 비겁한 군인이 되지 않길 바란다, 엔리꼬. (P.42)

 

통일 국가와 사회에서 가장 긴요한 일은 분열적 요인을 극력 억제하는 것이다. 지방색의 배제와 함께 계급 갈등의 방지는 사회 안정에서 중요하다. 당대 이탈리아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풍미하고 있었음을 작중에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중 대목을 통해 알 수 있다.

 

노동은 더러운 게 아니야. 일터에서 돌아오는 노동자를 보고 더러워.’라고 말하면 안 된다. ‘옷에 노동한 흔적과 자취가 있구나.’라고 말해야지. 이 점을 잘 기억해라. 그리고 꼬마 벽돌공을 아껴 주어라. 무엇보다도 네 친구니까, 그리고 노동자의 아들이니까. (P.118)

 

초등학생들이니만치 여러 자잘한 사고와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밝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슬프고 우울하고 잘못하여 혼도 맞으면서 아이들은 관찰과 사고와 상상을 통해 학습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커나가는 것이다. 이어지는 2권과 3권에서는 활기찬 아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많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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