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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워스 시선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윤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3월
평점 :
다시 워즈워스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나온 이 시선집은 워즈워스의 주요작품들을 대거 수록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다만 단점은 영한대역본이 아니라는 점. 따라서 구입에 앞서 신중한 고민이 요구된다. 워즈워스 시를 처음 읽는 것이 아니므로 앞서 이미 관심 깊게 읽었던 시의 품평은 여기서 제외하고, 처음 접하는 작품 또는 덜 주목하였던 시들에 주의를 기울이련다.
워즈워스 시에서 특징적인 요소는 작중 주인공 내지 화자의 신분이 평범하거나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시골처녀, 초라한 노인네, 촌티 나는 어린 소녀, 평범한 시골 소녀 등 전시대의 왕족과 귀족 중심과는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가엾은 수전의 몽상>은 돈 벌러 상경한 가난한 시골처녀가 문득 고향 자연을 몽상하고 있으며, <사이먼 리>에서는 사냥개 관리인으로 힘겹게 노년을 견디는 자그마한 노인의 삶의 영욕과 애환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우린 일곱이에요>의 촌티 나는 숲지대 오두막집 어린 소녀는 자못 이성적인 시인과의 대비가 두드러지는데 독자의 시각에서는 어린 소녀에게 심정적으로 이끌리게 된다.
작품 속 시인의 태도는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먼저 평범한 인물과 시골과 자연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얻게 되는 친근성과 소박성이다. 독자는 시 속의 제재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데 새삼 친근미를 느낀다. 더구나 그것들은 일부러 꾸미려 들지 않고 원래 그러한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어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가감 없이 표현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오히려 자연스럽다.
<문득 북받치는 슬픔을 나는 느꼈네>를 포함한 다섯 편의 루시 시편들에서 루시는 외견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에서 쓸쓸한 생을 마쳤지만 자연 속 루시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쉽사리 예단할 수 없다. 이는 <4월의 두 아침>에서 땅속에 누운 매슈의 딸과 매슈가 만난 생기 넘치는 예쁜 소녀의 연상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수많은 사연과 곡절로 점철되었지만 그것은 자연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연미에 대한 워즈워스의 예찬은 각별하다. <누이에게>에서 시인은 아침 일과와 책을 놓아두고 산책을 재촉하고 있다. 자연 속의 가르침이 책보다 더 깊다고 하면서. 아울러 자연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환기시키고 반추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는 점에서 한층 값어치가 크다. <뻐꾸기에게>에서 뻐꾸기의 노래는 꿈 많던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환기하는 지저귐으로서 시인에게 황금기의 회상을 가져온다.
시인은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자연에 정주하며 일체가 되지는 못한다. 시인은 나그네다. 그는 부지런히 시골길과 숲 속, 호숫가를 걷는다. 노상에서 마주치는 인물과 풍경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가는 스러져간다. 이 점에서 그는 진정한 자연시인은 아니다. <사이먼 리>와 <우린 일곱이에요>에서 시인은 작중인물과 뚜렷이 구별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서쪽으로 걸어가다가>에서는 나그네 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외로운 나그네는 정겨운 목소리의 따뜻한 인사말에 위로와 격려를 느끼고 따스한 인정을 기억한다. <홀로 추수하는 처녀>에서는 타향에서의 이국적 정서가 주는 감흥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곧 여행자의 정서다.
나그네의 미래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 역마살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정처 없이 방황해야 하는 숙명에 처하든지 아니면 언젠가는 방랑을 접고 안정된 정주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워즈워스가 택한 길은 후자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선택을 탄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에 평온과 안정을 느낀다. 또한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하다.
우리는 환한 햇볕 속 시냇물처럼
반짝이며 흘러야만 하오. 그렇잖으면 우리는 불행한 신세.(<런던에서, 1802년 9월>에서)라고 외치고 <우리는 너무 속세에 물들어 버렸네>라고 탄식하던 시인은 이제 자연과 자연이 주는 무한한 자유에 지치고 말았다. 자연신에 가까운 가치관의 변화는 새삼 자유로운 영혼은 나약함에 방황하기 쉽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고요한 사색 속에서
나는 그대의 통제를 간청하노라.
이 무법한 자유에 나는 지쳤고,
불쑥불쑥 솟는 욕망의 중압감을 느끼노라. (<의무에 부치는 송가>에서)
그대의 이 작품을 나는 비난하지 않고 찬양하오,
이 노호하는 바다, 저 음울한 해변을.
하지만 의연한 자세, 꿋꿋한 쾌활함,
앞으로 견뎌야 할 숱한 광경들을 환영하라!
여기 내 앞에 있는 것 같은 광경이나 더 심한 광경들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우리는 견디며 애도하노라. (<비가: 조지 보몬트 경이 그린 폭풍우 속 필 성의 그림을 보고>에서)
여기서는 낙원처럼 고요하고 노고나 투쟁도 없는 영원한 안식을 긍정한다. 시인이 인식한 종래의 자연은 어리석은 환상으로 치부된다. 상실감, 하지만 깨달음, 그리고 평온한 마음. 어쩌면 시인은 종달새의 고뇌에서 자신의 입장을 공감한 듯하다. 눈부신 하늘과 시름겨운 지상 사이. 종달새는 차라리 지상의 둥지에 정주한 시인의 자화상이다.
날아오르지만 헤매는 법 없는 너는 현인의 표상,
진정 천국과 집을 맺어 주는구나! (<종달새에게>에서)
워즈워스 노년의 시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기계문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다. <증기선, 고가교, 철교>와 같은 인공물을 “인간의 기술로 생겨난 (자연의) 합법적 후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제임스 혹의 부고를 접하고 쓴 즉흥시>에서는 가까운 이들의 잇따른 죽음과 작별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임박한 운명에 대한 공감을 결부시키고 있다.
<송가 –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얻은 불멸성의 암시>는 앞서 읽은 대목에서 다소간 오독이 있다. 도식화된 상투적 결론을 사전에 설정했다고나 할까. 시인은 아이 즉 어린 시절은 꿈의 영광과 신선함을 걸친 듯한 시절인 반면, 어른 즉 현재는 지상에서 영광이 사라졌음을 자각한다.
그 환상의 미광을 어디로 날아갔는가?
지금 어디 있는가. 그 영광과 꿈은? (<송가 –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얻은 불멸성의 암시> 제4연에서)
유년기 – 소년 – 청년 – 성인으로 갈수록 빛은 평범해진다. 어린이는 속세에 물들어버려 어린 시절의 영광을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어렴풋한 회상은 온 생애의 빛의 원천이 되어 한번 깨어나면 사멸하지 않는 불멸의 바다로 시인을 인도한다. 이제 광채, 영광의 시간이 사라지고 되찾을 길 없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원초적 공감, 상념, 신앙, 세월 속에서 어린 시절의 빛을 회상하고 위대한 불멸성을 새삼 인식할 수 있다.
이 시선집은 워즈워스의 <서곡>의 발췌와 유명한 <서정담시집> 서문을 수록하고 있다. 전자는 시인의 평생에 걸친 자서전적 대작이며, 후자는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방대한 <서곡> 중 일부만 실려 있어 온전한 이해와 감상은 어렵지만 한 단면이나마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떠남과 자유, 자연에 대한 시인의 애호의 연원을 짐작케 한다. 말미의 해설에 따르면 “<서곡>은 시인의 감수성이 자연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렇게 형성된 창조적 감수성이 어떻게 자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변형시키는가에 관한 생생한 묘사”(P.210)라고 한다.
<서정담시집> 서문은 작자의 시론이기도 하다. 워즈워스의 초기 주요작품들을 면면히 관통하는 기본 정서와 시인의 태도를 명백히 알려준다. 영시에 대한 이해가 짧은 일개 독자로서는 이것이 표명하고 있는 깊은 함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식의 전개가 이루어졌음은 분명히 짐작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건과 상황들을 선택해,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골라 최대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건들과 상황들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 사건들과 상황들에 상상력의 채색을 가함으로써 평범한 사물들이 마음에 비범한 방식으로 제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P.194)
모든 좋은 시는 힘찬 느낌들이 저절로 흘러넘치는 것이고......비범한 유기적 감수성을 갖고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사람에 의해서만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P.196)
시인들은 시인만을 위해 쓰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쓴다......시인은 이 높은 곳으로 여겨지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P.199)
옮긴이는 해설을 통해 보편적 질서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내면을 중시하고, 자연을 생명을 지닌 자립적 존재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워즈워스를 포함한 일군의 낭만주의 시인들의 문학사적 의의를 적시하고 있다. 더욱이 워즈워스에게 있어 자연은 단지 경치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에 유익한 영적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서의 자연이었음을 언급하는데 매우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