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고 장영희 교수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2000년에 1쇄를 출간한 지 불과 5년만에 28쇄를 펴냈으니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일반적인 순서와는 달리 영미시 가이드, 문학작품 가이드에서 출발하여 결국 에세이로 이어지고 말았으니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늦게나마 저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행운에 기뻐해야 할지.

 

당시 사십대 초중반의 저자는 서문에서 꿀벌의 무지라고 자칭한다. “머리 속에 있는 말보다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고르지도, 다듬지도 않고 생긴 그대로 투박한 글로 옮긴다. 그럼에도 이만한 필력을 과시하는 걸 보면 확실히 문재는 노력 못지않게 천부적인 듯하다. 허구의 문학 장르와는 달리 에세이는 본질상 작자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한겹의 가면도 허용하지 않고, 독자 앞에 나신으로 서야 하는 용기를 감내하기는 쉽지 않다. 독자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작자를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여기게 된다. 이렇듯 에세이는 철저히 개인적이지만 신변잡기의 단순한 나열을 뛰어넘으려면 그 안에 아름다움을 담아야 한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진실이다. 그럴듯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작자의 체험과 사고와 감정이 한데 결부될 때 독자의 공감을 얻게 된다.

 

사랑해요.’ ,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러나 또 얼마나 하기 어려운 말인가. 날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도 나는 이제껏 한 번도 그 누구에겐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다. (<사랑합니다>에서, P.57)

 

나는 아직도 내가 버젓이 잘못해 놓고도 선뜻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생전에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겸손함의 본보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에서, P.204)

 

개인 장영희의 삶은 스스로도 토로하듯이 단순하고 제한된 반경에 머물러 있다. 물론 범상한 삶은 아니지만. 영문학계의 원로를 아버지로 하고, 소아마비로 행동에 불편을 겪으면서 해외유학을 통해 국내 대학의 교수로 금의환향.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재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등등. 따라서 독자는 역으로 이 책을 통해 인간 장영희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신체부자유로 인한 좌절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상존, 몸이 불편한 자식을 돌보고 키워내기 위한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 등과 같은 개인사와 관련된 일화와 상념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 기억이 결코 기쁘고 즐거울 리 없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작자의 심경은 부모를 회상하는 대목을 제외하면 의외로 담담한 편이다.

 

글쓰기의 또 다른 줄기는 작자의 현재의 삶과 관련된 부분이다. 즉 대학 교수로서 학생들과 수업 중에 발생하게 된 일화 또는 학생 개인과 시사에 관한 이러저러한 생각의 추이 등 직업과 생활에 연관되는 소재다. 여기서 작자는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다. 세상사가 뭐 대단하길래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서로 상처주고 미워하며 살아간다는 말인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 삶인데 말이다.

 

사람 사는 게 엎어치나 뒤치나 마찬가지고, ‘’ ‘’ ‘’ ‘도 따지고 보면 다 그저 받침 하나, 점 하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악착같이 사이에 깊은 골을 파 놓고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나와 남>에서, P.73)

 

줄 이유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는데도,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못 줄 이유를 찾은 것은 아마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다져 온 나의 마음가짐 탓일 것이다. (<못 줄 이유>에서, P.122)

 

그가 꿈꾸고 바라는 삶은 소박하다.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고 욕심부리지 않으며 안분지족을 하는 삶. 작자의 표현에 따르면 가늘고 긴 삶. 천국을 꿈꾸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는 삶. 소박하지만 우리들에게 결코 쉬운 삶의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나의 삶에 대해 썩 만족하고 있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그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지도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어영부영 살아갈 뿐이다. (<보통이 최고다>에서, P.162)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축복받은 시간이고, 천국은 다름아닌 바로 여기라고.... (<천국 유감>에서, P.49)

 

그렇기에 아래의 말은 학생의 발언이지만 작자 자신의 견해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웃을 오로지 넘어뜨려야 할 경쟁자로 여기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호 의지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가치관.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에서, P.104)

 

그래서 <걔 바보지요?>에서 인간의 잔인함과 냉혹한 비열함에 진저리치는 작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음의 성역을 완전히 무너뜨린 행위이므로.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작자는 너그럽다. <하느님의 필적>에서 분개마저도 포용하는 그의 너그러움은 아름다우면서도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면 지나칠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하느님의 필적은 우리 육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씌어져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만 읽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필적>에서, P.209)

 

이렇게 수록된 각 이야기들 중에서 제법 기억에 남았던 편들을 두서없이 몇 가지 되새겨 보았다. 때로는 어쭙잖은 글을 끄적거리기 보다는 인상깊은 대목을 발췌하여 구슬을 꿰듯 열거만 하더라도 적확한 감흥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독자라면 이후 작자의 삶의 행로를 대개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는 무심한데, 독자는 결코 허투루 문장 하나조차도 넘기지 못한다.

 

우리들 각자가 저자인 삶의 책에는 절망과 좌절, 고뇌로 가득 찬 페이지가 있지만 분명히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가슴 설레는 꿈이 담긴 페이지도 있을 것이다. (<어느 가작 인생의 봄>에서, P.143)

 

이 세상에서의 고통, 고뇌, 역경이 아무리 클지라도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 사람들과 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고리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서,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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