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마운틴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에서 언급되어 비로소 존재를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무슨 책이기에 산악인들에 사이에서 무림비급처럼 전해 내려온단 말인지. 아무래도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결국 책장을 펼쳐들고 말았다.

 

어릴 때 세계의 불가사의를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중에 세계 최고봉이 에베레스트가 아니며, 중국에 있는 암네마친 산이 해발 9천 미터를 넘는데 다만 공인받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기억이 난다. 이후 냉전 시대를 맞이하여 중국 측에서 일체의 접근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은 신비는 사라졌지만 우주에 닿을 듯 우뚝 솟아있는 장엄한 산봉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다.

 

요기스탄에 있는 해발 12,000미터가 넘는 최고봉 럼두들 산을 등정하기 위한 팀이 꾸려진다. 팀원 소개와 럼두들 산을 등반하기 위한 준비 작업, 등정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등반대장인 바인더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것이 이 책이다.

 

다소 간의 의아스러운 점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진지한 등반기에 가깝다. 물론 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특이한 행동, 요기스탄의 풍물과 포터들에서 영어식 해학을 시도하고 있지만 요절복통할 지경까지는 아니고 약간은 어이없고 황당한 감을 이끌어낼 뿐이다. 작가는 인물마다 개성적인 유머 장치를 설정한다. 길잡이 정글은 항상 길을 잃고 헤매며, 촬영기사인 셧은 불운과 사고로 촬영필름을 모두 못쓰게 되었다. 벌리는 항상 피로증에 걸려 있다. 바다 피로증, 열 피로증, 골짜기 피로증 등등 가는 곳마다 족족 피로증에 걸린다. 의사인 프로운은 어떤가. 그는 항상 뭔가 병에 걸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이다. 과학자 위시의 모든 측정 수치는 숫자 153과 관련된다. 언어학자인 콘스턴트의 잘못된 발음으로 포터의 숫자가 삼천 명(그것도 엄청난 숫자인데!)이 무려 삼만 명의 군중이 되어 대기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이야기의 축은 대원들과 대장 바인더의 속임 관계, 등반대와 요리사 퐁 간 갈등 관계로 이루어진다. 럼두들 등정은 퐁의 음식을 회피하려는 대원들의 처절한 진저리로 가속화된다. 바인더와 콘스턴트가 전진기지에서 제1캠프를 건너뛰고 단숨에 제2캠프를 설치할 고도에 다다른 것은 전적으로 퐁의 덕택이었다. 언제나 소화불량을 일으켜야 하는 이상한 음식을 감내해야 한다는 설정은 자못 비현실적임에도 그것이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편 들기도 한다.

 

한편 모두들 아는 사실을 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대장 바인더는 등반대의 축인 동시에 왕따라고 할 만하다. 대원들은 정상 등정에는 관심이 없다. 어떡하면 제 한 몸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 지에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잔류하려고 애쓰며 의학용도로 가져간 샴페인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대원들을 신뢰하면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며 등반대의 목표 달성에 헌신하는 바인더, 그에 대한 대원들의 태도는 비웃음과 조롱에서 종내 자성과 존경으로 바뀐다. 바인더는 크레바스 속의 샴페인 사건과 제1캠프 발견 실패의 이유를 결코 알아내지 못하였음에도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바인더는 럼두들이 아닌 노스두들을 등정하였고, 엉뚱하게도 프로운이 포터에게 실려서 럼두들 정상에 올라선다. 누가 올랐던 어쨌든 성공이다.

 

산악인들이 이 소설을 애지중지한 연유는 일차적으로 희소성에서 기인하였으리라. 수많은 문학작품 중에서 산악, 특히 등반을 소재로 삼은 경우는 과문이지만 없는 듯하다. 자기네가 좋아하고 빠져있는 등산을 다루었으니만치 호기심과 친근감이 남다르지 않겠는가. 근엄하고 딱딱한 책이 아니라 가볍고 유쾌하며 해학적이고 흥미로우니 금상첨화다. 등반대가 들고 다니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 적합하다. 그리고 이 작품 의외로 진지하다. 산악인들이 높고 험준한 이역의 산을 등반할 때 갖게 되는 개인들의 심적 태도와 대원들 간의 역학 관계가 비교적 세밀한 등반 과정과 함께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실제 자신들의 체험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고지식하고 우직한 바인더는 허황한 이야기로 새기 쉬운 소설에 적당한 무게와 진실을 부여하여 독자의 지지를 받는다. 그는 항상 대원들 간 신뢰와 단결을 강조하는데 등반 같은 단체행동에 있어 최고의 금언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장으로서 모래알 같은 등반대를 결속시켜 팀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팀원들의 개인사(그것이 꼭 약혼녀에 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공감과 이해의 자세.

 

나는 진실과 직면하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삶 그 자체가 내게 보답할 것이다. (P.206)

 

책표지도 그러하고 코믹산악소설이라고 타이틀에 앞에 붙여져 있어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사실 그럭저럭 볼 만할 정도였다. 인수봉이나 울산바위 리지에서 읽다가는 추락할 수도 있으리라는 주의 문구는 아무래도 과장되었다고 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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