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백만장자 삐삐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롤프 레티시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발표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삐삐 시리즈가 우리들에게 여전히 친숙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하다. 단지 과거에 TV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 하면 본말이 전도된 해석이다. 이미 상당한 인기를 모은 작품이기에 TV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게 올바를 것이다.

 

어른 입장에서 삐삐는 불온한 아이다. 기존의 사회와 문화적 틀을 수용하길 거부하며 당돌하게도 어른들과 맞서 절대 지지 않는다. 역으로 보면 이런 점들이 또래의 아이들을 더욱 열광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후속 작에서도 삐삐의 그런 면이 여실하다.

 

삐삐는 부자다. 돈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가 사탕과 장난감 등을 사는데 금화를 거침없이 내민다. 해당 장의 표제도 도전적이다. ‘근검 절약은 나빠’. 사치와 낭비를 죄악시하고 근검과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언급할 것도 없고 대다수 서민들로서는 삐삐의 행동과 경제관념을 아이들이 모방할까 걱정될 뿐이다.

 

삐삐 역시 또래와 똑같은 아이다. 학교 소풍에 따라가서 아이들과 괴물 놀이를 하느라 온통 법석을 피우지만 즐겁기 이를 데 없다. 삐삐의 무한 매력은 가식 없는 순수함에 있다. 무거운 짐마차를 끄느라 허덕이는 지친 말에 인정사정 두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을 향한 삐삐의 분노는 고귀하기조차 하다. 잘난 척하는 이른바 어른의 몰인정성, 잔인성과 무자비함과 아이들의 순수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토미와 아니카가 삐삐와 어울려 노는 데 흠뻑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일탈의 즐거움에 있으리라. 부모를 포함한 가족과 사회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거의 무조건적인 금지와 일방적 지시를 퍼붓는다. 금지된 것일수록 더욱 재밌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다. 그런데 삐삐는 이를 과감하게 깨뜨린다. 아이들에게 삐삐는 대리만족이자 영웅이다.

 

작고 약한 아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덩치 큰 무뢰한을 가뿐하게 들어 올리고 공기놀이를 하듯 던질 수 있는 삐삐는 선망의 대상이다. 공부를 제외하면 삐삐가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천하장사의 힘은 기본이고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 공중제비, 큰 뱀과 호랑이를 제압할 용기와 담력 등.

 

어릴 적에 무인도에 표류하여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소망을 품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천국의 섬. 실제라면 무섭겠지만 삐삐와 함께라면 안심하고 무인도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15소년 못지않게.

 

아이들은 기쁘지만 어른들은 두렵다. 삐삐가 옳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실행할 용기가 없음을 자각해서다. 책을 통해서나마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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